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금단의 이름, 금지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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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금단의 이름, 금지된 호칭

박소연 : 해연 씨가 여기서 이름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에 차라리 예쁜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기는 부모님도 바라셨을 겁니다… 사실 남한에서도 최근에 와서야 사람들의 이름이 많이 예뻐진 것 같아요. 티비를 보니까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사연도 나오고요. 인터넷에 보면 2018년 개명한 사람들의 개명 전 이름들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몇 가지 알려드리면… 귀한 자식이라고 해서 '귀남'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북한에도 귀남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중요한 건 앞에 성 씨가 문제인 거예요. 김귀남이면 괜찮은데 앞에 변씨 성이 붙어 변귀남…. (웃음) 이러면 귀하게 이름을 지었는데 놀림거리가 되죠. 그래서 개명하는, 이런 비슷한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이유로 이름을 바꾸는 게 아니라 80~90년대에는 김일성의 아내 김정숙을 내세웠는데 당시 이름이 같은 사람들은 알아서 다 바꿨어요. 저희 학급에도 김정숙이라는 이름이 두 명이 있었는데 유치원 때까지는 그냥 사용했다가 초등학교 올라오니까 이름을 바꾸더라고요.

북한에서 쓸 수 없는 이름 –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그리고 김정은

이름이 같은 주민들, 자발적으로 개명하는 경우 많아

이해연 : 김정은도 어릴 때는 이름을 발표 안 하니까 일반 사람들은 정은이란 이름을 지은 분들도 있었어요. 김정은이란 이름이 발표된 이후에는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많았어요.

박소연 :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뉴스를 통해서 많이 알게 되는데요.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등의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정말 있을까? 궁금해하더라고요. 혹시 있으면 강제로 이름을 바꾸게 하겠다고 생각하고요.

이해연 : 강제로 바꾸게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그냥 사람들이 알아서 바꾸는 거죠.

박소연 : 저희 때만 해도 같은 이름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 알아서 개명했고 이제 사람들 자체가 태어나서 그 이름 세 가지는 쓰려고도 안 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거의 바꾸는 사람들도 없다고 봐야죠.

이해연 : 사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걸 저절로 알고 사는 것 같아요.

80, 90년대 북한에서 가장 놀림거리가 되던 이름은?

남한 대통령과 같은 이름, 성 씨

“보도 시간에 욕을 너무 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때 저도 사실은 성씨 때문에 놀림당한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다투다가 상대로부터 놀림을 받았는데 대체로 남한 대통령 성 씨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당했어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야, 이승만 같은 게'라고 하거나 박 씨 성이면 '박정희 같은 게'… 이런 식이었죠. 그래서 제가 박 씨라 '박정희 같은 게' 이렇게 놀리면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요. 그때마다 나는 왜 성이 김씨가 아닐까 서러워했죠.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감히 욕할 수가 없었거든요. 김일성 원수님이 계시잖아요.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죠. (웃음)

이해연 : 지금은 전두환이 어떻고 하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싸움만 하면 그랬어요.

이해연 : 지금은 없어요. 이제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써요.

박소연 : 다행히 많이 문명해졌습니다. (웃음)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는 잘 모르지만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 이름은 다 알아요. 북한 방송에서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욕을 하거든요. 막 욕하다가 어느 때는 멈추고 안 해요. 그때는 남조선에서 쌀을 주기로 했나 보다… 그런 얘기를 했죠. 이런 이유로 이승만 때부터 남한 대통령들 이름을 다 알아요. 남한에 와서 이런 얘기하면 남한 사람들이 눈이 똥그래지는 거예요. '야, 우리도 잘 모르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맨날 욕하니 잘 알 수밖에요. (웃음)

‘혜교’ ‘승헌’ … 주인공 이름이 중요한 남한 드라마

‘비서 동지’ ‘지도원 동지’… 주인공 호칭 부르는 북한 드라마

북한 사회도 같아… 이름은 기억 안 나는 ‘비서 동지’

박소연 : 남한 드라마를 볼 때도 저희가 송혜교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잖아요. 이름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잘 안 들어왔어요. 특히 북한 영화는 이름 대신 호칭을 붙여요. 지도원 동지, 비서 동지 하니까 이름이 뭔지 기억을 못 해요. 그러나 남한 드라마는 혜교야! 승헌아! 이름을 부르니까 머릿속에 각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해연 : 진짜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까 북한에서는 이름보다는 동지나 동무 이런 식으로 많이 부르는데... 요즘도 학교에서 방침에 따라서 서로 동무들끼리도 이름만 부르지 말고 뒤에 '동무'를 붙이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안 하면 사상투쟁 회의를 해야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너무 어색한 거예요.

박소연 : 동지가 어색해요? 우리는 때는 너무 익숙했는데요. 그럼 평상시에는 어떻게 불러요?

이해연 :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냥 다 이름 부르죠.

박소연 : 우리 때는 동지가 그냥 입에 붙었어요. 그냥 초소장 동지, 비서 동지… 이렇게 늘 부르니까 그게 너무 편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초급당 비서 이름이 뭔지 몰라요. 그냥 초급당 비서 동지. 나중에는 '초급당'이라는 말도 빼고 그냥 비서 동지라고 부르죠. 또는 노동 지도원 동지 이렇게 불렀는데 그 말이 너무 편했어요.

이해연 : 지금은 동지라고는 좀 부르는데 기관 안에서만 사용하고 일반적으로는 이름을 부르는 추세입니다.

남한과 북한에서 가장 차이가 크게 나는 호칭 ‘님’

북한에선 ‘님’은 장군님만 사용하는 극존칭

남한에서는 병원에만 가도 ‘~~ 님’으로 불려

박소연 :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 우리가 남한에 입국하면 제일 먼저 적십자 병원에 가잖아요? 기억나는 거 없어요?

이해연 : 제 이름을 부르는데 '씨'를 붙이더라고요. '님'자도 많이 쓰고요. 일반인인 나를 뭐 이렇게 존대해주나 해서 되게 신기했어요.

박소연 : 저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얀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박소연 선생님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를 안 부르는 줄 알았어요. 양옆을 보니까 여자는 저만 있어서 나를 부른다는 걸 알았죠. 남자들끼리 '우리는 교원대학을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를 선생님이라 하니?' 웃기도 하고. (웃음) 북한에는 의사나 교사에게만 선생님이라 하지 일반 사람들한테는 선생님이란 말을 안 붙이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오니까, 병원이나 관공서 등에 누구를 부를 때 무엇을 하는지 또는 누군지 몰라도 나이가 좀 있으면 '선생님' 이란 호칭을 많이들 사용하더라고요. '야, 내가 탈북하기 잘했다. 죽기 전에 선생님이란 말을 다 듣고' … 우리끼리 그런 말도 했어요. (웃음)

이해연 : 북한에서 선생님이라고 하면 약간 좀 뿌듯함이 있잖아요. 듣기 좋은 호칭이고요.

박소연 : 네, 맞아요. '님'을 붙인다는 게 사실 북한에서는 정말 존칭이죠. 우리가 지배인님이란 말은 안 쓰죠. 수령님, 장군님, 선생님… 이렇게 정말 특별한 때만 사용하잖아요.

이해연 : 처음에 저도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갑자기 나를 '님'자를 붙여서 부르니까 되게 송구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적응이 돼서 듣는 것도 괜찮고 또 저도 어떤 분을 부를 때 '님' 자를 붙여서 잘 부르고 있습니다.

박소연 : '님'자라는 한 글자가 나의 자존감도 올려주고 내가 귀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또 나도 상대를 그렇게 부름으로써 상대방도 존중해 주는 것이고요. 그렇게 서로 부르면서 좋은 기분을 주고받는 것 같고요…

누구누구의 엄마, 무슨 무슨 동지보다 누구야~ 이름이 불러주는 게 더 반갑고 기분이 좋을 때가 있죠. 우리가 부르는 이름 또 불리는 이름… 이름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