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우리는 10년 차이>, 짧은 치마는 왜 비사회주의인가
박소연 : 남한은 학교마다 교복이 달라요. 아이 학교 보내면서 보니까 학교마다 교복을 판매하는 매장과 연결해주더라고요. 학생들 사이즈와 명단을 넘겨주면 그곳에 직접 가서 옷을 입어보고 바지가 길면 수선을 앉은 자리에서 바로 해줘요. 그건 너무 편하더라고요. 북한은 평양부터 저 양강도 시골까지 교복이 다 똑같잖아요? 여기는 학교마다 교복이 다르다는데 놀랐네요.
이해연 : 맞아요. 저는 버스를 탔는데 학생들이 입은 교복이 서로 다른 겁니다... 처음에는 외국어 고등학교 같이 좀 다른 학교들이 교복이 다른가 했는데 다 다르더라고요.
박소연 : 남한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 모양, 여기선 디자인이라고 하죠. 해연 씨는 남한 교복 디자인 어떻게 생각해요?
이해연 : 처음엔 충격이었어요. 왜냐하면, 남학생들은 잘 모르겠는데 여학생들을 볼 때 치마가 너무 짧은 거예요. 북한에서 여학생들이 그렇게 입으면 비판 대상이거든요.(웃음)
북한은 평양부터 양강도 시골까지 교복은 다 같거든요.
남한은 왜 학교마다 교복이 다르죠?
치마는 왜 그렇게 짧고 치마 아래 바지를 입는 건 왜 그래요?
남한 학교에서는 복장 단속 없나요?
박소연 : 저도 해연 씨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웃음) 그때가 겨울이었어요. 여학생들이 탔는데… 처음에는 하의를 안 입은 줄 알았어요. 동복 아래로 다리가 그냥 보이길래…
이해연 : 요즘 말로 하의실종…
박소연 : 네네! 하의실종! 그러니까 위에는 입고 아래는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죠. 짧은 치마를 입고 그 위에 동복을 입으니까 치마나 바지가 보이지 않았던 거였어요.
이해연 : 남한은 자유로워서 치마를 짧게 다니는 건가요? 왜 그런 거죠?
박소연 : 북한식으로 말하면 맵짜게(멋있게) 보이려고 그러지 않나 싶어요.
이해연 : 아! 한창 멋을 내고 싶은 시기라서? 그리고 어느 날 영화를 봤는데 아니, 세상에 치마 하나 입으면 되지 그 안에다 또 바지를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더라고요. 왜 촌스럽게 치마 아래 바지를 입고 다닐까요? (웃음)
박소연 : 글쎄… 저도 교사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는데…(웃음) 특히 여학생들이 많이 그러고 다니더라고요.
이해연 : 남한학교에서는 복장에 대해 단속은 안 하는 건가요?
박소연 : 하죠. 남한의 학교들도 치마 짧은 걸 단속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다 그런 시절을 거쳐 봤잖아요. 하지 말라고 하면 기를 쓰고 더하던 우리 과거를 지금 젊은 아이들이 밟고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그 차림을 봤을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저도 사실 중학교 때 가방에 바지 따로 넣어가지고 등교했어요. 북한 학교는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해요. 그래서 아침에 등교할 때는 치마를 입고 갔다가 교실에 들어가서 바지로 바꿔 입는 거예요. 그때 나팔바지가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혹시 남한 학생들도 그런 심리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해봤습니다.
우리 다 그 시설을 겪어 봤잖아요?
하지 말라면 더 기를 쓰고 하던 우리의 과거를 지금 남한의 학생들도 밟고 있다…
교복에 앞머리 길이까지 단속하던 북한…
그러나 모든 걸 단속해도 학생들의 마음까지 단속할 수 없어
박소연 : 북한이 모든 걸 단속해도 학생들의 마음까지는 단속할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희 때는 교복이 달린 치마였어요. 위아래가 연결된 원피스 교복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정문에서 무릎 위로 치마 입은 학생들은 단속해 소년단 지도원 실에 끌고 가요. '붉은 기를 지키리'라는 노래를 부르고 나오죠. "붉은 기 높이 들고 사회주의 지키세…" 이 노래 알죠?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면 사회주의 아니고 자본주의라는 얘기 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어느 정도까지 머리를 썼냐면 원피스 치마에는 어깨끈이 있잖아요. 어깨끈의 양 끝을 접어서 거기다가 걸침이라고 옷핀 침을 찔러서 입어요. 그러면 치마가 짧아지죠. 그 복장으로 도로를 활보하고 다녀요. 그러면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몰라요… 그러다가 학교 들어갈 때는 옷핀을 뽑죠. 그러면 어깨가 내려가면서 교복 치마가 길어져 감쪽같죠. 20년 전에도 북한 학생들은 그렇게 하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남한 학생들이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는 게 이해가 됩니다. (웃음)
이해연: 들어보니까, 북한이나 남한이나 같은 거 같아요. 북한도 지금은 돈 좀 있는 집안 학생들은 교복을 수선해서 몸에 딱 맞게 입어요. 그런데 그렇게 입으면 단속을 하죠.
박소연 : 본인도 해보셨어요?
이해연 : 해봤죠! 저도 지금은 되게 수수한데 어릴 때는 옷광새가 많았어요.(웃음)
박소연 : 옷광새… 옷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런 의미였죠?
왜 북한에서는 짧은 치마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했을까?
왜 앞머리를 자르는 것이 비사회주의이며 조국을 흠집 내는 행위였을까?
그런 검열과 부조리가 북한을 떠나게 만들지 않았나
박소연 :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북한은 머리 스타일도 자연스럽게 하고 치마도 짧게 입고 이런 것들을 사회주의 생활 양식에 안 맞는다고 단속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해연 : 다른 나라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주체사상을 지키자고 주장하면서 다른 나라 문화를 단속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그렇죠.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앞머리를 짧게 자르는 게 유행이었어요. 국경에 살면서 중국 채널을 많이 봤는데 TV에서 중국 여성들이 앞머리를 많이 잘랐거든요. 그걸 따라 하다가 우리 학급 학생들 일곱 명이 전부 소년단 지도원 실에 불려가서 비판서를 한 주일 넘게 쓴 일이 있었어요. 당시 소년단 지도원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너희들이 한 행동은 비사회주의적인 행동이고 사회주의 제도를 좀먹는 행위다. 그때는 내가 머리를 이렇게 짧게 자른 게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흠집 내는 행위라고 받아들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거예요.
이해연 :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게 저는 더 놀라운데요? (웃음)
박소연 : 저희 때는 받아들였어요. 혜연 씨는요?
이해연 :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저희는 어떻게 처벌을 받았냐면 비판서만 쓰는 게 아니라 전교생이 모인 앞에서 제일 높은 단상에 세워요. 그리고 몇 학년 몇 반 이름 누구라고 신상을 밝히면서 '저는 아침에 짧은 치마에 머리 스타일을 이렇게 했다'며 공개 비판을 하는 거예요. 얼마나 창피해요. 그런 식으로 했음에도 학생들의 그 끼를 완전히 단속하지는 못했죠.
박소연 : 대중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은 아직도 변함이 없네요.
이해연 : 남한은 개인 인권을 얼마나 중요시해요. 북한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 자유가 애타게 그리워서 남한으로 오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남한은 교복이랑 교재랑 해마다 새 것으로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전부 무료입니까? 아니면 돈을 내는 건가요? 아무래도 자본주의니까 저는 돈을 낸다고 생각을 하는데…
박소연 : 남한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고 해서 돈은 안 내요. 얼마 전까지 고등학교는 돈을 냈는데.. 저희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법이 바뀌어 무상교육이 돼서 돈을 안 내요.
이해연 : 저는 아직 학교 입학식에도 못 가봤고, 아직 주변에 학교 다니는 애들이 없어서 자본주의니까 무조건 강의 비용은 낸다고 생각했는데…
박소연 : 강의 비용이라는 건 따로 없어요. 남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고마웠던 것이 많은데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오후 시간에 방과 후 교육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 건 무조건해야 되는 게 아니에요. 원하는 사람이 신청해서 듣는 것이라 어느 정도의 수업료를 따로 내는데요. 이것도 탈북민 자녀에는 무료입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오니까 서울대 같은 유명한 대학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방학 기간에 탈북민 학생들을 공짜로 가르쳐주는 수업이 있었어요.
이해연 : 알게 모르게 받는 배려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아~그리고 정말 중요한 게 있어요. 탈북민들은 35세까지 나라에서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줍니다.
이해연 : 저는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뭘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별로 없었어요. 그렇게 배워도 써먹을 데가 별로 없었거든요.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공부를 해도 우리 집안 친척들이 남한에 와 있는 것 때문에 토대에 걸려 발전할 수도 없고 또 북한은 여자들이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별로 생각이 없었어요. 남한에 오니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에요. (웃음) 그래서 가끔은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박소연 : 가끔이요? (웃음) 저는 해연 씨한테 꼭 배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이해연 : 저도 진지하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아직 대학 갈 생각은 못 하고 있거든요.
박소연 :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우리 해연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응원을 할 테니까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준 해연 시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