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민둥산의 역사
박소연 : 양강도는 산에 나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이해연 : 사실 저희 마을 뒤에도 산이지만 나무를 보기가 힘들어요. 뒷산을 보면 묘지만 다닥다닥 많이 붙어있고 조금 더 들어가야 나무를 볼 수 있긴 한데 그것도 듬성듬성 있어요.
박소연 : 해연 씨가 오기 전에도 북한 나무를 베어서 중국에 보냈나요?
이해연 : 자주 보이긴 하는데 옛날처럼 그렇게 광범위하게 하지는 않아요. 주민들에게 나무를 잘 심어라, 산에서 나무를 베지 말라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들은 잘라서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하잖아요. 그 돈이 우리한테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투쟁한다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니까 주민들은 그냥 안타깝게 쳐다볼 뿐이죠.
“50년 넘게 자란 나무를 중국에 넘기고
고작 강냉이 가루나 십 년 묵은 입쌀을 받아 왔단 말이에요 "
박소연 : 제가 탈북하기 전에는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은 거의 통나무 무역을 했어요. 백두산 아래 '무봉'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거기는 천년 수림이죠. 자동차가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로 나무들이 빽빽이 많았습니다. 그 나무들을 베어서 하루에 100대 이상 대홍단 삼장이라는 세관을 통해서 중국으로 넘어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멈춘 거예요. 이유인즉, 백두산 주변에 가면 '구호나무 림' 있죠. 거긴 나라에서 특별히 보호를 했는데 어떤 개인이 구호 나무를 베어서 중국에 넘긴 거예요. 결국, 나무를 베어 판 사람은 총살 당하고 그 이후로는 통나무 무역이 중단됐어요. 50년 넘게 자란 나무를 중국에 넘기고 고작 강냉이 가루나 10년 묵은 입쌀를 받아왔어요. 그걸 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가슴 아팠겠어요. 다행히 '구호나무 림' 사건을 통해 통나무 무역이 영원히 중단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뒤에 다시 재개되더라고요.
이해연 : 지금도 살짝살짝 하고 있어요. 그리고 선배님이 옛날에 본 백두산의 수림은 이제는 수림이 아니에요. 나무가 듬성듬성 있어요. 그쪽에 가면 들쭉이 유명한데…
박소연 : 맞아, 우리 때는 맨날 들쭉 동원 갔어요.
이해연 : 해마다 가잖아요.
박소연 : 자주 도마뱀을 밟아 심장이 놀라고 그랬잖아요.
이해연 : 지금은 그런 도마뱀도 다 사라져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일단은 숲이 있어야 동물들도 많이 살 텐데 말이에요.
박소연 : 사람은 국경을 넘을 때 신분증이 필요하지만 동물들은 국경이 어디 있어요? 그냥 산림이 울창하고 먹을 것이 많은 것으로 자유롭게 이동하잖아요. 백두산 삼지연 쪽에 짐승들이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아, 짐승들도 탈북했구나!' 했다잖아요. (웃음) 그 정도로 산림이 많이 없다는 뜻이죠.
이해연 : 그러네요. 동물들이 나무 많은 데로 간 것 같습니다. (웃음)
탈북민들이 한국 집을 보고 가장 놀라는 것
집집마다 굴뚝이 없다 ?
박소연 : 아, 그리고 탈북민들은 남한에 와서, 집집마다 굴뚝이 없는걸 보고 제일 놀라요.
이해연 : 정말 굴뚝이 없더라고요.
박소연 : 남한은 굴뚝이 필요 없죠. 전기나 가스로 난방을 하고 밥을 하니까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모든 걸 화목으로 해결하고 그러다 보니까 산림이 황폐 해지기 시작했고 더구나 중국에 나무까지 수출했으니... 북한도 지역마다 산림 단속 초소도 있고 산림 단속법이 있어요. 실제로 통나무를 싣고 가다 초소에서 걸리면 현행법에는 처벌받게 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다 통과하게 되죠.
이해연 : 다 사업이 되는 거죠. (웃음) 북한은 법대로 하면 못 살죠.
박소연 : 남한은 그러면 안 돼요. 산림을 훼손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벌금이나 법적인 제재를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손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해연 : 북한에도 나름대로 과태료라는 게 있긴 하죠. 하지만, 과태료가 국가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단속한 사람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잖아요. 그걸 받고 눈 감아 주고 하다 보니까 지켜지지 않고 자꾸 산림 훼손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양심선언 ! 나는 나무 장사였다
시골에서 아름드리나무를 사다가 도시에 팔아
한 번도 양심 가책을 느낀 적 없다
그렇게 해서 나도 살아야 했으니
박소연 : 이 기회에 양심선언을 하는데 제가 사실 북한에서 나무 장사를 했어요.
이해연 : 정말요?
박소연 : 화물차를 농촌에 끌고 가서 농촌 사람들한테 돈을 주고 나무를 사요. 농촌 사람들은 대부분 농장에서 일하는데, 분배가 작으니까 다른 부업을 안 하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뭐 하겠어요? 나뭇가지 같은 걸 사 와서 화목으로 때도 되지만 도시에서는 두꺼운 통나무가 가격이 비싸요. 곧게 자란 통나무를 50센티 단위로 잘라서 그걸 또 조각낸 걸 북한에서는 '쪽나무'라고 하거든요. 그걸 제가 사 온단 말이에요. 그리고 도시에 와서 사람들한테 입방으로 팔아요. 그때는 양심의 가책을 받은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하니까요. 그게 나쁜 일이라는 것도 남한에 와서 생각했어요.
이해연 : 사실 저도 북한에서 산속에 있는 약초를 캐서 중국에 팔았어요. 정말 약초 씨를 싹 말리는 듯이 뜯죠. 나쁜 일인 줄은 알겠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나만 혼자 멈춘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살려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어요. 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다들 살기 위한 투쟁으로 그런 생활을 이어 나갔던 거 같아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 사람들이 마음이 나쁘고 몰상식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선택이 없잖아요. 그냥 앉아서 얼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요.
이해연 : 남한처럼 전기나 가스로 난방을 한다던가, 밥을 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힘들게 나무를 베겠어요.
박소연 : 남과 북은 전쟁 이후 똑같이 폐허가 됐어요. 그때 산림이 다 파괴됐죠. 그런데 남한은 70년대 이후부터 계속 나무 심기를 장려해 그때 심은 나무들이 지금은 아예 아름드리나무가 돼서 이렇게 산림이 풍부 하잖아요. 북한도 나무를 참 많이 심긴 했어요.
이해연 : 저는 남한에 와서 북한처럼 사람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나무를 심는 광경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박소연 : 맞아요. 오히려 북한이 나무를 많이 심는데 왜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이해연 : 일단 남한은 난방이나 밥도 전기, 가스로 해결해서 아궁이가 없잖아요. 화목이 필요 없는 조건이 갖춰져 있어 나무가 보존될 가능성이 훨씬 높죠.
박소연 : 따지고 보면, 남한보다 북한이 나무를 훨씬 더 많이 심어요. 그런데 아직도 북한에 민둥산이 많은 가장 큰 이유가 방금 해연 씨가 말한 것, 화목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조건 때문인 거죠.
이해연 : 일단 확목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와야 산의 나무가 보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한에 와서 느껴보는 초록이 주는 안정감
화목 대신 가스와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북한에도 숲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박소연 : 남한에 와서 보니까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직접 집에서 정성을 들여 식물을 키우고 있어요. 또 남한에서는 해마다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가 있어요.
이해연 : 와! 저도 봤어요. 꽃 축제가 있죠.
박소연: 해연 씨, 가본 적이 있어요?
이해연: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박소연: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 시기에 와서 아직 못 가봤을 텐데요. 올 봄엔 방역 조치가 완화되잖아요? 이마 이번 꽃축제부터는 해연 씨도 가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다음 시간에는 우리 해연 씨가 꽃 축제에 다녀오시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이야기를 이어가면 어떨까 해요.
이해연 : 제가 한번 꼭 다녀올게요.
박소연: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해 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