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싸이 공연을 대구까지, 진짜 멀리 가서 봤거든요.
박소연 : 대구 너무 멀잖아요!
이해연 : 멀어도 '싸이'라서 갔습니다. (웃음) 대구까지 가는 길이 진짜 쉽지 않았어요. 아침밥도 못 먹고 떠났어요. 공연할 때가 휴가철이라 도로가 엄청나게 막히는 거예요. 원래 4시간 거리인데 거의 8시간을 가다 보니 점심도 못 먹고 겨우 공연 직전에 도착해서 저녁도 못 먹고. 입국에서 주는 물 한 병 받아 들어가서 정신력으로 5시간을 외쳤네요.
박소연 : 살아 돌아오셨네요.
이해연 :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웃음) 배고파지면 물 마시고… 만약에 북한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데 한 끼도 못 먹고 물만 마시며 한다고 생각해봐요. 악이 받쳐서 막 화를 냈을 텐데…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오히려 좋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나오는데 힘들지만 오길 잘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밥 한 끼도 못 먹고 이런 행사장에 있었으면
악에 받쳤을 텐데…”
박소연 :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는 800리 정도가 됩니다. 혜산에서 평양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한데, 북한 같으면 혜산에서 평양까지 가려면 계절이 바뀌어야 돼요. 같은 차 안에 탄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가족이 된다니까요. 첫사랑 얘기까지 다 해야 헤어지죠. (웃음)
북한에서 몰래 보던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지금 내 눈앞에… "내가 진짜 남한에 와 있구나"
박소연 : 해연 씨가 북한에서는 '싸이'라는 가수를 알고 '강남 스타일'을 흥겹게 불렀다고 했지만 그때는 몰래 본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직접 눈앞에서 딱 보니까 어땠어요?
이해연 : 직접 내 몸으로 느끼니까, 와~ 진짜 남한에 와서 '싸이'를 직접 보다니… 그래서 특별히 '강남 스타일'이란 노래가 나올 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화기로 다 촬영했어요. 집에 와서 보고 또 보고 정말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나요. 정말 '지금 내가 남한에 와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저는 가끔 힘들 때, 힘없이 주저앉아 있다가도 내가 기뻐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이러고 있지 하며 힘을 내곤 합니다.
“강남스타일 딱 한 곡만 전화기로 촬영했어요
집에 와서 보고 또 봐요 "
박소연 : 저는 10년 전에 '싸이'를 처음 봤을 때 놀랐어요. 북한에는 가수나 예술인들은 곱거나 잘 생겼죠.
이해연 : 입고 있는 옷도 다르잖아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은 정장으로 단정하게 입는데, 제가 처음에 봤던 '싸이'는 마치 협동농장 부기장 같은 이미지였어요. (웃음) 그런데 남한에 와서 느낀 게 남한에는 잘생긴 가수도 있고 그냥 평범하게 생긴 가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그런 가수들을 '개성 있게 생겼다'고 해요. 그래서 노래 부르는 사람은 꼭 잘생기고 멋있지 않아도 된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까지 10년이 걸렸죠.
이해연 : 싸이 콘서트를 보면서, 물론 전에 영상으로도 많이 접하기도 했지만, 공연하다가 윗옷도 벗어 던지잖아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목이 보이게 파인 옷도 감히 입지 못하잖아요. 여기 남한에서는 공연하다가도 옷을 벗어 던지고 관객에게 물을 뿌려도 오히려 열광하는 게 놀라워요.
박소연 : 남한은 공연에도 자유가 있는 것 같아요. 만일 북한에서 공연하다 옷을 벗으면 선선한 데 가야 해요. (웃음) 다시는 살아 나올 수 없는 데를 가야 하는데, 남한에는 가수가 자유롭게 하니까 그걸 보는 관중들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이해연 : 맞아요. 즐기는 관객들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자유에 대해서 말이 나온 김에 몇 년 전에 남한예술단들이 북한에 가서 공연한 적이 있잖아요. 그때 객석에 앉아있는 평양 시민들 보셨죠. 마치 몸을 경직시키는 주사를 맞은 줄 알았어요.
이해연 : 북한 공연장에서는 당연히 엄숙하고 조용히 앉아서 봐야 하고 끝나면 박수를 쳐주면 되는 걸로 알았죠. 일어나서 같이 소리 지르고 이런 문화가 없었는데... 저도 그 영상을 봤어요. 저렇게 경직된 분위기에서 공연하는 분들이 얼마나 어색했을까요?
박소연 : 북한에서의 유일한 반응은 박수 치는 거예요. 제가 남북 예술인들이 같이 하는 공연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이 그런 경직된 태도로 관람했을 거예요.
이해연 : 남한 사람들은 자유롭잖아요. 공연장에서 소리를 질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데, 북한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일상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문화다 보니까 공연 관람도 따라가는 거죠.
공연장에서만 시끄러운 남한
어디서든 소리치지만 공연장에서만 조용한 북한
“서로 완전 반대인 겁니다”
박소연 : 남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일할 땐 조용해요. 자기 맡은 일에 집중하고 또 아파트에서도 소리치거나 시끄럽게 하면 층간 소음 때문에 안 돼요. 상황에 맞게 예의를 지키는데 공연장에서만큼은 분위기에 따라 분출하잖아요. 그런 자유가 있으니까 일상생활에서는 소리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다른 데 가서는 다 소리를 쳐도 공연장에서는 소리를 치면 안 되는 거예요. 서로 반대인 겁니다. 제가 놀랐던 게, 평양 공연에서 공동 진행자를 맡은 남한의 아이돌 가수가 있어요. 이분이 '나무야 시냇가에'라는 북한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이 노래를 남한 사람이 좋대요. 주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물어보고요. 우리가 북한에서 공공연하게 남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또 선선(감옥)한 곳으로 가는 거죠. (웃음)
이해연 : 그렇죠. 감방에 가는 거죠. 저는 북한에서 남한 노래 들었다는 이유로 총살까지 당한 광경을 직접 봤어요.
“지방에서는 주현미, 김연자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었어요
텔레비전 있는 집 창문 앞에 온 동네 사람이 모여서
신나게 구경했죠. 주현미의 노래와 그날의 분위기 잊지 못해요”
박소연 : 북한에서 남한예술단을 눈앞에서 직접 보기는 힘들죠. 예전에 북한에 주현미, 김연자 가수 등이 왔을 때, 지방 사람들은 아예 공연을 못 보잖아요. 겨우 TV로 보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동네에 TV가 별로 없었어요. 저의 집은 창문이 두 개가 있었는데, 창문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머리만 보였어요. 그때 주현미 가수의 노래와 그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겠어요. 어떻게 노래를 저렇게 말하는 것처럼 맛이 나게 부르지? 북한에 없는 창법이고 가사도 '어쩌다 눈길이 마주칠 때면' 하는데, 북한에서 만일 어쩌다 눈길이 마주쳤다는 말을 했다간 큰일 나죠.
이해연 : 북한에는 개인의 사랑 얘기를 못 하죠. '사랑'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려면 꼭 장군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들어가야 하죠. 그런데 남한은 그런 사랑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을 얘기할 때도 사랑이 들어가고 노랫말이 내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어요.
왜 남한 드라마, 영화 음악이 좋으냐?
“강요가 없어요”
박소연 : 남한에 온 탈북민들에게 왜 남한 드라마나 영화 음악이 좋냐 물어보면, 일단 강요하는 게 없대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걸 무조건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사랑해라, 아껴라 이런 얘기가 없고,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가사에 그냥 녹아 있어요. 그리고 더 좋은 것은 영화나 노래를 들으면서 나의 소감을 옆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다고 얘기를 해요. 그에 반해 북한은 모든 음악에 당과 조국이 반영되어 있어 가수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그저 그렇구나 하면서 별 느낌이 없어요.
이해연 : 뻔하다는 말이 그냥 나오잖아요.
박소연 : 그래서 우리가 남한 음악을 더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이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렇게 통제받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흥은 있습니다…
우리가 흥이 많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죠. 화물 트럭 꼭대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디스코를 추기 위해 산에 올라가고… 요즘은 어떤가요? 아무리 당국이 단속을 해도 다 알아서 흥을 분출하게 계시겠죠. 흥에 살고 흥에 죽는 남북 사람들의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갑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