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여자들 다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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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안녕하세요.

박소연 : 우리 탈북민들이 남한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잖아요. 너무 궁금해서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봤는데 차가 너무 많아 놀랐어요.

이해연 : 저는 그렇게까지 놀라진 않았는데… 제가 중국에서 잠깐 살면서 도로에서 오고 가는 차들을 많이 봤거든요.

박소연 : 10년 전 저하고 많이 다릅니다. (웃음) 저도 중국에서 잠깐 살 때 한국 드라마에서 차들이 많은 장면을 보긴 했는데 그건 그냥 예술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도착해서 인천 공항에서 버스를 탔는데 날이 밝은 거예요. 출발한 버스가 자꾸 서길래 빨간 커튼을 열고 밖을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도로 바닥이 안 보였어요. 그때가 마침 아침 출근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근데 우리는… '야~ 남조선 사람들이 탈북자들이 온다고 온 나라 차들을 여기다 다 가져왔구나. 남한이 이렇게 잘산다는 것을 시위하네' … 이런 황당한 생각을 했었죠. (웃음)

공항에서 내려 숙소 가는 길 처음 본 남한 도로

“야~ 남조선 사람들이 탈북자 온다고 온 나라 차를 여기다 다 가져다 놨구나”

이해연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저는 그게 더 신기한데요? (웃음) 저는 차가 많은 것보다는 차들이 너무 질서 있게 가는 게 놀라웠습니다. 신호를 잘 지키니까 차가 많아도 도로가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저도 그건 느꼈습니다. 그래서 야… 진짜 남한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말을 잘 듣고 착할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호도 딱딱 지키고… 제가 운전하면서 알았는데 꼭 착해서 그런 건 아녜요. 내가 신호를 어기다 적발되면 한국 돈으로 7만 원, 북한 돈으로는 거의 40만 원 벌금을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법규를 지키겠어요, 안 지키겠어요?

이해연 : 어쩔 수 없이 지켜야겠네요. (웃음)

박소연 : 그런데 꼭 벌금이 아니라도 차들이 너무 많다 보니 앞차가 갑자기 정차하면 뒤차들이 연달아 와서 사고가 나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교통 법규는 꼭 지켜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더라고요.

이해연 : 생명이 달린 문제라서 꼭 지켜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제법 보이는 승용차 개인 돈으로 구입하지만 개인이 소유 못해 기업소에 이름을 걸고 매달 돈을 내야

박소연 : 제가 고향을 떠나온 지 이제 10년이 넘었잖아요. 가끔은 남한 방송을 통해서 북한 영상을 보는데 생각 외로 승용차들이 도로에서 보이는 거예요. 저희 때는 간부들 차 외에는 승용차 한 대를 보려면 첫날 색시(결혼식 차)나 지나가야 볼 수 있었거든요. 북한도 승용차가 이제 꽤 많아진 것 같네요?

이해연 : 네, 많이 변했죠. 승용차가 보인다고 굳이 말하는 게 신기해요.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생겼어요. 옛날에는 진짜 결혼식 같은 때 신랑, 신부를 태울 수 있는 게 승용차잖아요. 그럴 때만 구경하지 웬만한 날에는 승용차를 타볼 수 없었어요.

박소연 : 시골 같은 데는 결혼식 날에도 걸어가요. 도로가 나빠서 들어도 못가거니와, 그나마 도시에서만 승용차를 탈 수가 있었어요.

이해연 : 지금은 일단은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퍼센트가 늘었는데요. 여전히 기업소 자동차로 등록해야 사용할 수 있긴 해요. 사실 힘들게 내가 돈을 벌어 차를 샀는데 자기 거라고 등록할 수 없으니 안타깝긴 한데…

박소연 : 개인이 승용차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네요. 10년 전 북한에서 승용차를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재일 귀국자 정도였죠. 그때는 승용차는 거의 쓸 곳이 없었어요. 주로 6톤급 화물차 '해방호'를 중국에서 중고로 들여와 건설회사나 여객사업소, 운송사업소에 등록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개인이 돈 주고 구매한 자동차이지만 국가 명의로 돼 있으니 장사로 얻는 이익의 절반은 회사에 줘야 했죠.

이해연 : 아, 그리고 북한은 자동차와 승용차를 다르게 구분하잖아요.

박소연 : 맞아요. 그렇죠!

이해연 : 북한에서 부르는 자동차는 남한에서 트럭 같은 거죠.

박소연 : 그렇죠. 화물차 같은 건 자동차고 승용차는 승용차…

이해연 : 네, 또 특징적인 것이 북한 자동차는 열풍기(히터)가 없어요. 한겨울에도 차를 타면 손도 시리고 발도 시려서 난리거든요. 문제는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여기서는 큰일이 나죠.

박소연 : 10년 전 북한에는 음주운전이 많았어요. 운전사들은 술 한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병나발을 불어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운전하는데... 그래도 그 차를 탈 수 밖에 없으니 우리는 항상 칠성판을 등에 지고 장사를 다녔어요.

이해연 : 맞아요.

북한 자동차의 특징, 히터가 없다

겨울철 추위를 핑계로 운전수가 마시는 술

항상 칠성판을 지고 다니는 장사길

박소연 : 남한은 주요 도로에서 음주단속을 자주 합니다. 10년 전 북한에서도 음주 단속은 했어요. 안전원이 차 문을 열어요. (해연 : 하~ 하라고 하죠) 술 냄새가 나잖아요. 운전사에게 '술 마셨냐?' 물으면 '내 술 마시는 걸 봤습니까!' 안 마셨다 버티죠. 남한은 그렇게 못해요. 아예 기계를 갖다 대잖아요. 그러니까 속일 수가 없죠. 10년 전에 하나원 동기생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운전해서 서울로 들어오다가 음주단속에 걸렸어요. 음주측정 수치가 규정을 위반한 거예요. 경찰에게 잘못했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더니 '북한에서 왔다고 용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더래요. 그 친구는 북한처럼 생각하고 5만 원짜리 두 장을 뇌물로 경찰에게 건넸다가 가중처벌까지 받았어요. 북한 같으면 안전원에게 돈을 주면 눈감아 주었는데... 어쨌든 그 일이 있은 뒤로 절대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이해연 : 그게 좋은 거죠. 북한에서 살 때는 자동차 적재함에 타고 아슬아슬한 경험을 많이 해서… 여름 같은 때는 좀 나은데 겨울에는 눈길에 보호 난간도 없는 벼랑 끝을 지날 때면 보통 무서운 게 아니죠. 그러다 남한에 와서 그런 규정들이 잘 지켜지는 것을 보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아침부터 여자 태우면 재수없다

운전수 기분 나쁘면 “여자들은 다 내려”

남자로 태어나서 내 차 갖고 다녀보고 싶었던 소원

박소연 : 아, 그리고 북한은 지금도 그래요? 자동차에 여성들이 타게 되면 사고가 나고 타이어가 터진다고…

이해연 : 아침부터 여자를 태우면 재수 없다고…

박소연 : 지금도요?

이해연 : 네, 태우면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막말을 많이 하죠. 재수없게 생겼다고 안 태우기도 하고… 아니, 우리가 뭘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참 억울해요.

박소연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건 아직도 변함이 없네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운전사들이 권력이 높잖아요. 농촌에서 시내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시는 여성분들도 운전사 기분에 따라 차를 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날은 돈을 많이 쥐여줘도 운전수가 오늘 여자를 태우지 않겠다고 하면 탈 수 없거든요.

박소연 : 저는 북한에 살 때 운전사가 어떤 때는 간부보다 더 권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고무바퀴든 쇠바퀴든 굴리면 돈이 데굴데굴 굴러온다는 말이 있어요. 운임을 내고 화물차를 타도, 운전사가 갑자기 기분이 나쁘면 '간나들 다 내리라'고 욕을 하죠.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내려야 했어요. 운전사가 왜 화가 났는지도 감히 물어보지도 못하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한구석에서 눈치를 봐야 했고... 그래서 항상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내 차를 가지고 한 번 다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운전사가 사람질 하면 전봇대에 꽃이 핀다'. 그 정도로 인간성이 없는 사람이 운전사라는 뜻이죠. 그런데 욕을 하면서도 그 사람들 손에서 우리가 먹고살아야 되니까 속상한 거죠. 특히 여성들은 운전은 고사하고 운전사 옆에 앉는 것도 눈치 보여요. 그런데 여기 오면 여자가 운전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죠. 해연 씨는 여자들이 운전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어때요?

이해연 : 너무 멋있고요… 차가 많아서 놀란 게 아니라 저는 여자들이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놀랐어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박소연 : 동감입니다! (웃음)

그래서 해연 씨는 남한에 와서 처음 딴 것이 운전면허증이고요. 지금까지 대여섯 개의 자격증 시험을 보면서도 가장 기뻤을 때는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을 때랍니다. 그만큼 운전면허 시험이 쉽지 않은데요, 다음 시간에 파란만장했던 운전면허 따기 사연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