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사실 북한에서는 의미가 없는 선물은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한은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날이 더우니까 시원하게 커피 한잔 마시라며 커피 쿠폰이라며 선물을 주고 하잖아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커피 한 잔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문화도 있고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그렇게 선물을 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그게 문화인 것 아닐까요? 남한 사람들은 구실이 없어 선물을 못 줘요. 사귄 지 백 일이 됐다고 백일 기념 선물을 주고받더라고요. 아니 만나서 100일도 못 넘길 걸 왜 친해요? 그걸 또 선물을 준대요. 이런 걸 보면 별 큰 의미가 없이 주고받는 선물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이쯤에서 저는 진짜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선물을 주는 문화는 태초부터 있었던 거예요? 도대체 왜 생겼을까…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이해연 : 선물을 한다고 해도 북한처럼 바리바리 싸서 들고 가지는 않아요. '쿠팡' 같은 인터넷 상점에 들어가면 '선물하기'가 있거든요. 거기서 선물을 구입해서 지인에게 보내면 됩니다. 간편해서 좋은 것 같아요. 사실 북한에서는 선물을 사려면, 장마당에 나가서 하나하나 골라야 하잖아요.
박소연 : 해연 씨는 그런 방식이 좋아요?
이해연 : 네, 집에서 편히 앉아서 모든 걸 주문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지 않나요?
박소연 : 역시 젊은 세대라 벌써 남한 문화 분위기에 익숙해진 것 같네요. 너는 아직… 남한은 어떤 사람을 잘 알지 못해도 커피 한 잔에 성의를 보이고, 선물을 직접 갖다주지 않아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문화잖아요. 이에 비해 북한은 인간관계가 정확해요. 선물은 아주 친한 사람에게만 하는데 남한은 업무적으로 인사를 해야 할 때 "소정의 선물"을 하죠. 비록 작은 선물이지만 그걸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그런 면에서는 좋은 것 같고, 선물도 다양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부모님들한테 효도 선물이라며 부모님들 해외여행을 보내거나 성형도 해드리더라고요.
이해연 : 맞아요. 반대로 부모님들은 자녀들한테 생일 선물로 주식을 사 준다고 하더라고요.
박소연 : 주식을요?
이해연 : 저도 깜짝 놀랐어요. 기념품 같은 것만 선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약간 충격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남한 부모님들은 솔직하시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솔직한 게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요 "
박소연 : 남한의 부모님들은 솔직하세요. 자식들에게 제일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어보면 현금이라고 한다잖아요. 북한 같으면 부모들한테 옷이라도 하나 해드리면 '야, 너도 살기 힘든데 무슨 이런 걸 하니?'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부모들이 확실하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솔직한 게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요. (웃음)
이해연 : 아주 실용적이죠.
박소연 : 그렇죠.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교과서처럼 항상 듣는 말이 있어요. '문화적 차이'라는 말인데요. '무슨 차이가 나니? 남한 사람들이 뭐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다 똑같은 사람들인데'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선물을 주고받고, 선물이 얼마인가 공개하고, 이런 과정도 가만히 지켜보면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긴 오해도 많고요. 그래서 해연 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금방 익숙해지는 거고, 저처럼 옛날 사람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천천히 따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결론은 선물은 사람의 마음이 담긴 거니까 서로 주고받는 거는 좋은 거 같아요.
선물하면 북한 !
김정일 탄생일 (2월 16일)과 김일성 탄생일(4월 15일)
일 년에 단 두 번 아이들에게 주는 과자 선물 , 일명 "사랑의 선물"
박소연 : 그런데 선물하면 또 우리가 북한 얘길 안 할 수 없죠. 그 유명한 선물이 있잖아요.
이해연 : 특별히 2월 16일과 4월 15일에 받는 간식 선물이죠.
박소연 : 아마 초등학교까지 주죠?
이해연 : 네, 맞아요. 그 선물을 받을 때 기쁨이 완전 대단하죠. 한편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물을 받으러 나가서 인사를 했던 게 조금 웃긴 것 같기도 하고…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때 받은 간식을 먹는 게 입에서 녹는지 어떤지 잘 모를 정도로 맛있었죠.
이해연 : 지금은 그 과자를 먹어도 그렇게 맛있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정말 맛있었어요. 그리고 선물을 준다고 하면, 벌써 며칠 전부터 선물을 받을 생각에 기대를 많이 하잖아요.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박소연 : 평상시에는 우리가 간식을 잘 못 먹으니까...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맞으면서 2월 16일과 4월 15일 간식 선물이 누렇게 되어 있고 질도 떨어지는 과자였지만 누구도 맛이 없다는 얘기를 안 했어요. 사랑의 선물을 감히 맛을 갖고 평하진 않았잖아요. 감히 그런 생각을 못 했죠.
이해연 : 그저 감동이었죠.
박소연 : 여기 와서 보니까 보잘것없는 선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파요.
이해연 : 사실 지금에 와서 다시 먹으면, 그런 맛이 안 날 거예요.
“과자 선물을 혼자 먹진 않아요.
보통 동네에 아이들이 없는 집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죠 .
어르신들이 그걸 받고 고맙다고 하면
‘아닙니다. 할아버지 많이 잡수세요~’ 하고 뒤돌아서 나올 때,
비록 나는 조금 못 먹어도 어린 나이에 정말 행복했어요 "
박소연 : 그걸 또 혼자 먹진 않았어요. 옛날 저희 때는 그 선물을 받은 집은, 아이가 없거나 아이들이 다 커서 선물을 받을 수 없는 가정의 어르신들이 있잖아요. 그 집에다 사탕 몇 알, 껌 몇 개를 종이에다 싸서 나눴어요.
이해연 : 선물을 받아도 집에서 먹는 거는 과자 한두 개 정도밖에 안 됐어요.
박소연 : 맞아요. 그래도 동네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때 제가 가지고 가겠다고 했어요. 내가 탄 선물이니까요. 어르신들이 그걸 받고 고맙다고 하면 '아닙니다. 할아버지 많이 잡수세요~' 하고 뒤돌아서 나올 때가 비록 나는 조금 못 먹어도 어린 나이에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이해연 : 사실 제가 어릴 때는 선물을 받기 전에 줄을 서요. 그러고 나서 노래도 불렀어요.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 하늘은 푸르고' 이 노래 기억나시죠?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에는 과자 하나에도 사상이 있었어요 "
박소연 : 남한에서는 선물이면 그냥 선물인데 북한은 사랑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항상 어릴 때부터 '나라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허리띠를 조여 매는데도, 장군님은 우리한테 이렇게 선물을 주는구나'라며 초등학교, 저희 때는 인민학교였고 지금은 소학교죠? 인민학교 때부터 선물을 받으면서 장군님의 사랑을 같이 받는다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해연 : 그런 선물로 인해서 어릴 때부터 장군님한테 복종하게 하는 것도 좀 있는 것 같아요.
박소연 : 배신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졌죠. 북한에는 사탕이나 과자 하나에도 사상이 담겨 있었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그런 걸 못 느꼈었는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그런 생각이 되더라고요.
박소연 : 북한에서 그걸 느낀다는 거는 불가능한 일이죠. 해연 씨,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람한테 가장 선물을 주고 싶어요?
이해연 : 부모님들한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리네요. 사실 여기 남한에서는 부모님 결혼기념일까지 챙기는 게 충격이었어요. 북한은 생일에는 좀 챙겨주지만,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문화가 없잖아요. 결혼기념일에도 이제 선물을 드리며 챙겨드리면 두 분이 사이가 더 좋아져서 싸움도 덜 하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의 며느리에게
세탁기를 꼭 보내주고 싶어요 "
박소연 : 저는 며느리한테 세탁기를 선물해 주고 싶어요. 아이를 낳았거든요.
이해연 : 정말요?
박소연 :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우리가 북한 사정을 잘 알잖아요. 맨날 압록강에 나가서 얼음 구덩이에다 손 넣고 기저귀 빨고 이러잖아요. 여기 남한은 그냥 세탁기가 다 하는데… 사실 고향에 보내고 싶은 선물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우리 며느리한테 가장 보내고 싶은 게, 세탁기를 하나 보내고 싶네요.
이해연 : 세탁기 보내 드려도 아마 못 쓸 거예요. 전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냥 마음뿐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렇죠? 그래서 같은 선물 이야기인데도 항상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해연 : 맞아요.
박소연 : 그래도 우리가 마음으로나마 보낸 선물이 언젠가는 현실이 돼서 꼭 전달될 수 있는 그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고대하면서 저희가 준비한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