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꿈 같은 소리

0:00 / 0:0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가 이제 정착한 지 2년이 되고, 아직 20대니까 정규직 생활이 조금 답답할 수는 있어요.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이런 생활을 경험해 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어요. 그 이유가 북한에서 온 우리들이 경험했던 사회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남한 회사에 한두 달 일해보고 '야, 내 사업을 해야지 남조선 사람들하고 이가(마음이) 맞지 않아서 못 하겠다' 그러면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맞아요, 남한은 이런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인 것은 맞아요. 아르바이트하던지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정규직으로 남한 회사에서 일하면 그 자체로 참 큰 학교입니다. 해연 씨는 지금 시간제로 일하죠? 말하자면 비정규직인데 그대로 또 좋은 점이 있죠?

이해연 : 자유시간이 많죠. 나에게 갑자기 일이 생기면 쉴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바로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는 것이 좋죠.

박소연 : 반면에 책임은 적은 거?

이해연 : 책임감은 좀 덜하고 거기에 대한 고민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굳이 정규직으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해보고 싶어서요, 하지만 선배님도 정규직으로 일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편한 것만 선택해서는

남한 사회에서 물과 기름처럼 살아야

남한 직장 자체가 탈북민에게 큰 학교

박소연 : 남한 사회에서 탈북민들을 보면 이질감이 든다고 아직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그 이유가 탈북민들이 편한 것만 선택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탈북민들끼리 모여 일하는 단체나 회사들도 많이 있어요. 남한 회사에서 일하려면 말투에도 신경 써야 되고, 상사가 시키는 것도 싫고…그만두고 나오는 거예요. 물론 그런 건 자유입니다. 남한에서는 그렇게 했다고 북한에서처럼 제재하지는 않죠. 하지만 본인이 편할 대로만 선택하면 이 사회에서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요. 그래서 남한 사람들과 같이, 남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내가 싫은 것이 있어도, 받아들이기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있어도 감안하고 생활해봐야 남한 사회를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규직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연 : 네,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험해보고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때 가서 선택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소연 : 아, 그렇지만 정규직으로 일한다고 해서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건 아니에요. 퇴근 시간이 정확하고, 또 남한은 북한처럼 전기 사정이 안 좋은 세상이 아니잖아요. 12시 넘어서도 서울 거리를 보면 초저녁입니다. 또 야간에 운영하는 학원들도 있어요. 내가 계획을 어떻게 짜는 지가 중요하죠. 그래서 내가 정규직이라 자유롭지 못해서 하고 싶은 걸 못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남한은 북한하고 달리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들이 시간에 제한 없이 마련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규직을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죠. 말하다 보니까, 우리가 참 좋은 세상에 살고있는 것 같아요. (웃음) 하지만 저도 아직 다 찾지 못했어요.

이해연 :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각각의 방향이 정해질 것 같아요.

박소연 : 사실 해연 씨는 아직 20대잖아요. 남한에서 20대는 나이만으로도 정말 부러운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안정적이고 이 사회에 대해서 깊이 배울 수 있는 정규직 생활을 경험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죠.

이해연 : 남한에서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잖아요. 솔직히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북한보다 훨씬 많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 ,

남한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해요

한 번도 선택해 보지 못했기에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요

박소연 : 맞아요. 탈북민들이 말하는 게, 북한에서는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 다른 선택이 없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이해연 : 저도 가끔 내가 선택 장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북한에 있을 때는 선택을 할 일이나 기회가 없었잖아요. 그런 경험 때문인지 선택하는 것이 어렵긴 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우리가 모든 것이 풍족하고 상황이 좋으면 내 삶은 마냥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육체적으로는 편해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한 가지에 집중하던 걸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힘들기도 하죠.

이해연 :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지금 하고 싶었던 걸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자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한 번도 선택해보지 못했기에 이 길을 가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제가 취업을 위해서 공부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부가 끝나서 취업하려고 하니까 또 어려운 일이 생기면서 앞으로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고요.

박소연 : 그렇죠. 그리고 눈앞에 새로운 선택지가 계속 보이고요?

이해연 : 맞아요.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대학에 갈까? 대학 공부를 하려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는데… 여전히 고민하는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고민은 해연 씨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남한에서 태어난 해연 씨 또래 젊은이들도 똑같아요

그러니 절대 늦은 것이 아닙니다

박소연 : 그런 고민은 해연 씨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남한에서 태어난 해연 씨 또래 젊은이들도 똑같아요. 남한에서 남자들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갔다가 군대 제대하고, 다시 복학해서 대학을 졸업하면 28~29세, 그때야 비로소 사회 초년생이 되는 거예요. 이처럼 해연 씨 또래 남한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해연 씨가 절대로 늦은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세요.

이해연 : 나이가 더 들어갈 테고, 늦기 전에 대학이라도 다닐까 일할까… 고민이 참 많아요.

어떤 날은 이런 고민 탓에 잠도 안 와요.

박소연 : 듣고 보니까 20대가 부럽기도 한 나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이 많은 나이이기도 하네요. 제 나이는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20대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도전할 기회들이 많잖아요. 도전이라는 것도 준비 없이 하게 되면 20대나 50대나 별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고민하는 해연 씨를 보니 안쓰러운 나이 같기도 하네요.

이해연 : 꿈이 많은 나이라고 하는데 꿈을 선택하는 게 힘들어서 참 어려운 시기인 것 같아요.

“얘는 꿈 같은 소리 하네”

그만큼 꿈이 현실 되는 일은 어렵고 먼 것

치열한 고민 속에 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박소연 : 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남한에 와서 꿈이 많아졌다고 하잖아요. 북한에서는 실천 불가능한 말을 했을 때 '얘는 꿈 같은 소리 하네'라고 얘기하는데 말이죠. 해연 씨가 지금은 마이크 앞에서 차분한 얼굴로 앉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눈에 보여요. 그러나 고민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을 거예요. 해연 씨가 고민하는 만큼 100%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이해연 : 저도 고민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좋은 선택을 할게요.

박소연 : 인내와 고민은 쓰지만, 결과는 달다는 걸 확신하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함께해 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