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의 빨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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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북한의 빨간 눈

이해연 :선배가 살았던 10년 전이랑 달라진 게 있다면 연인들이 겨울이 되면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타면서 하루를 즐기는 문화가 생겼다는 겁니다.

박소연 :연인들이 겨울에 스키장을 간다고요? 북한에서?

이해연 :네, 옛날에는 스키를 아빠들이 집에서 만들어주고 그랬잖아요.

박소연 :그렇죠. 목수 아저씨들에게 담배 한 갑 주고 만들었죠.

이해연 :그런데 지금은 북한도 스키장에 가면 장비 대여를 다 해주거든요, 그래서 친구끼리 겨울이면 스키장에 가서 스키를 탑니다.

박소연 :정말요?? 젊은 세대들이 주로 이용하겠죠?

이해연 :그렇죠. 한 5~6년 전부터 생긴 것 같은데요. 제가 오기 전까지는 일반인들도 많이 갈 수 있었어요. 스키장 급에 따라 다르기도 한데요. 제가 살던 곳은 삼지연 쪽이라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 일반인들도 가서 즐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새로 생긴 마식령 스키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박소연 :거기는 보도를 많이 해서 알고 있어요.

이해연 :엄청 떠들었죠. 시설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못 가봤습니다. (웃음)

제가 살던 지방은 삼지연이 가까워서 연인들이 겨울이 되면 스키 타러 갔어요. 5-6년부터 시작됐는데 지금은 일반인들도 많이 갑니다

박소연 :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네요… 추운 겨울에 연인들이 스키장에 가서 즐긴다… 그런 문화 자체가 없었어요.

이해연 :그렇죠. 솔직히 북한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려고 해도 어디 갈 곳이 없어요.

박소연 :주로 시장이나 집이죠.

이해연 :지금은 연인들에게 새로운 데이트 코스가 생긴 셈이죠.

박소연 :일단 연인들이 스키를 타면서 연애한다는 것도 놀랍고, 스키장도 놀랍고… 아까 마식령 스키장 얘기를 하셨잖아요. 사실 몇 년 전에 북한에서 대규모로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한다고 떠들어서 남한에서도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왜냐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배급도 없고 전기도 안 주는데 저렇게 큰 스키장을 만들어서 뭘 하자는 거냐, 외국인들 오게 해서 돈을 벌려 그러나, 저도 궁금했네요.

이해연 :마식령 스키장은 간부들이나 즐길만한 곳이고요. 저도 그냥 텔레비전으로만 봤습니다.

박소연 :마식령 스키장을?

이해연 :아시잖아요? 북한에는 어떤 건설을 한다고 하면 먼저 근심부터 들어요. 건설에 동원해야 하니까요...

박소연 :그렇죠.

이해연 :또 지원을 하라고 난리겠다, 시멘트 브로크를 찍어서 내라고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북한은 건설을 하면 전부 주민들을 동원하기 때문에 마식령 스키장 주변 사람들이 고생들 많이 했을 겁니다.

박소연 :맞아요. 그게 남북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남한은 제주도에 대형 스키장을 건설한다고 하면, 남한 사람들은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우리가 직접 이용할 수 있으니 시설이 어떻게 될까 관심을 가져요. 그런데 북한은 뭘 건설한다면 '야, 저거 또 건설하느라, 주민들에게 돈을 얼마나 내라 할까' 한숨부터 나가요. 내가 갈 수 있다는 설렘보다는 근심부터 쌓이죠.

아직까지는 북한은 경제적으로 빡빡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고 있어요,

좋은 곳을 찾아 놀러도 가고 엄마도 친구 모임을 나가요

박소연 :남한에도 스키장이 곳곳에 있어요. 그런데 비용이 적지 않거든요. 북한도 삼지연 스키장까지 가려면 이동도 해야 하고, 스키를 빌리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걸 각오하고 간다는 거죠?

이해연 :예전처럼 일만 하거나 동네에서만 논는 게 아니라 좋은 곳을 찾아가 즐길 줄도 알고 또 요즘은 엄마들도 친구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사느라고 친구를 만날 겨를이 없었는데 말이죠. 요즘 엄마가 친구들끼리 어디 놀러 가려고 하면 저만해도 막 가라고 해요.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빡빡하게 살지만 그래도 생활을 즐기려고 노력해요.

박소연 :해연 씨 얘기를 들어보니까, 일단은 나이 드신 엄마들의 가치관이 변했고 또 그걸 공감해주는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도 변한 것 같아요. 이럴 때 갑자기 북한 구호가 생각나요.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오늘을 위해 오늘을 살자'(웃음) 우리가 이것이 당의 구호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 엄마들의 삶의 방식과 너무 들어맞는 것 같아 참 좋습니다.(웃음)

북한 스키장에는 삭도(리프트)가 없어요. 스키를 안고 기어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디면 뒤에 있는 사람들도 다 넘어지고… 죽자고 웃죠

박소연 :해연 씨가 북한에서 남자친구랑 스키장에 가서 장비도 대여했다고 했는데, 스키장은 스키만 빌려서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안에 시설들도 잘 갖춰져야 하는데 북한 스키장은 어때요?

이해연 :시설이 잘 구비 됐다고는 할 수 없어요. 안전에 있어서도 그렇고...

박소연 :혹시 산만 있는 것 아니예요?

이해연 :그렇지는 않은데 그냥 일단은 올라가는 게 문제예요. 삭도(리프트)가 없어요. 그냥 기어서 올라가요. (웃음)

박소연 :아, 꼭대기까지요? 스키를 안고?

이해연 :백두의 혁명 정신으로 기어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서 넘어지면 뒤에 따라오던 사람들도 함께 구르게 되어 다들 죽자고 웃죠.

박소연 :상상이 되네요. 그런데 안전요원이 없어요? 사고라도 나면 어쩌죠?

이해연 :네, 없어요. 대여를 해주고 타라 하면 그 다음부터 오르든지 내리든지 상관 안 해요.

저는 남한에 와서 겨울을 보내면서 빨간색 눈을 못 봤어요

북한에는 스키장뿐 아니라 그냥 길에서도 빨간색 눈이 자주 보입니다

이해연 :저는 남한에 와서 겨울을 보내면서 빨간색 눈을 못 봤어요. 이 빨간색은 코피인데… 북한에는 겨울이면 빨간 눈을 종종 볼 수 있죠. (웃음)

박소연 :스키장에 가면 빨간 눈이 있다는 얘기에요?

이해연 :근데 그게 이상하게 안 봐도 되는 것이… 스키장뿐만 아니라 일반 길거리의 오르막길 같은 데서 넘어져서 흘린 코피인 거죠. (웃음)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남한은 일반적으로 거리에 나가면 눈이 많이 안 오거든요. 그런데 스키장에 가보면 항상 눈이 많이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런가 하고 궁금했어요. 눈을 어디서 모아 오나요?

박소연 :저도 처음에는 그냥 온 나라의 눈을 모아서 여기다 쌓아놓은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기계로 인공 눈을 만들어 새벽에 뿌리더라고요.

이해연 :그렇구나!

박소연 :스키장을 1박 2일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산책하는데 새벽에 스키장 안을 보니까 큰 기계에서 뽀얀 '김' 같은 게 뿜어나오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눈을 만드는 것이더라고요. 인공으로 눈을 만드는 거예요.

이해연 :눈도 만들어요?

박소연 :그렇다니까요! '남조선은 과학이 발전했다 하더니 눈도 만드는구나. 이러다 조금 있으면 사람도 만들겠다'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웃음)

이해연 :지금 만들고 있지 않나요? (웃음)

첫눈을 보며 빌어보는 정착 1년 차의 소원,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박소연 :자, 이제는 마무리 할 시간인데 저는 해연 씨에게 이걸 꼭 물어보고 싶어요. 우리가 첫눈이 오면 소원을 빌잖아요. 해연 씨는 올해 첫눈이 왔을 때 어떤 소원을 비셨어요?

이해연 :뭐니 뭐니 해도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게 제일 부럽더라고요. 좋은 일이 있던 나쁜 일이 있던 그래도 가족들이 제일 소중하구나 그런 것을 느끼면서 부모님과 동생들이랑 함께 좋은 세상에서 같이 여행도 함께 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빌었답니다.

박소연 :그래요. 건강히 잘 계시다가 좋은 날 서로 만나 마음껏 즐기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오늘 겨울과 눈 얘기, 유쾌하게 전해준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