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사회주의 1등 신부감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사회주의 1등 신부감

박소연 : 최근 북한의 결혼 과정은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중매 혹은 자유연애....

이해연 : 중매로 결혼하거나 자유 연애로 결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금은 자유연애를 많이 추구해요. 퍼센트로 보면 절반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5:5 라니요! 대단한 변화인 것 같아요.

이해연 : 옛날에는 어떠셨는데요?

박소연 : 그때는 자유연애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대부분 선을 봤죠. 남한은 선을 봐도 분위기 있는 커피점에서 당사자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북한은 선을 보면 남자쪽 가족이 여자 집으로 몰려오잖아요? (웃음) 제가 하루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문 앞에 신발이 서른 켤레 정도 놓여있고 방안에는 결혼상대자가 가운데 있고 뒤에는 부모님들과 중매꾼들이 쭉 앉아있더라고요.

이해연 : 어머, 저도요.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웅성웅성 하고 남자 쪽 부모님들이 오셔서 얘기 나누고 있더라고요. 저는 도망쳤어요… (웃음)

박소연 : 아, 그건 10년 전과 똑같네...(웃음)

결혼하면 여성은 고난의 길 시작

돈도 벌고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고

결혼하면 어떻게 살게 된다는 걸 알았으니 결혼이 두려웠어요

박소연 : 해연 씨는 북한에서 떠날 때 20대 중반이셨는데 결혼 생각 없었어요?

이해연 : 딱히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나이가 금값일 때 결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더더욱 없었고요.

박소연 :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어요?

이해연 : 북한에선 현실적으로 결혼을 하면 여자들이 힘들어요. 여자가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도 낳고 키워야 하고 살림도 해야하고요. 그렇게 힘들게 사는데 꼭 결혼을 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 보면 서른 살 넘은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장사도 하는데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박소연 : 주변 시선을 어땠어요? 저희 때는 약혼을 했다가 파혼으로 결혼 적령기를 놓치신 분들이 보통 혼자 살았는데요. 장사를 잘해 돈도 많고 벌고 시장에 자신만의 토대를 잘 구축하고 있어도 주변에서 장사를 잘해 뭣하냐, 시집도 못 갔는데... 이런 게 사회 분위기였거든요.

이해연 : 지금은 아닙니다. 자기 능력 있어서 집 사고 돈 벌면 굳이 상대를 고르지 않아도 절로 오기도 하죠.

박소연 : 아, 능력만 있으면 결혼 상대는 줄을 선다? (웃음)

1등 신부감의 조건 “장사를 잘하나”

아직도 토대는 존재해 … "북한은 계급 사회라는 걸 남한에서 와서 알았어요"

“농장원은 농장원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박소연: 그럼 최근에는 어떤 상대가 최고의 신랑, 신부로 꼽히나요? 기준이 궁금해 지네요.

이해연 : 남성이 여성을 보는 기준은 능력입니다. 장사를 잘하고, 살림살이를 잘하는 여성을 선호합니다.

박소연 : 북한에는 간부 기준이 거의 다 남성들이잖아요. 간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상대자로 토대가 좋은 여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해연 : 그렇죠. 간부로 발전하고 싶으면 여성의 토대를 보죠. 상대자의 친척 중에 한국이나 중국으로 간 사람이 있으면 걸려요. 그러면 남자가 발전하지 못하니까... 까치는 까치끼리 살라는 말이 있잖아요? 비슷한 토대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해요. 저 같이 중국에 간 친척이 있으면 그런 비슷한 집을 찾아야 하고…

박소연 : 그건 바뀌지 않았네요. 북한은 사실 계급 사회이잖아요. 저희 때도 부모가 간부이고 가정 환경이 좋으면 같은 환경의 상대자를 만났어요. 반면 노동자의 딸은 같은 노동자 집에서 중매가 들어와요. 아무리 예쁘고 똑똑해도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면 간부 집에 시집가기 힘들었어요. 중간에 벽이 있는 것처럼 뭔가 섞이지 않았어요.

이해연 : 지금도 똑같죠. 그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왜 노동자 자식일까? 부모를 탓하고요…

박소연 : 사회주의 사회는 계급 사회가 아니지만 북한은 그렇습니다. 북한에 살 때는 이런 생각을하지 않았죠. 우리에 대한 대우가 계급 때문에 갈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한이라는 세상에 와서 북한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이죠. 그 안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거예요. 아버지가 고위층이면 간부 집 남자랑 결혼하고 아버지가 노동자이면 같은 노동자 집안을 만나는 게 당연하다고… 해연 씨처럼 아니야, 그럴 거면 나 결혼 안 할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인 거죠.

이해연 : 지금은 아마 더 많이 생겨났을 겁니다. 우리 아빠도 노동자인데 그래서 저도 결혼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노동자의 딸이라도 똑같이 살기는 싫었어요… 눈만 높았던 걸까요? (웃음)

박소연 : 아니죠. 사회에서 보는 게 있는데요… 노동자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같은 노동자 집안을 만나면 어떻게 산다는 게 눈앞에 보이고, 또 토대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상대 집에서 승인할 것 같지 않고 하니까 차라리 결혼을 포기하게 되는 거잖아요.

해연 : 맞아요. 그런 이유도 컸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남한에서 와서 변했어요

북한에서는 여성이 하는 일을 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여기는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을 구분하지 않아요 . 그게 인간으로써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하게해요

박소연 : 그런데 어때요? 아직도 결혼하기 싫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여자가 힘들게 벌고 집안일을 다 해도 대접을 받지 못하지만 남한은 여성들이 일하는 걸 대접해줘서 좋아 보입니다. 남한 남자들은 결혼 후에도 밥도 해주고 애도 봐주는데 북한 사람들은 아직 다 그렇지는 않죠. 남한은 남자가 할 일과 여성이 할 일을 따로 정하지 않고 같이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고 또 부부가 서로 의견을 물어보고 존중하는 것도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게 되었네요.

박소연 : 북한에서 결혼한 여성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가끔 남편이 빨래라도 해주면 아내가 미안해 하죠. 남한에서 집안일은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여성으로써 참 뭉클했습니다. 그래서 남한에 함께 온, 부부가 함께 탈북한 가정들에서 이혼하는 사례들이 꽤 있어요. 북한 남성들은 남한에 온 후에도 아내에게 똑같이 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자들은 남한 사회를 알게 되면서 바뀌는데… 한국에서 남편들이 북한처럼 올방자를 틀고 앉아 '에미야 밥 차려라' 했다가는 쫓겨나죠. (웃음) 정착 초기에는 가부장적인 문화 차이로 다투다 이혼하는 사례도 있지만 사회에 적응하면서 다시 화해하는 부부들도 있고요.

이해연 : 고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문화가 북한에도 좀 전해졌으면 해요.

박소연 :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 중에 남성들은 저희가 말하는 것에 좀 불만이 있을 것 같아요. '야, 우리는 남조선 가지 말아야지 찬밥 신세다'… 이러면서요. (웃음) 그렇지만 여성들의 생각은 다를 겁니다. 부부가 같이 방송을 들었다면 아내가 남편에게 한마디 했을 것이고요.

이해연 : 북한 남성들도 변해야 합니다.

박소연 : 대한민국은 여성들에게 참 좋은 세상입니다. 북한 여성들도 남한 사회처럼 여성이 당당한 사회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해연 : 여성도 사람이고 같은 인간인데 서로 존중하고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잖아요.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진짜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박소연 : 맞죠.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살기 때문에 힘은 세상에 같은 인격체로, 끝까지 같이 가는 동반자로 아끼면서 살아가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해 주신 혜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진행 박소연,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