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내 아이의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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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내 아이의 입학식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안녕하세요.

박소연 : 요즘은 확실히 봄이 느껴집니다.

이해연 :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좋아요. 추울 때는 추워서 인상을 쓰며 다녔는데...

박소연 : 찡그리고 다녔죠. (웃음)

이해연 : 맞아요. 오늘 오면서 보니까… 엄마들이 아이들이랑 같이 등교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더라고요. 교실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손을 잡고 가던데… 남한은 3월에 학교 가나요?

박소연 : 잊고 있었는데… 맞아요. 여기에 또 남북의 차이가 있네요. 북한은 4월 1일이 개학이죠? 남한은 3월 2일이에요. 딱 한 달 차이가 나네요.

박소연 : 우리 때는 입학식 날이면 엄청 북적 북적거렸는데 지금도 그래요?

이해연 : 지금도 역시 입학식은 많이 설레고 똑같이 북적이죠.

4월 1일, 학기가 시작하는 북한

“북한은 입학하기 전에 시장에 나가서 학습장, 연필, 필통, 신발, 옷,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닦을 정성함 걸레를 만들어서 가방에 다 넣어줘야 해요. 입학식 준비가 정말 큰 일이죠”

박소연 : 현재 남한에서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녀요. 처음 학교에 다닐 때 북한처럼 똑같이 생각을 했어요.

이해연 : 다른 점이 있을까요?

박소연 : 아들이 열한 살에 탈북해 남한으로 왔어요. 그래서 입학식이 없이 나이에 맞게 초등학교 3학년에 바로 편입이 됐어요. 제일 놀랐던 건 남북이 교육 제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에요. 북한은 소학교 5년, 초급 중학교 3년, 고급 중학교 3년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남한은 초등학교가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이해연 : 초등학교 학년이 더 많네요.

박소연 : 북한은 예비학교(유치원)을 1년 다니니까, 양쪽이 다 12년제인 셈이죠. 입학하는 날도 남북이 다르고… 그래서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 걱정이 많았어요. 북한은 입학하기 전에 시장에 두 주먹 쥐고 나가서 학습장, 연필, 필통, 신발, 옷,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닦을 정성함 걸레를 만들어서 가방에 다 넣어줘야 하잖아요.

이해연 : 아… 맞아요.

박소연 : 그런데 아들이 아무것도 사지 말래요. 교과서 있으니 학습장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야, 교과서는 읽으라는 거지 거기다 쓰라는 게 아니다' 막 혼냈더니 여기 교과서는 답을 쓸 수 있게 빈 부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남한 교과서는 학습장이 필요 없게 만들어졌다고…

이해연 : 교과서에 낙서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북한에서는 교과서에 낙서를 하면 선생님한테 야단맞습니다.

박소연 : 하루는 아들이 교과서가 들어있는 가방을 50kg짜리 마대를 멘 것처럼 무겁게 끌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봤더니 교과서 두께가 글쎄 연합기업소 장부만 해요. 너무 두꺼운 거예요. 종이도 반들반들하고 연필로도 글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까운 거예요. 교과서 내용을 보니 문제를 제시하고 아래에 문제를 풀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이해연 : 그러면 교과서는 한 번 사용하면 다음 번에는 다른 학생이 사용 못 하겠네요.

박소연 : 사용을 못하죠. 남한은 한 학기가 끝나면 교과서를 학교에 다시 가져가요. 재사용이 아니라 종이를 재활용해서 새로운 교과서를 찍어낸다고 합니다.

이해연 : 그러면 들어오는 학생마다 매번 새 교과서를 사용하는 거네요. 완전 신세계…

다음 학년으로 대물림하는 북한의 교과서

새 교과서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대물림을 해도 새 책처럼 깨끗한 교과서는 김일성, 김정일 혁명역사

이해연 : 북한은 지금도 여전히 대물림하는 식으로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어요. 여기처럼 파쇄해서 다시 새 종이로 교과서를 찍는 게 아니라 상급 학년이 보던 교과서를 다시 후배 학생들한테 주는 방식이잖아요? 과목이 열 개라고 하면 그중에 세 과목 정도 새 교과서를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선배 학년 학생들이 쓰던 거예요.

박소연 : 북한에선 저희 맏아들이 학교에 다녔어요. 당시 학교에서 낡은 교과서를 4~5권 정도 주었는데 수학 교과서나 국어 교과서 같은 경우, 앞뒤 표지는 멀쩡한데 중간 책장이 거의 찢어져 비어있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들이 새 교과서를 구해다가 문제를 써서 거기다 끼워 붙였어요. 그 정도로 당시엔 새 교과서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이해연 : 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새 교과서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해요. 돈이 없으니까 한두 장쯤 없는 것은 그냥 손으로 직접 쓰면 된다고 생각하죠.

박소연 : 북한 아이들은 국어나 수학, 한문 이런 교과서들은 막 찢더라도 김일성 어린 시절이나 김정숙 어린 시절 같은 혁명역사 교과서를 찢는 학생은 없고요.

이해연 : 혁명역사 교과서는 낙서를 해도 안 되고 진짜 깨끗하게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학용품 준비에서 책가울(책표지)이 꼭 해야 하잖아요? 특히 혁명 역사 교과서 책 표지는 무조건 있어야 하고요. 학교에서 검열하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무조건 강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박소연 : 그래서 3월쯤이면 북한에는 책 표지만 파는 전문 매장이 있어요. 돈이 없는 부모들은 집에서 강냉이 풀을 써서 크라프트지 종이를 가지고 책 표지를 만들었어요. 2007년에 아들이 북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때도 사는 게 힘들었죠… 엄마들이 장사로 때대끼(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뜻)로 살던 시기인데도 입학식 하는 날에는 시장에 나가지 않고 다 학교 마당에 모이는 거예요. 70년, 80년도만 해도 한 집에 보통 아이가 네 명 다섯 명이었는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아이를 안 낳기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둘을 낳았으니까 동네에서 센판이 없는 앙까이(대책이 없는 여자)라고 오히려 욕을 먹었어요. (웃음)

이해연 : 고생을 사서 한다고…

박소연 : 가정마다 아이들을 적게 낳으면서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입학식 날 아이가 입은 옷, 신발, 가방을 보면 잘 사는 집 애들인지 금방 알아볼 만큼 부모들이 엄청 신경을 썼어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학용품 검열

한 가지라도 빠졌으면 혼나…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부모들은 자식들이 머리 숙이게 하고 싶지 않아 가방, 옷, 신발까지 신경 쓰는데… 남한에 오니 다들 별로 신경 안 씁니다. 헌 옷을 입고 다녀도 괜찮아요. 이런 차이는 왜 나는 걸까요”

이해연 : 북한은 학용품을 책상에 꺼내놓고 검열을 하잖아요. 혼자서 검열을 받는 게 아니라 전교 학생이 보는 데서 검열을 받아요. 줄자부터 해서 목록이 다 있는데, 한가지라도 없으면 뭐가 없다 체크를 하고 준비를 하라고 혼을 내죠.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박소연 : 맞아요. 입학식을 앞두고 아이를 위해서 이 모든 걸 준비해 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야, 내 이래도 엄마 구실을 하는 여자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남한에 오니까 아들이 사지 말래요. 다 있다고… 그때마다

‘야, 내가 엄마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연 : 북한 같으면 내가 뭘 준비를 못해가면 '오늘 학교에서 지적을 당하면 어떡하지?'라는 부끄러움이 있는데 남한에서는 내가 아무거나 걸치고 다녀도 별로 부끄러운 게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다니면 되잖아요. 참… 저도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박소연 : 여기는 헌 옷 같은 거 입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안 돼요. 북한에서는 '아이고 불쌍해라' 그러는데… 남한은 그걸 개성이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남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북한에서 살 때와 비교하면 거의 그냥 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남한은 교육 환경이 너무 좋은 거예요. 북한은 내 아이가 입학식 때 남한테 뒤질까 봐...

이해연 : 학용품뿐만 아니라 옷차림에도 엄청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박소연 : 맞아요. 그런 게 다른 것 같아요.

이해연 : 사실 의외로 그런 게 진짜 반대인 것 같아요.

북한은 모든 주민들이 어떤 단체에 소속된 일종의 조직 생활

나보다 잘 하나, 잘나지 않았나 늘 관찰

여기에 북한의 강제적인 교육 제도가 더해져

“정말 감정 소모가 큰 사회”

박소연 : 북한은 쓸데없는 관심이 많아서 그래요. 어떻게 보면 단체생활이잖아요. 무릎이 나온 바지를 입고 집에서 놀아도 인민반이나 동 여명에 소속돼야 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나보다 잘하거나 잘나지 않았나 늘 관찰하고, 내가 없다는 걸 저 사람이 아는 날에는 자존심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남한은 남에 대해 크게 관심두지 않아요. 그리고 북한의 교육 제도가 좀 강제적인 것도 영향이 있고요. 자식들이 학교에서 머리를 숙이고 욕을 먹으면 부모로서 그걸 용납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남의 자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반면 남한은 옆집 애들이 학교 갈 때 무슨 가방을 메고 다니는지, 어떤 책을 보고 있는지 관심 없어요.

이해연: 사실 생각해보면 자기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남한에서도 누가 어떻게 사는지는 보이지만 그걸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사람이 이렇게 하니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남이 좋은 차를 타면 나도 타고 싶다 그러면 열심히 자기가 벌어서 나도 사면 되는 거니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해연 씨는 남한 학생들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으로 교복을 꼽습니다. 치마는 짧게, 상의는 딱 맞는 교복… 반대로 저는 해연 씨가 전해주는 북한 학교의 얘기도 놀랍기만 했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