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탈북보다 무서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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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탈북보다 무서운 것

이해연 : 저는 북한에 살 때 남한 드라마에서 여성분들이 운전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빨리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간절했어요.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딴 자격증이 운전면허잖아요. (웃음)

박소연 :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죠?

이해연 : 그렇죠. 필기, 기능, 도로 주행…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박소연 : 무섭지 않았어요?

이해연 : 아니요. 너무 간절해서 무섭지는 않았는데 자격증 필기시험을 준비할 때 생소한 용어는 어려웠어요. 예를 들면 북한에서는 '천천히 간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서행한다'고 표현하거든요.

박소연 : 북한에는 '서행'이란 말을 안 쓰죠.

이해연 : 그리고 우리는 신호등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잖아요. 일상에서 빨간불, 파란불 신호등을 경험하지 못했고 교과서에서만 봤기 때문에...

박소연 : 열악한 전기 사정 때문에 신호등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요.

이해연 :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고 자동차 내부에 대한 설명도 너무 복잡하더라고요. 많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단번에 땄습니다.

박소연 : 대단하다… 필기시험은 북한으로 말하면 글로 쓰는 시험이잖아요? 필기는 합격해도 다음에는 실기시험인데 이게 어렵잖아요.

정착 교육 시설부터 지원되는 탈북민의 운전면허시험

운전면허증은 간절함이었다

“운전은 신이 났어요”

이해연 : 솔직히 실기는 필기보다 더 신났던 것 같아요. 제가 기능 실습을 신나게 하니까 시험관분이 재밌냐고 묻길래 신난다고 하니까 '아이고... 운전은 신나게 하면 안 돼'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신나는데 어떡해요! 제가 북한 사람인데 한국에서 여성들이 운전하는 거 보면 너무 멋있어서 진짜 면허를 따고 싶다고 했더니 이해하시더라고요.

박소연 : 탈북민들은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운전면허증 필기시험을 볼 수 있어요.

이해연 : 저도 거기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봤어요. 의무는 아니고 선택이죠. 각자 따고 싶으면 따고 안 따고 싶으면 안 따는데 저는 땄어요. 선배님도 하나원에서 땄어요?

박소연 : 저는 10년 전에 하나원에서 눈 수술을 했어요. 눈에 안대를 끼고 있어서 불편 한데다 면허증을 따야겠다는 욕망이 없었어요. 내가 어떻게 차를 끌고 다니지? 차가 얼마나 비싼데... 북한에서 휘발유는 금값이라고 했는데 금을 땅바닥에 뿌리면서 다니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아들도 있고 북한에 남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때는 은행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돈주머니에 돈을 착착 모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어요. 그래서 운전면허증 필기시험 친다고 젊은 애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 '어이구, 저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 무슨 자동차야. 자동차가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가? 저래서 어떻게 정착하겠어…' 이러면서 뒤에서 욕을 했어요. (웃음) 나도 부럽긴했죠… 사회에 나왔는데 대중교통이 너무 좋은 거예요. 집 앞에서 버스, 지하철 타면 단숨에 회사까지 가는 거예요. 정착해서 몇 년 동안은 생각을 못 하다가 아들이 점점 커가면서 자동차에 대한 욕망이 생겼는데 마침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어요. TV를 보면서 '야, 이러다 갑자기 우리도 독일처럼 통일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차를 샀어요. 그것도 일반 승용차가 아니라 조금 높은 차, 여기서는 그걸 SUV라고 부르는데 약간 차체가 높아요. 제가 살던 고향이 산밑인데 높은 곳에 차가 올라가려면 낮은 승용차는 못 올라가요. 그걸 생각하고 2만 달러짜리 높은 차를 질러버렸어요. (웃음)

이해연 : 잘하셨어요.

박소연 : 아니 근데 남한에는 내 돈이 없어도 외상으로 자동차를 살 수 있더라고요.

이해연 : 맞아요. 진짜 외상이 되더라고요. 자동차는 일시불로 통 돈(전액)을 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할부도 있고 빌려주는 차, 렌트카도 있더라고요.

박소연 : 해연 씨, 1년 됐는데 할부나 렌털을 벌써 알아요? 저는 5년 만에 알았어요.

이해연 : 진짜요? 알지 왜 몰라요… (웃음)

박소연 : 결국 자동차를 살 때 36개월 할부를 했어요.

36개월 외상으로 산 첫 차

주차장에 세워두고 일주일을 잠을 못 자

“바퀴와 후사경을 도둑 맞을까 너무 걱정됐어요”

박소연 :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자동차 회사에서 판매원이 집까지 차를 가져왔는데 설레긴 하는데 불안감이 더 했어요. 왜냐하면, 비싼 자동차를 한지에 놓고 자는데 잠이 오질 않아요.

이해연 : 도둑맞을까 봐요. (웃음)

박소연 : 그렇죠! 판매원이 새 차에 번호판까지 딱 달고 나서 '바깥에 세워드릴까요? 운전 연습하게요' 그러길래, '아닙니다. 햇빛을 받으면 차가 빛이 바랩니다. 지하 차고에 넣어 주세요' 그래서 그분이 지하 차고에 넣어 주셨어요. 그때부터 막 설레는 거예요. 차 열쇠를 딱 받았는데 그날 저녁부터 잠을 못 자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지하 차고에 들락날락했어요.

이해연 : 혹시 바퀴(타이어)를 누가 뜯어가지 않았을까… (웃음)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서는 후사경이라고 하죠. 뒤를 보는 거울을 누가 떼어갔을까? 그리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 뭐라하죠? 아, 와이퍼! 북한에는 차만 세워져 있으면 그거 뜯어 가잖아요! 그것도 있는지 다 확인하고, 한 주일을 잠도 못 자고 차 확인하러 다녔어요. (웃음)

이해연 : 아… 못살아요. (웃음) 잠을 못 잤다고 하는 게 저는 공감이 되네요.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차가 없어서 그런 느낌이 없지만 앞으로 봐야죠. 선배님은 운전면허를 따시고 차를 사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박소연 : 저는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를 뽑았어요. 왜냐면 그때 갑자기 판문점에서 남북 윗분들이 만나서... 일단 도로주행을 합격을 못 한 상태에서 차부터 샀죠. (웃음) 어차피 남들이 다 하는데 그렇게 착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도로 주행이 쉽지 않더라고요. 도로에 나왔는데 차들이 너무 빨리 달리는 거예요.

이해연 : 시속 70㎞는 기본으로 다니죠.

박소연 : 운전대와 내 몸이 하나가 되더라고요. 이렇게 딱 굳어서 너무 힘든 거예요. 저는 시험칠 때 경찰서 담당 보호관이 도와줬는데요, 탈북민들은 운전면허 시험을 칠 때 40%를 할인해줬어요.

이해연 : 할인을요?

박소연 : 예, 그런데 남한은 안 통하는게 있어요. 여기는 가살(애교)도 안 통하고 예뻐도 안 통합니다.(웃음) 시험을 칠 때 기계가 채점하거든요. 마지막으로 도로 주행 시험을 치는데 시험관이 노트텔(노트북)을 가지고 타는 거예요. '출발!' 하더니 그걸 딱 눌러요. 운전은 내가 하고 검사는 노트텔이 합니다. 차선을 밟거나 내가 실수하면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점수가 100점에서 점점 감점되는데 직접 보면서 하면 더 긴장됩니다!

이해연 : 어우 맞아요.

탈북보다 무서웠던 운전면허 시험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던 한 마디

“탈북도 하신 분이 뭐가 무서워요”

박소연 : 도로 주행 처음하고 옷이 다 젖었어요. 탈북할 때 무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탈북할 때는 누가 오면 풀숲에 숨어 있으면 되잖아요. 이거는 차들이 싱싱 달리는데 끼워 들어야 하니까 죽겠는 거예요. 첫 도로 주행 시험에서 불합격하고는 다시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다 포기했는데 면허 학원 소장님께 전화가 왔어요. 제 담당 보호관이 부탁을 하셨대요. (웃음) '탈북까지 하신 분이 왜 그래요?'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탈북하는 게 나아요. 무서워요.' 하니까 '누구나 하는 겁니다. 한 번만 더 나오세요.' 하더라고요. 억지로 나가긴 했는데 이번에도 불합격이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 순간에 '탈북도 했잖아요' 이 말이 딱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아… 내 메콩강도 건넌 여잔데 이것도 못 하겠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전해서 결국 70몇 점인가 맞고 합격을 한 거예요. 그날 집에 와서 정말,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해연 : 저도 자격증을 딴 것 중에서 운전면허를 땄을 때가 제일 기뻤던 것 같아요. 운전면허를 이렇게 딱 쥐고 아, 내가 따긴 땄네 이렇게… (웃음)

인생의 첫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저는 이것이 내 인생을 또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컸습니다. 초보 운전사가 경험한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