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첫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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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첫눈 생각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눈이 꽤 많이 왔어요.

이해연 :올해와 지난해엔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요만한 눈이 무슨 눈이야 생각했어요. (웃음)

박소연 :해연 씨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정말…작년이랑 올해 제가 남한에 와서 가장 눈을 많이 봤습니다.

이해연 :솔직히 북한 겨울은 밖에 나가면 온통 하얀색이고 사각사각 눈을 밟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그런 느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가끔 눈을 보면 반가워요.

박소연 : 첫눈이 딱 내렸을 때 뭐 했어요?

이해연 : 그렇게 큰 느낌은 없었어요. 눈이 많은 고장에서 왔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 첫눈이 와도 그냥 오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적응이 돼서 그런가요? 눈이 오는 게 새롭고 설레더라고요.

내리는 눈이 바로 사라지는 마법?

첫눈은 근심과 함께 내린다

박소연 : 해연 씨도 이제 10년이 지나면 막 설렐 거예요. 정착 초기 제가 경험한 첫눈은 눈이 내리다 만 거예요. 눈 오는 흉내만 내다 갑자기 그쳐 버린 거죠. 남한은 도로가 전부 아스팔트잖아요? 눈이 오면 금방 녹아요. 거기다 차들이 눈 때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난다고 무슨 약을 뿌리더라고요.

이해연 : 약을 뿌려요?

박소연 : 제가 북한에서 살 때 생각했던 눈은 내리면 쌓이고, 그걸 우리가 삽이랑 소랭이(대야)를 동원해서 치우는 것이었는데요. 남한에는 눈이 오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립니다. 그러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 위의 눈이 없어지는 거예요.

이해연 : 그런 걸 뿌려서 눈이 없어지는 거였구나! 저는 남한 기온이 북한보다 따뜻해서 빨리 녹는 줄 알았는데 특별한 방법이 있었네요.

박소연 : 북한 주민들이 제일 못 믿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탈북민들이 자동차를 샀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사실 남한은 거의 모든 가정에 다 승용차가 있어요. 그렇게 차가 많으니 도로에 눈을 금방금방 치워야 합니다. 이런 말 했죠? 북한에 있을 때는 첫눈이 오게 되면 근심도 같이 내렸어요.

이해연 : 그렇죠. 눈이 오면 도로 청소를 해야 하고 집 앞마당을 쓸어야 하니까 항상 근심이 있었죠.

박소연 : 북한에 살 때는 한 번 눈이 오면 그칠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눈이 오면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어요. 종일 눈이 오니까 사람들은 하늘에 구멍이 났나. 이제 제발 그만 왔으면 하고 생각하죠. 북한에는 한 번 눈이 오면 어마어마하게 내리잖아요. 그때마다 집 마당에 쌓인 눈을 각자 치워야 해요. 그리고 인민반에서 정해 준 담당구역 제설 작업도 해야 했어요. 그렇게 치우면 뭘 해요. 계속 눈이 오는데...

이해연 : 치워도, 치워도 계속 오니까 하늘을 보고 욕하죠.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서 내리는 눈의 양에 비하면 남한에서 내리는 눈은 눈도 아닙니다. 하늘이 오줌을 쌌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냥 찔끔 내리고 말잖아요.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남한에도 서울지역에 눈이 5~6cm가 왔어요.

이해연 : 그때 난리가 났죠.

눈이 와서 도로가 막히고 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 일

한 번도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냥 운이 없는 사람이 사고를 당한다 생각했죠

박소연 : 그때 보셨죠. 북한 기준으로는 눈도 아닌데, 남한 기준으로는 너무 많이 내린 거예요. 그래서 차들이 이동하지 못하니까 TV만 틀면 제설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보도가 쏟아지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눈이 와서 차들이 막히는구나'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남한은 그게 아닌 거예요. 눈이 오면 바로 제설작업을 해서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조치를 하지 못해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 북한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저는 뉴스에서 도로 상황들을 다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북한에서는 장사하는 분들이 '내가 부친 짐이 잘 도착해야 할텐데 눈이 와서 어떡하지?' 하고 걱정을 하죠. 아무리 앉아서 뉴스를 봐도 정치 얘기만 나오지 도로 상황이 어떻다, 어디가 막혔다 하는 내용은 알려주지 않아요. 그냥 앉아서 기다릴 뿐이죠. 그러다가 짐을 싣고 가던 차가 전복되거나 사고나 나도 그 책임을 누구에게 따지지도 못하는 허무한 상황이 되는 거죠.

박소연 : 맞아요. 눈이 올 때 '왜 그 눈을 치우지 않았냐'에 대해 정부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눈이 올 때 차를 끌고 나가 사고를 낸 사람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남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해연 : 남한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왜 정부가 대책을 안 세웠냐며 주민들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데 북한에서는 감히 정부에 어떤 이견도 제기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박소연 : 또 한 가지는, 남한에는 일기예보를 알려줘요. 물론 북한도 일기예보가 있죠. 그런데 반 이상은 틀려요. 그것마저도 10년 전에는 전기가 없으니까 그냥 눈이 온다는 예보를 모른 채 눈을 맞이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나가서 보면 눈이 강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눈이 온단 말이 없었는데' 생각할 뿐이죠. 그러나 남한은 며칠 전부터 눈이 내린다는 예보와 더불어 심지어 몇 밀리미터까지 온다고 알려주니까 미리 대처를 할 수 있죠.

이해연 : 북한에서는 그런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북한에서도 첫눈이 오면 데이트도 하고 소원도 빌어요

남한 드라마로 생긴 문화입니다

이제 북한 젊은 세대들은 겨울엔 ‘스키’도 탑니다

박소연 : 그리고 제가 알기에는 최근 북한에도 눈이 오게 되면 젊은 청년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이해연 : 그렇죠. 커플들이 나가서 데이트도 하고 소원을 비는 문화가 생겼어요.

박소연 : 눈이 오면 소원을 빈다고요?

이해연 : 어떻게 그런 문화가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남한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첫눈이 오면 '어떻게 해주세요' 하며 간절한 소원을 비는 장면이 있었어요. 이런 드라마나 영화를 북한 젊은 층들이 많이 보죠.

박소연 : 같은 탈북민으로서 놀랄 만한 얘기인 것 같아요.

이해연 : 10년 전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나요?

박소연 : 10년 전에도 물론 남한 드라마를 엄청 많이 봤어요. 그때는 주로 연예인들의 얼굴, 그 사람들이 입은 옷, 집 등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두었지 첫눈이 올 때 소원을 빈다? 이런 것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해연 : 저는 자연스럽게 그런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박소연 : 와! 10년 차이가 너무 다르네요.

이해연 : 선배님이 살았던 1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요, 북한에도 겨울이 되면 연인들이 스키장에 가서 하루를 즐기는 문화도 생겼어요.

박소연 : 연인들이 겨울에 스키장을 간다고요?

이해연 : 옛날에는 아빠들이 스키를 만들어줬잖아요?

박소연 : 그렇죠. 목수 아저씨에게 담배 한 갑을 주고 만들기도 했었죠.

이해연 : 그런데 지금은 스키장에 가면 대여를 해줘요. 그래서 스키를 타고 즐기는 문화가 생겼어요.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주신 스키를 타고 오르내리던 눈 덮인 마을 뒷산에는 올해도 변함없이 눈이 쌓여 있겠죠. 눈 오는 풍경은 제 눈앞에 그대로 그려지는데… 10년 만에 스키도 즐긴다는 고향의 겨울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합니다. 남은 얘기는 다음 시간에 전해드릴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