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민둥산의 비밀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안녕하세요?
박소연 : 벌써 4월입니다.
이해연 : 맞아요. 날씨가 진짜 봄입니다!
박소연 : 바로 5일이 청명이었잖아요? 남한은 청명에 식목일이라고 나무를 심는 날이에요.
이해연 : 혹시 식수절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은 식수절, 남한은 식목일로 불러요. 해연 씨는 이번 청명에 나무 심으셨어요?
이해연 : 나무는 아니지만…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분갈이를 했어요.
박소연 : 작은 나무도 나무죠. 해연 씨, 북한 식수절이 언제인지 알고 있어요?
이해연 : 청명 다음날 아닌가요?
박소연 : 이런 경우 남한에서는 ‘땡!’ 이러거든요. (웃음) 틀렸습니다.
이해연 : 네? 저는 그날로 알고 있는데…
주민들도 잘 모르는 3월 2일 북한 식수절
아직 녹지 않은 땅을 파고 눈 속을 파헤치며 나무 심기?
박소연 : 북한의 식수절은 3월 2일이에요. 탈북민들도 식수절이 3월 2일로 바꿨다는 걸 남한에 와서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해연 씨가 몰랐다는데 이해가 갑니다.
이해연 : 3월 2일이면 땅이 얼어서 흙을 팔 수가 없는데 어떻게 3월 2일로 변경이 됐어요? 그런데 학교 다닐 때는 꾸준히 나무 심기에 나가야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나무 심기 활동이 줄어들어요. 저는 진짜 몰랐네요.
박소연 : 김일성과 김정일이 모란봉에 올라 산림 조성의 꿈을 키웠다 해서 식수절 날짜를 바꿨다고 합니다. 사실 해연 씨가 살던 양강도 지역은 북한에서도 북쪽이잖아요? 3월이면 아직 눈밭입니다. 주민들이 그래서 ‘아니 눈밭에서 뭘 하는 거냐? 우리가 백설희냐?’ 그런 답니다. 왜 북한 예술 영화 ‘열네 번째 겨울’에서 백설희가 눈 속에서 식물을 찾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걸 얘기하는 거죠.
북한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화목’
나무 떼서 난방하고 밥도 짓는 북한의 가정
그래서 북한 산은 ‘번대산’, 북한 산에 나무보다 많은 건 묘지
박소연 : 해연 씨는 남한과 북한의 산림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이해연 : 너무 차이가 나죠. 오늘도 오면서 다시 한번 봤는데요. 일단 북한은 길 옆에 3미터나 4미터씩 간격을 두고 가로수를 한 줄로 쭉 심는데 남한은 한 줄이 아니라 4줄 5줄을 심어놓았더라고요.
박소연 : 그리고 서울 한가운데에 ‘서울 숲길’이라는 게 있어요. 마치 강원도 깊은 산골처럼 도시 중심에 숲이 우거져 있는 거예요. 저는 경기도에 사는데요, 경기도는 추운 겨울엔 나무에 담요를 둘둘 감아 놔요.
이해연 : 가마니 같은 거죠?
박소연 : 비슷하죠. 북한은 말로만 ‘산림은 나라의 귀중한 보물이며 후대에 물려줄 자산이다’라고 하지만 나무가 죽으면 그냥 베어서 화목으로 사용했어요. 남한은 나무가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담요도 감아주고 산림은 보호해야 하며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해요.
이해연 :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게… 남한은 전기로 모든 걸 해결하잖아요? 밥을 해 먹는 전기밥솥이 얼마나 좋아요. 북한은 나무나 석탄으로 밥도 짓고 난방을 해결해야 해요. 석탄도 생산이 많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나무로 해결하다 보니 산에 나무가 없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제가 북한에서 살 때도 100퍼센트 화목을 가지고 밥을 짓고 난방도 했는데 지금은 어때요?
이해연 : 지금도 역시 같아요. 지방마다 다르긴 한데 제가 사는 곳에서는 석탄보다는 나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탄광이 있는 지방에서는 석탄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직도 나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요. 남한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북한의 현재 산림 상태를 볼 수가 있어요. 남한에서는 나무가 없는 산을 ‘민둥산’이라고 표현하던데… 제가 탈북하기 전에 북한산을 ‘번대산’이라고 했어요. 대머리 산이란 뜻이죠. 10년 전에도 ‘번대산’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산에 나무가 없이 그냥 땅만 보이는 거예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이해연 : 땅보다도 묘지가 더 많잖아요. (웃음) 북한은 전부 국가 땅이다 보니까, 내가 알아서 산에다 자리를 잡고 땅을 파서 거기에 묘지를 만들어버리니까요...
산의 나무도 땅도 모두 국가이자 내 것이던 북한
본인의 소유가 아니면 길가의 나무 열매, 꽃에 손 대지 않는 남한
박소연 : 남한은 국가가 소유하는 산도 있지만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 많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한 번 강원도에 휴가를 가다가 길옆에 잠깐 차를 세우고 쉬었어요. 마침 밤나무 밭이 있었는데 그 밑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는 거예요. ‘앗싸, 이런 공짜가 어디 있냐’면서 열심히 주워 담았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화를 내진 않았지만 큰 소리로 ‘거기서 뭐 하는 거냐?’며 뭐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땅에 떨어져서 주웠다고 했더니 국가 땅이 아니고 개인 땅이고… 사실 그때는 고깝게 생각했어요. 십 년을 살면서 보니 남한은 길옆에 있는 열매도 함부로 따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무를 가꾸지 않은 이상은 열매가 떨어져도 줍지 않아요. 이게 남북의 차이죠.
이해연 : 맞아요. 저도 처음에 문화 충격이었는데요. 처음 하나원에서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얘기를 해 주는 게 ‘사회에 나가게 되면 아파트 화단에 흙이든 풀이든 손대면 안 된다. 북한처럼 생각하고 나무를 함부로 꺾거나 하면 안 된다’ 이러더라고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와서 실제로 보니까, 아파트 밑에 화단에 나무이고 꽃이고 너무 가지런하게 잘 가꿔져 있는 거예요. 사람들도 자기가 사는 주변을 아주 알뜰하게 꾸미고 일단 자기 것이 아닌 한 손을 안 대더라고요. 물론 관리하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지만요.
나무로 우거졌던 북한의 산은 고난의 행군을 지나며 사라져
아름드리나무가 하나둘씩 베어지고 나뭇등걸마저 뽑히고
점점 민둥산이 돼가는 과정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던 북한 주민들
박소연 : 산림이 울창하면 공기도 좋아지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좋은 역할을 많이 하잖아요. 남한에 처음 온 탈북민 대부분이 산에 나무가 많은 걸 보고 ‘이 나라는 뭔가 풍부하구나’라는 걸 느낀대요. 북한에 있을 때는 누런 흙만 있는 산을 보다가 산림이 풍부한 남한산을 보면 안정감이 들더라는 거죠. 제가 북한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집 뒷산에 산림이 우거져 있었어요. 그리고 압록강에 뗏목들이 떠다녔고요. 그러다가 90년도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화목으로 나무를 베고 30~40년 자란 아름드리나무가 하루에도 수십수백 대의 큰 화물차에 실려 중국으로 넘어갔어요.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다르게 뒷산이 ‘번대산’이 되면서 풀 색깔이 점점 없어지는 거예요. 결국, 나무를 베고 난 등걸만 남게 되고 화목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 등걸마저 캐어 가고 그 자리에 옥수수나 콩을 심었습니다. 그렇게 울창한 산이 민둥산으로 변해 가는 안타까운 과정을 저는 쭉 본 거죠.
이해연 : 맞아요. 나무를 한두 그루 계속 뽑다 보면 공간이 남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밭을 일궈요. 그래서 콩을 심는다던가 자기가 원하는 다른 곡식을 심곤 하죠. 어느 날에는 산림감독원이 와서 여기에 왜 콩을 심었냐면서 한창 자라고 있는 콩을 짓밟아놓고 가고… 그런데 그 사람들도 어쩔 수가 없거든요.
박소연 : 북한이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나무 심기를 해마다 해오고 있고 산림을 훼손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포고문도 발표하지만 지금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요…
탈북민들은 북한의 나무 심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합니다. 해연 씨도 저도 공감하는데요. 벌거숭이산이 울창한 숲으로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시간에 이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