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삶과 죽음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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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이해연 : 북한은 가을만 되면 밭에 거의 절반이 사람들이잖아요.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가을걷이를 하는데, 남한에 왔을 때 깜짝 놀란 게 가을에 밭이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너무 조용해요.

이해연 : 기계만 한 대씩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고요. 그럼 밭은 누가 지키나요? 북한은 밭 중간에 천막을 높게 치고 주인이 거기서 밭을 지켜요. 안 지키면 힘들게 농사를 지은 걸 남한테 그냥 주는 게 되는 거예요. 한국에 오니 그런 게 없어서 밭은 누가 지키지 싶었습니다.

박소연 : 가을이면 허리를 보자기로 질끈 매고, 농민 모자를 쓰고, 손에다 침을 탁탁 뱉어 묻히면서 가을걷이를 해야 되죠, 남한은 그런 모습은 하나도 없고, 구석에 커다란 기중기 같은 차가 혼자서 가을걷이를 하는 거예요. 더 놀라운 거는 가을걷이를 하면서 동시에 기계에서 벼가 탈곡이 되어 한쪽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나머지 볏짚은 밭에 또 한 줄로 가지런히 밭에 누워있어요.

이해연 :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가을걷이를 할 때 사람이 없이 기계가 다 한다는 말이 있긴 했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얘기를 전설처럼 얘기하죠. 우리도 그러면 좋겠다 그러면서요.

박소연 : 북한의 가을은 삶과 죽음의 계절인 거 같아요. 가을에 하루를 게으르게 보내면 다가오는 겨울에 열흘을 굶는다는 얘기가 있잖습니까.

이해연 : 맞아요. 가을에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겨울을 살 수 있죠.

박소연 : 제가 기억하는 북한의 가을은 이삭주이(이삭줍기)입니다.

이해연 : 저도 갔었어요.

박소연 : 북한에도 이삭줍기를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하죠. 밭에서 파랗게 생긴 남새에 소금만 뿌리면 다 먹을 수 있다고 그러잖아요. 가을걷이가 끝난 배추밭에서 바닥에 떨어진 파란 배추를 주워서 등짐으로 지고 산에서 내려오잖아요. 제가 지금도 등산을 안 하는 이유가 그때 너무 높은 산을 오르내려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가져온 채소를 커다란 목욕 함지에다 다듬어서 넣고 그걸 소금으로 절이면 뭔가 뿌듯해요. 내가 가을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구나.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남한의 가을은 가을 같지 않았죠.

이해연 : 하튼 북한 사람들은 그렇게 몸을 써야 뭔가 만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저는 해연 씨가 이삭줍기 갔었다고 해서 놀랐네요, 왜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가 이삭줍기를 했어요?

이해연 : 젊었든 아니든 북한에서는 살아야 되니까... 어린애들도 하잖아요. 이삭줍기할 때 제 나이가 정말 어렸거든요. 10살이 조금 넘었고, 제 동생은 6살이었어요.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산에 갈 때 벤또(도시락)을 싸 들고 가서 맛있게 먹었던 일이 생각나네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는 이삭줍기하면 못사는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 않아요. 온 동네가 다 이삭줍기 가는 데 혼자 안 가면 남들이 보석을 캐러 가는데 나만 손해를 보는 느낌이죠. 그래서 저는 제일 좋았던 이삭줍기가 무였어요.

이해연 : 무밭이 재밌죠. 개인 밭에 가면 절대로 안 돼요!

박소연 : 맞아요. 개인 밭에는 하나도 주울 것이 없는데, 농장 밭에는 가끔 호미로 파면 무가 팔뚝만 한 게 나와요. 그때는 내가 농사를 안 지었는데도 그렇게 뿌듯하죠. (웃음) 그런데 해연 씨하고 저하고 말하는 것도 다 옛날얘기인 거 같아요. 북한이 최근에는 군인들이 무기를 메고 보초를 서면서 농장 밭을 지킨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이해연 : 믿을 만한 얘긴가요? (웃음)

박소연 : 해연 씨는 어려서 모르겠지만 '고난의 행군' 때 그랬거든요. 90년도 후반에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저희 뒷산이 옥수수밭이었는데, 96~97년도에 사람들이 굶어서 많이 죽었어요. 뒷산에 가보면 군인들이 오두막에 있지 않고 자동 보총을 메고 밭 입구와 중간에 서 있었어요. 그때는 농장 밭을 침해하는 사람을 쏘라고 할 정도로 북한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어요. 그 후에 군인들이 철수하고 농장원들이 밭을 지키다가 최근에는 또 군인들이 다시 지킨다? 아무리 지켜도 도둑놈은 계속 있을 겁니다.

이해연 : 어쩔 수 없잖아요. 어차피 생존 문제라 살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인 것 같아요.

박소연 : 군인들이 밭을 다시 지킨다는 얘기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그만큼 안 좋다는 것이죠. 이렇게 심각해진 북한 주민들 앞에 가을이 와서 가을을 탄다고 감상에 젖어 있으면 머리끄덩이 한 번쯤 잡혀요.(웃음)

이해연 : 여유로우니까 그런다고 하죠. 저도 솔직히 지금도 그런 감성을 모르겠어요. 그리고 북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요. 가을에는 바쁜 시기이니까 감성을 느낄 겨를이 없고요.

박소연 : 남한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음악도 있고, 가을에 듣기 좋은 노래들을 유튜브에서 다 정리해주는데 조회수가 장난이 아니에요. 정착 초기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공감 못 했고 그냥 콧방귀를 꼈어요. 야, 이 사람들 북한에 가서 가을을 한 계절만 살게 하면 저런 얘기를 안 하겠는데… 이제는 한국의 그런 문화를 이해하지만 그래도 북한에 대해 잊어버리진 않아요.

이해연 : 어릴 때는 가을이든지 말든지 그냥 놀고 그랬겠죠.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좀 많습니다. 조금 있으면 겨울인데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식량도 좀 사고 월동준비 잘했는지 걱정도 되고요.

박소연 : 그렇죠. 저도 가을이니까 집 청소도 해야 될 것 같고, 이불도 빨아서 넣어야 될 거 같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마음 한쪽은 늘 고향에 가 있죠. 우리 가족들은 겨울을 날 수 있는 화목이랑 다 마련했을까 궁금하고. 게다가 가랑잎이 굴러가면 '내일모레면 50살이겠구나. 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지? 10년만 빨리 남조선 왔으면 내 일치고 마는데'… 실제로는 일도 못 치고 있으면서 (웃음) 이렇게 쓸데없는 없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우리 생각해보면 북한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잖아요?

이해연 : 가을은 맨날 바쁘니까...

박소연 : 우리는 항상 바쁘고, 더군다나 가을이면 더 바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북한에 있을 때 우리가 정치나 당에 대한 불신, 불만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없었던 근본 이유가, 아니, 사람들을 그렇게 볶는데 무슨 여유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생각이라는 것도 짬이 있어야 돼요.

최근 북한 협동농장 밭에 군인들이 경비를 선다는 소식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저와 해연 씨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을이면 음악을 듣고 단풍 보러 다니는 것이 즐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늘 고향의 가을에 멈춰있는 탈북민들이 전하는 가을 이야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