[우리는 10년 차이] 탈북 대학생의 첫 기말고사 수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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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안녕하세요. 해연 씨, 드디어 기말고사를 끝냈잖아요, 이제 여름방학이 시작됐죠? 기말고사, 어떻게 혁명적으로 봤습니까?

이해연 : '혁명적'이라는 표현을 오랜만에 듣습니다. (웃음)

박소연 : 얼마나 들었으면 아직도 제가 안 잊어버렸겠습니까?

이해연 : 북한에서는 어떤 일도 항상 혁명적으로 하라고 하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할까요? 혁명적이 아니면 안 되는 겁니까?

박소연 : 그렇다면 비혁명적으로…(웃음) 남한에서는 혁명적이란 말을 안 하죠. 대신 '최선을 다해서 하자'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이해연 : '알차게 보낸다'라고도 하죠. 기말고사는 잘 본 것 같습니다. 많이 긴장했어요. 살면서 시험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대학 진학해서 첫 시험이라 긴장 많이 했습니다. 남한은 북한과 점수제가 좀 다른데 F 학점이 나와서 낙제하면 졸업할 수 없습니다.

박소연 : 직설적으로 물어볼게요. (웃음) A+ 받은 과목이 있나요?

이해연 : 제일 높은 점수로 A+ 한 개 나왔고, 제일 낮은 점수는 C+ 입니다.

박소연 : 청취자분들이 시험 점수가 무슨 동물 뿔도 아니고 무슨 얘기일까? 생각하실 것 같은데, 남북이 점수를 부르는 게 다르죠. 대학도 다르고, 중·고등학교도 다릅니다.

이해연 : 우선 남한의 대학은 등급을 매기는데 최우등은 A 플러스라고 해요. 플러스는 영어인데 우리말로 더하기라는 뜻이죠. 이게 제일 높은 등급이고, 다음으로 A, B+, B, C+, C, D+, D 등으로 내려갑니다. 제일 마지막 낮은 점수인 F 학점이 있죠. 이 점수는 북한으로 말하면 낙제를 말합니다. 점수로 환산하면 60점 미만을 받은 셈이죠.

박소연 : 높은 순으로 A, B, C, D, F 이렇게 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A가 제일 높은데 거기에 플러스가 붙으면 가장 높은 점수이고, 제일 낮은 점수가 F 학점으로 60점 미만인데 사실상 이것은 아예 점수로도 인정을 안 해주는 거죠?

이해연 :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대학에서만 적용되는 것이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그냥 점수로 100점 만점으로 해서 평가를 매깁니다.

박소연 : 그럼 이번에 본 기말고사가 몇 과목이었어요?

이해연 : 6과목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과목씩 시험을 봤고요, 저희는 사이버 대학이기 때문에 보통 일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교 강의실에 직접 가서 시험을 보지만 저는 인터넷으로 학교에서 정해준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컴퓨터로 시험을 봐야 합니다. 과목마다 로그인 즉 입장 시간이 다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어기면 시험을 볼 수 없습니다.

박소연 : 사이버 대학은 시험을 칠 때 옆에 감독하는 선생님이 없잖아요? 북한에서처럼 깐닝구(컨닝,베끼기)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웃음)

이해연 : 그래서 양심적으로 쳐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시험을 쳐보니까 부정행위할 시간도 없습니다. 보통은 25문제가 나오고, 시험 시간은 30분~40분 정도 주어집니다. 그래서 1분 동안 1문제를 읽고 답을 찾는데 사실상 시간이 모자라서 책을 찾아보거나 할 시간이 없어요. 결국 다들 포기하고 그냥 냅다 답을 표기하는 거죠.

박소연 : 혹시 선배나 동료들 도움을 받지 않았어요? 누가 보지 않으니 옆에서 도와줘도 괜찮지 않아요?

이해연 :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워낙 자신을 믿는 편이라…(웃음) 제가 알아서 잘 봤습니다.

박소연 : 나 잘났다 이 말이잖아요! (웃음) 북한에서 대학 예비시험을 쳤었는데, 옆 사람의 답안을 못 보게 한 줄씩 해서 1안, 2안, 1안, 2안 이런 식으로 섞어 앉히죠. 시간은 보통 50분에서 1시간 정도 주는데, 혁명 역사 시험은 써야 하는 양이 많아서 1시간 정도 시험 시간을 줍니다. 시험을 칠 때는 사각사각하는 글씨 쓰는 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숨소리도 안 나요. 부정행위를 하면 아예 탈락이 되고요. 남한의 사이버 대학은 북한과는 시험 풍경이 다른 것 같아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펜으로 직접 글을 써야 하잖아요. 남한은, 특히 사이버 대학의 경우는 정답을 컴퓨터 키보드로 체크하면서 보니까 간단하죠. 북한처럼 직접 타자를 쳐서 내용을 쓰는 주관식 문제들도 있긴 있습니다. 25문제 중에 2문제 정도 나옵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객관식 문제가 많죠. 남북한 시험문제를 비교하면 저는 남한 시험이 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는 답을 장황하게 늘여서 써야 해요. 그리고 토씨 하나 틀려도 안 되는 시험도 있죠. 그러니 그냥 달달 외워서 쓰지만, 남한에서는 기말고사가 아니더라도 가끔 시험을 보면 대부분 객관식이죠. 생각이 안 나면 1번이 답이라고 다 찍고 나와도 어쨌든 점수가 나오더라고요. (웃음)

이해연 : 근데 북한은 거의 다 쓰는 문제잖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주관식 시험뿐 아니라 남한에 와서 뭔가 글을 쓰는 건 더 어렵다는 겁니다.

박소연 : 맞아요. 남한은 시험 대신 리포트라고 보고서를 써내는 경우가 많죠. 당의 방침 해설, 신년사 학습 등 정말 글로 준비된 북한 사람들인데, 사실 남북의 글 쓰는 방식이 다릅니다. 북한에서는 당의 지시를 핵심적으로 써놓고, 그 밑에다 감히 자기 말을 붙이지 못해요. 그냥 당의 지시를 외워서 써야 하는 게 보고서인데, 남한의 리포터는 어떤 주제에 대해 분석하고 그 분석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야 하는 거예요. 그게 탈북 학생들에게는 많이 힘든 일이죠.

이해연 : 공감합니다. 북한에서는 프린트로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생각이 났었는데, 예를 들면 생활 총화를 한다고 할 때 그 내용이 바로 그려져요. 거의 매일 반복해서 나오는 내용을 내 마음을 담지 않고 옮기고 옮겨서 살짝 바꿔서 말하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내 생각을 드러내는 연습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박소연 : 북한은 자기의 생각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본인의 생각보다는 교시를 가운데 놓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가 생활을 잘해야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써야지, 남한처럼 내 생각은 이렇다, 자기주장을 끄집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이해연 : 우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북한에서는 내가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분석하지는 않잖아요. 위에서 골격을 써주면 중간에 살짝 살을 붙이는데, 그것도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붙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연습이 안 돼 있는 거죠. 다행히 이번 시험에는 리포트 써내라는 게 없었습니다. 혹시 선배님 기말고사 때에는 리포트 써내라는 과목이 있었나요?

박소연 : 저희 때도 없었어요.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시험을 보기 위해 컴퓨터에 접속해서 입장하면, 빨간색 코드 같은 게 있어요. 그걸 마우스로 클릭하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막 움직이는 거예요. 남은 시험 시간을 알려주는 거죠. 29분 58초, 29분 57초... 숫자가 막 변하니까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탈북할 때도 그렇게 당황스럽지 않았거든요! (웃음) 그래도 객관식 문제들은 들었던 풍월이라는 게 있어서 답을 찾아 체크했지만 주관식 문제는 핵심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관련 리포터가 100장 정도 나오는 거예요. 어느 걸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시험을 거의 마쳐갈 무렵에 답을 꼭 저장하라는 문구가 떠요. 당황한 나머지 잊어버리고 저장하지 않아서 결국 다 날아갔어요. 그래도 시험 시간이 아직 3분 정도 남아서 훑어보니까 객관식 문제를 10문제가 남은 겁니다. 끝에는 냅다 찍기를 한 거죠. 결국, 내가 좋아하는 3번을 다 눌렀고 한 두 개는 맞았습니다. (웃음) 나중에 최종 결과를 보니까, 제일 높은 점수 A 학점이 하나 있고 낮은 점수 C 학점이 있었는데, 평균 점수는 B+인 3.5가 나왔더라고요. 북한으로 말하면 우등을 맞은 거죠. 저는 정말 만족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자랑했는데 사람들은 시큰둥하더라고요. 속으로 그랬겠죠. '쟤는 겨우 B+맞고 저렇게 좋아하나'라고... 남한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북한에서 우등이 얼마나 대단한 점수인지를요. 그 당시 저는 저의 자랑에 좋아해 주지 않는 남조선 사람들을 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서운해했어요. (웃음)

[클로징] 제가 학교 다닐 때 북한에서는 학년말이면 학교마다 학생들의 성적을 공개하는 학부모 회의가 열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전체 학급 학부모님들 앞에서 성적을 공개하고, 최우등을 받은 아이 부모는 늘 박수를 받곤 했어요. 솔직히 저는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지 못해서 학부모 회의가 있는 날에는 늘 죄지은 기분이 들어 목을 움츠리고 학교 담장 아래 앉아 있었거든요. 혹시 남한도 북한과 같은 분위기가 아닌지 궁금하시죠? 성적 공개에 대한 남한 사회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녹음,제작:이현주

에디터:양성원

웹편집: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