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제네시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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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제네시스와 나

박소연 : 저는 정착 초기에 신기하고 감동한 게 있는데 차들이 앞에 가잖아요. 그런데 차 뒤 유리에 무슨 글자를 잔뜩 써 붙인 거예요,

이해연 : 맞아요. 저도 완전 신기했어요.

박소연 : 해연 씨도 신기했어요?

이해연 : '초보 운전' 그리고 '아기가 타고 있어요' 이런 거요. 처음에는 와~ 진짜 저런 거를 왜 붙이고 다니지? 북한은 운전사가 초보 운전인지 어쩐지 모르잖아요. 일단 그런 게 북한에 있지도 않고요.

박소연 : 기껏해야 당의 구호나 붙이죠.…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웃음)

북한에는 없는 자동차 문화 , 차량 뒤 유리에 '초보운전' 문구 붙이기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자기 아이를 망신 주려고 붙였는가?

이해연 :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같은 구호만 봤었는데 신선했어요. 일단 초보 운전이라고 써 붙이면 뒤에 있는 운전사들이 다그치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 배려해줄 수 있고 또 아이가 안에 있다는 글씨를 보면 뒤차가 너무 바싹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고…

박소연 : 간만에 공통점을 찾았네요. 10년 전에는 어떤 차에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라는 종이를 붙여놓은 거예요. 제가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어요. '아니, 저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망신을 주자고 저 뒤에다 붙이는가?' 생각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까,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으니까 제발 좀 양보 운전 해달라… 이 얘긴데 정착 연차가 늘어나면서 이해했어요. 그리고 '초보운전'이라고 쓴 그 밑에다가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붙인 것도 봤어요. 그거 보니까 저도 너무 양보해주고 싶은… (웃음)

이해연 : 완전히 그 마음, 이해 갑니다. (웃음)

박소연 : 그래서 저도 차를 딱 뽑자마자 뒷유리 양쪽에 한 개 씩, 스티커를 두 개나 붙였어요. 하나만 붙여도 되는데 두 개를 붙이면 사람들이 더 많이 양보해줄 것 같았죠. 올해로 차를 뽑은 지 5년이 됐어요. 드디어 작년에 하나를 뜯었습니다. 이제 하나가 남았는데 5년 후에나 뜯으려고요. (웃음) 10년 초보로 사는 거죠. 그래서인지 끼어들 때 덜 미안하고 사람들이 양보를 잘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운전할 때 양보해주었는데 앞차가 가만히 있으면 괘심해요. 감사하다는 뜻으로 비상등을 켜줘야 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그걸 몰랐어요. 한국 지인이 얘기해 주고 나서야 안 거예요. 누가 양보해주면 비상등을 여러 번 눌러주래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고요. 운전하면서 이런 약속들이 몇 개 있는데요… 비상등을 누르며 저는 교양 있는 사람이나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끼죠. (웃음)

이해연 : 운전면허 교육하실 때 그러시더라고요. 운전할 때 얼굴이 안 보여도 차 운전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가 있다고요.

박소연 : 맞아요.

이해연 : 양보를 잘하냐 못하느냐, 운전을 어떻게 하느냐 따라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제가 또 운전을 하면서 경험한 건데… 신호대기 할 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는 거를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굳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해연 : 왜요?

박소연 : 이제 '파란불이 바뀌겠다' 하는 순간에 바로 출발 안 하면 벌써 뒤에서 '빵' 하거든요. (웃음) 성질 급한 건 남북이 다 같다는 거… 예전엔 맨 앞에 있으면 신호등 보면서 긴장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뒤에서 '빵'하면 신호가 바뀐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하고 그냥 가요.

탈북민들은 왜 자동차에 집착하는가 ?

차를 사는 순간 집 하나 더 월세로 얻는다고 생각해야

“그래도 빨리 사고 싶어요, 능력이 안 되는 게 안타까울 뿐”

박소연 : 우리가 운전면허에 대해서 지난 시간부터 얘기하고 있는데요, 우리 탈북민들은 대부분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따는 게 자동차 운전면허증이고 열 명 중 아홉 명은 일 년 만에 차를 다 뽑잖아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해연 씨는 어떻게 느꼈어요.

이해연 : 아마 저도 능력이 있으면 바로 차부터 살 거 같아요. 그런 능력이 지금 없어서 너무 안타까워요. (웃음)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드라마에서 남한 여성분들이 운전을 하고 다는 게 너무 멋있어서 운전면허를 제일 먼저 따게 됐고 운전하고 싶다는 욕구도 무럭무럭 키운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듣고 보니까 우리에게 운전은 로망인 것 같아요. 그렇죠?

이해연 : 드라이브도 하고 어디 놀러도 가고… 제가 아직 20대라서 그런 생각이 더 많은 지도 모르겠어요.

박소연 : 제가 방송을 함께 하면서 혜연 씨를 몇 개월 옆에서 지켜봤잖아요. 제 생각에 해연 씨는 오 년 안에는 차를 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에?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박소연 : 이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생각이 달라져요. 자동차는 뽑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2만 달러면 정말 좋은 국산 자동차를 뽑습니다. 제가 지금 2만 달러 차를 타고 다니거든요. 외제 차 필요 없어요. 정말 좋아요. 일단 뽑게 되면 일어날 사고에 대비하는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첫 해에는 보험료가 비싸요. 보통 1,300달러 정도가 돼요. 거기에 자동차는 개인 재산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정도 자동차 세를 내야 하고 휘발유 값도 장난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자동차를 5년 동안 끌고 다니는데 집을 두 개 운영한다고 생각해요. 정확히 두 집 월세를 낸다고 생각하면 돼요.

이해연 : 월세보다 더 비싸지 않아요?

박소연: 한 달 평균 200달러에서 250달러가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알뜰한 해연 씨가 5년 안에는 차를 안 뽑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능력이 있으면 뽑을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오 년 안에요?

이해연 : 제가 일 년 됐을 때 운전 연습을 할 수 있는 작은 중고차를 뽑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됐어요. 생각을 많이 하다가 결국은 안 샀어요. 솔직히 간절하게 갖고 싶었죠. 그렇지만 조금만 참자. 남한에 온 지 일 년밖에 안 되고 도로 상황이나 법 규정도 모르는데 괜히 사놓고 후회할 것 같았어요. 주변에서 '차는 사는 순간 돈을 버린다고 생각해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았고요. 그때 저도 알아봤는데 선배님이 말한 것처럼 차는 사는 게 다가 아니고 자동차세, 재산세에 초보는 보험료가 엄청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안 되겠다 싶어 접었죠. 빨리 능력이 되고 싶습니다!

50대에겐 단순히 꿈이지만

20대에겐 현실이 될 수도

까만 제네시스 타고 돌아갈께요

박소연 : 잘하셨어요. 해연 씨는 어떤 차를 운전하고 싶어요?

이해연 : 희망은 아주 비싼 차는 인데 이것 어디까지나 희망이니...

박소연: 국산 차? 외제 차?

이해연 : 외제 차를...

박소연 : 와… 남한에 온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 외제 차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말이 나온 김에 기종까지 말해보죠.

이해연 : 내가 그 차를 사려면 일단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만... 어쨌든 로망은 제네시스라는 차입니다!

박소연 : 와. 제네시스! 근데 해연 씨, 제네시스는 대한민국 차예요.

이해연 : 진짜요?

박소연 :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는 차죠.

이해연 :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네요. (웃음)

박소연 : 왜? 제네시스가 좋아요?

이해연 : 제가 한 번 타봤는데 내부가 일단 너무 좋고 기능도 다양하고…그래서 제네시스를 타고 싶었어요.

박소연 : 사실 저도 제네시스가 로망이에요. 멋있잖아요. 같은 자동차라도 급에 따라 가격은 좀 차이가 나요. 제가 타고 다니는 차의 거의 두 배 정도죠. 제네시스는 사실 저한테는 로망만 될 수 있어요. 내일모레면 쉰 살이니까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해연 씨는 20대잖아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해연 : 네! 열심히 해볼게요.

박소연 :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준다'. 해연 씨!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모으고 잘 정착하고 성공해서 제네시스 타시기를 바래요. 그때 저랑 피디님이랑 옆자리 한번 앉아보는… 그런 소중한 꿈을 꿔볼께요.

이해연 : 저도 열심히 벌어서 내가 원하는 차에 선배님 모시고 여행 한번 가보고 싶네요. (웃음)

박소연 : 해연 씨 고향과 제 고향이 멀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네시스 타고 이왕이면 우리 고향까지 가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해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