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의 해방일지

0:00 / 0:0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제가 얼마 전에 좋은 데 갔다 왔어요. '싸이흠뻑쇼'라고 이번 여름, 난리였잖아요. 사실 싸이는 북한에서부터 진짜 보고 싶었던 가수였거든요. '강남 스타일'이란 노래가 북한에서 알았거든요.

박소연 : 아~10년 전에 터졌죠. 그 좋은 데를 혼자만 가시다니 서운한데요!

이해연 : 다음에 꼭 함께 갈게요. (웃음)

박소연 : 농담입니다. (웃음) 해연 씨 세대를 남한에서는 영어로 MZ세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1980년부터 1994년에 태어난 세대 M하고,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태어난 세대 Z를 합쳐서 MZ세대라고 하는데, 이 세대들은 싸이 콘서트 같은 연주장을 축제의 장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기회가 되는대로 가는 거죠.

이해연 :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게 MZ세대만 싸이 콘서트를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콘서트장에서 '10대 손들어, 20대 손들어' 이랬는데요, 글쎄 40대, 50대도 다 있더라고요. 선배님도 가셔도 됩니다!

북한에서 싸이를 알까요 ?

강남스타일을 들었다고 해도 그 가사가 괜찮았어요 ?

놀 때 노는 여자 ??

박소연 : 인터넷 유튜브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검색했더니, 10년 전에 올린 영상인데도 조회 수가 무려 45억 회나 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많은 성공작들이 있잖아요. 과연 북한 주민들도 가수 싸이를 봤을까요?

이해연 : 알고 있었죠. 싸이라고 하면, 강남 스타일을 제일 먼저 기억에 떠올리는데 그때는 겉으로 드러내 놓고는 못 불렀지만, 몰래 어린애들까지도 따라 불렀어요. 남한 노래라 몰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듣고 했어요.

박소연 : 그런데 가사가 좀 당황스럽지 않았어요? '놀 때 노는 여자'라고 하잖아요.

이해연 : 특히 나이 드신 분들 같은 경우에는 '날라리 식이냐?' 하셨는데 저는 재밌더라고요.

박소연 : 확실히 10년 전과 지금이 다르네요. 10년 전에는 남한 가수라면 주현미, 나훈아 가수 등 노래에 감수성에 젖었는데요. 그때도 남한 노래의 가사들을 보면 대부분 나라를 위한 마음이나 정치색이 없는 거예요. 그냥 연인들에 관한 사랑을 담고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10년 후 지금은 '놀 때 노는 여자'라는 노랫말도 이해한다니까 많이 변했네요. 논다는 건 북한 기준으로 보면 문란한 것이잖아요.

이해연 : 그렇긴 하죠. 북한 노래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가사가 있잖아요. 꽃이 들어가는 가사도 장군님이나 당이 들어가고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그런데 남한 노래를 들을 때는 내 삶과 가까운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그냥 '강남 스타일'이라고만 들었지 강남이 뭔지는 몰랐어요. 북한도 지역마다 잘 사는 지역이 따로 있잖아요. 그처럼 남한도 좀 잘 사는 지역이 있고, 강남이 그런 지역이 아닐까? 그 정도는 생각했어요. 와서 보니까 서울에서도 잘 사는 구역이 있고 그게 바로 강남이었던 거죠.

박소연 : 예, 맞아요. 지금 해연 씨가 공연 다녀온 얘기를 하는데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됐어요. 그럼 공연 중에 노래만 부르나요? 아니면 춤도 추고 그러는 거예요?

이해연 : 공연 이름이 싸이 '흠뻑쇼'에요. 물이나 땀이나 뭐에 푹 젖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가끔비를 맞고 흠뻑 젖고 싶은 생각이 있지 않나요?

박소연 : 아! 물에 맞아서 흠뻑 젖어서 흠뻑쇼라고 한 걸까요?

이해연 : 저도 궁금했었는데 와~정말 물을 많이 뿌리더라고요. 그리고 들어갈 때 비옷을 다 나눠줘요. 그걸 받아서 일단은 입었다가 바로 벗어버렸어요. 그냥 젖을 바엔 흠뻑 젖어버리자! 공연 보면서 북한이랑 다른 점을 정말 많이 느꼈어요. 북한에서는 공연에 가면 엄숙하게 앉아서 감상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그냥 앉아서 박수치는 정도였는데 남한의 공연은 즐기는 느낌이 들었고 좋으면 소리 지르고 뛰고…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발을 밟힐 정도로 함께 참여한 수많은 사람이 모두 일어나서 손을 흔들고 춤을 추는 거예요. 이런 건 북한에서는 신년사 할 때 볼 수 있어요. 무조건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구호를 외치고 이러잖아요. 그렇게 안 하면 반동인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하게 되죠. 그런데 남한 공연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좋으니까 소리를 지르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흔들어도 되는 거예요.

박소연 : 그런데 '싸이 흠뻑쇼'에서 물을 수백 톤을 뿌렸다고 하더라고요. 하필 공연이 열린 시기가 한참 가뭄이 들 때였나 봐요. 그래서 뉴스에서는 가뭄이 들어서 물이 없는데 이렇게 공연장에서 수백 톤의 물을 쓰냐면서 논란이 많았어요. 뉴스를 보면서 도대체 수백 톤이나 되는 물을 어떻게 뿌렸을까? 양동이로 사람들한테 퍼부었나 궁금했어요. 어떻게 뿌렸어요?

이해연 : 북한이 아니죠. (웃음) 양동이로 퍼붓지 않았고요. 공연장에 수도관이 쭉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이 조정하더라고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쏘기도 하고 한꺼번에 뿌리기도 하는 거예요. 물이 파도처럼 쫙 퍼지면서 뿌려지는 물보라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맞는 것도 재밌고 그날 미친 듯이 무려 5시간 동안 소리 지르느라 목이 다 쉬었어요.

5시간 동안의 공연과 함성, 춤

“제가 저에게 놀랐어요”

“북한에서 듣던 그 싸이가 눈앞에 있다니…”

박소연 : 제가 그동안 지켜본 해연 씨는 얌전하고 정말 밥도 못 먹은 사람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이 조용조용 말하는 사람이었는데…(웃음)

이해연 : 저도 놀랐어요. 그렇지만 이런 남한의 공연 문화가 너무 좋은 거 같아요. 큰 비용을 들이면서 물을 뿌렸고 그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가끔은 그런 휴식이 그동안 힘들었던 나에게, 힘든 길을 온 나에게 모든 것을 잊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됐습니다.

박소연 : 저는 말만 듣고 있는데도 너무 좋아요. 제가 티비를 보는데 관중들이 고삐 풀린 말들 같았어요. 머리를 흔들면서 난리가 아닌 거예요. 저는 사실 10년 전만 해도 춤을 추는 것만 봐도 눈살을 찌푸렸어요. 최근에 들어와서는 코로나 때문에 3년 동안 공연도 못 보고 살아왔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혜연 씨는 직접 다녀왔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고 얄미워 죽겠어요…(웃음) 저도 다음엔 꼭 가고 싶어요. 어떻게 가야 하는 거에요?

이해연 : 북한에서처럼 현장에 가서 현금으로 표를 사는 게 아니고요, 며칠 전부터 핸드폰을 쥐고 예매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이 열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돼요.

박소연 : 인터넷으로만 예매해야 하는 거예요?

이해연 : 네, 저는 서울과 인천 공연이 매진돼서 결국 대구에 가서 봤는데요. 대구까지 가는 길도 정말 쉽지가 않았어요. 멀기도 하지만, 아침부터 밥도 못 먹고 떠났는데 4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보통,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해연 씨는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며 그런 해방감을 맞봤겠죠. 북한에서도 알던 가수, 싸이의 공연장에 서서, 소리치고 노래하던 해연 씨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고 합니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었다고요. 서울에서 공연장인 대구까지는 거의 700리 길인데요. 가는 길로 쉽지 않다고 합니다. 못다 나눈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