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춘옥과 지은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 날씨가 너무 좋아요. 최근에 해연 씨는 지금 날씨처럼 좋은 일이 있다면서요?
이해연 : 제가 이번에 개명해서…
박소연 : 이름을요?
이해연 : 네,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좀 바빴어요. (웃음)
박소연 : 왜 개명하셨어요?
이해연 : 해연은 가명이고요, 제 본명에는 ‘춘’자가 들어 있습니다.
박소연 : 북한 말마따나 ‘떼깍’(즉시) 이해가 됩니다.
이해연 : 제가 고향에 있을 때는 이름에 ‘춘’ 자가 들어가도 괜찮았어요.
박소연 : 북한에 ‘춘’ 자 들어간 이름이 너무 많잖아요.
이해연 : 네, 그래서 고향에서는 제 이름이 촌스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 봤는데 여기 남한에 오니까...
박소연 : 맞아요. 해연 씨가 20대잖아요. 남한의 20대 중에는 ‘춘’ 자 들어간 이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해연 : 한국은 이름에 춘 자가 들어간 분들은 거의 60, 70대가 많아요. 한번은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가 제 이름을 불러요. 바로 앞에서 대답했는데도 먼 곳을 보며 계속 부르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개명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얼마 전, 신청해서 개명 허가가 떨어졌어요.
북한에서 괜찮던 내 이름, 남한에 오니?
개명하는 탈북민 비율 높아
북한, 이름 두 글자에 모두 받침이 들어가는 센 발음
남한, 받침이 하나 또는 없는 부드러운 이름 선호
박소연 : 현재 우리 방송에서 쓰는 ‘이해연’이라는 이름은 북한의 가족들 신변 때문에 가명을 쓰는 거잖아요? 그럼 이번에 개명하면서 쓴 새로운 이름은 뭘까요?
이해연 : ‘지은’으로 바꿨습니다. 원래 이름이 예를 들어 ‘춘옥’이라고 하면 이름에 받침이 두 개 다 들어가잖아요. 그렇게 되면 부르는 게 엄청 어려워요. 남한에서 20대분들이 이름을 짓는 거 보니까 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만 받침이 있거나 두 글자 다 받침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박소연 : 해연 씨 주변 친구들은 어때요? 해연 씨와 비슷한 시기에 남한에 입국한 친구 중에 개명하는 친구들, 있나요?
이해연 : 많죠. 저희 친구들도 벌써 몇 명 개명했더라고요.
박소연 : 이건 예전과 똑같네요. 십 년 전에 하나원을 나왔을 때 동기생들이 개명신청을 하느라 시청으로 작명소로 땀을 줄줄 흘리며 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왜 개명하냐고 했더니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서 그런다는 거예요. 보면 이름이 춘화, 순자, 금옥이 다 이런 식이에요. 북한에서는 다들 너무 예쁜 이름인데, 남한에서는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죠. 그리고 남한에선 어디서나 이름을 부르잖아요. 그럴 때마다 부끄럽고… 그래서 십 년 전에도 탈북민들이 개명을 많이 했습니다.
이해연 : 그건 지금도 여전히 많습니다.
개명 절차 예전보다 간소화됐다고 하지만 4개월 소요
혼자도 신청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청 준비는 간단하지만
바꿔야 할 서류, 통장, 자격증 등이 생각보다 많아
박소연 : 개명을 하는 데 절차나 과정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해연 : 네, 과정이 조금 복잡하긴 했습니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개명하는 이유가 새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고요. 제일 먼저 법원에 가서 개명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 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는데 저는 직접 찾아갔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 가지고 가서 신청했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더라고요.
박소연 : 개명신청서에 왜 개명하는지 이유를 기재하나요?
이해연 : 네, 이유를 기술해야 합니다. 저는 북한 사람으로 거기서 지은 이름이다 보니까, 이름이 두 글자 다 받침이 있어 부르는 게 어려워 바꾸고 싶다는 내용을 썼죠. 예전에는 개명 사유를 쓸 때 상세하고 정확하게 안 쓰면 허가가 잘 안 났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워낙 개명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사유가 좀 간단해도 허가를 잘 해준다고 하고요. 신청한 지 3-4개월이면 허가가 떨어져요. 허가가 결정되면 제 전화기로 먼저 문자메시지가 오고, 다음으로 ‘허가결정서’라는 서류가 우편으로 배달이 되더라고요.
박소연 : 개명을 승인했다는 서류?
이해연 : 네, 이 서류가 도착하면 ‘가족 시스템’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개명이 허가됐다고 신고하고요. 두 번째로는 주민등록증을 바꿔야 하니까 주민센터에 가서 전에 사용하던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은 후 2주 정도 지나 새로 만든 주민등록증을 받게 됩니다. 다음으로 가지고 있는 통장의 명의를 모두 바꿔야 하니까 은행마다 다녀야 하고요. 끝으로, 통신사에 전화해서 핸드폰 소유자를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이 정도로 끝났지, 가진 게 많았다면 아마 그만큼 여러 군데 다니느라 정신없었겠죠. (웃음)
박소연 : 해연 씨가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법적인 서류, 통장, 핸드폰, 자격증 이름 등 바꿔야 할 서류들이 많지 않은 거죠… 저처럼 십 년을 살면 바꿔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웃음) 그동안 살면서 여기저기 등록된 게 많은데 그걸 다 바꾸려면 아마 흰머리가 가득해질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남한에서 개명하려면 변호사 소송까지 했었어요. 지금은 많이 간편해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대부분의 신청 절차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얻어
개명 신청 경험자들이 정보를 잘 정리해 놓아서 큰 도움을 받았지만
도대체 왜 이런 정보를 공짜로 나누는 걸까 궁금해
이해연 : 그래요? 이번에 제가 개명을 해보니까, 처음에 인터넷에 들어가서 많이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이름을 바꿔야 하는데, 제가 아는 게 없으니까 핸드폰을 통해 인터넷에 들어가서 지금 유행하는 이름은 뭐며, 개명하기 위해 신청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를 잘 정리해 올려놓은 블로그를 찾아서 진짜 많은 정보를 얻었어요. 북한에서는 내가 뭘 하나 알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사소한 것도 공유해서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게 하니까 사회가 날로 발전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박소연 : 해연 씨는 정말 빠르네요. 제가 처음 왔을 때는 해연 씨처럼 그렇게 인터넷을 찾아보고 후기 글이나 블로그 등을 볼 생각도 못 하고 무작정 전화번호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왜냐하면,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말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이것을 모르겠는데 좀 알려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전화 안 하죠. 개명 말고도 우리가 하는 일이 많잖아요? 모르면 지금은 바로 인터넷을 찾죠. 예를 들면 검색에 ‘내가 시청에 가서 이러이러한 일로 서류를 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하면 그에 대한 설명이 쫙 다 나와요. 저도 처음에 이런 블로그를 이해 못 했어요. 내가 궁금한 것을 너무도 정리를 잘해 놓은 거예요. 더군다나 돈도 안 받는 것 같은데 해결책을 다 알려 주잖아요. 북한 같으면 내가 그렇게 힘들게 알게 됐으면 ’나만 고생하게! 너도 당연히 고생해서 알아야지’ 이런 식이죠. (웃음) 절대 안 알려줘요. 이런 면에서 볼 때 남한에는 숨은 영웅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웃음)
이해연 : 발전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요. 북한에선 그런 정보는 대가 없이는 절대 안 알려 주잖아요.
박소연 : 완전 금덩어리죠.
이해연 : 이것도 현재 남한과 북한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소연 : 해연 씨가 이렇게 밝은 얼굴로 얘기하는 것을 보니까, 환경이 바뀌면 사람의 생각도 바뀐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개명을 고민하며 가장 걸리는 건 북한의 부모님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내 마음대로 바꿔도 될까?
그러나 새로운 삶을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이해연 : 저도 처음 하나원에서 나왔을 때 바로 개명을 안 한 이유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고, 더군다나 부모님도 지금 안 계시는 데 맘대로 바꾼다는 게 미안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는 거예요. 부모님들이 언제 오실지 기약도 없고, 개명한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고, 세련된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그냥 고치기로 한 거죠.
박소연 : 후에 부모님들이 아시게 되더라도 이해를 해주실 거예요. 내 딸이 당당하게 살기를….
북한은 대부분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군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의무적은 아니지만 알아서 바꿔야 하죠. 남한에도 개명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웃고 울게 만드는 이름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