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꽃제비와 노숙자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가운데 정광영 씨가 지난 2010년 12월 중국 창바이(長白) 지역에서 꽃제비로 생활하던 모습.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가운데 정광영 씨가 지난 2010년 12월 중국 창바이(長白) 지역에서 꽃제비로 생활하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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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꽃제비와 노숙자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아들을 키우잖아요. 아들도 당연히 북한 출신입니다. 남한에 와서 학교에 편입하다 보니까, 남한 아이들보다는 학업능력이 조금 떨어질 수가 있어요.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북한 이탈 주민 자녀라고 부르면서 장학금을 우선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더라고요. 감사한 거죠…

이해연 : 그리고 이렇게도 부르더라고요. 한부모 가족…

박소연 : 맞아요. 어머니든 아버지든 어느 한쪽만이 아이를 부양하는 한부모 가족 또 차상위 계층, 저소득층… 도움을 주려고 사회복지 차원에서 분류하고 있죠. 사실 이런 호칭들은 국가적으로 사는 게 힘들거나 어려움이 있는 가족들인데 이건 부르라고 있는 호칭이라기보다 서류로 조사해 지원하는 것 같고요. 근데 북한에서는 이렇게 부르지 않고...

이해연 : 일반적으로 못 사는 집, 잘 사는 집으로 가르죠. (웃음) 부자와 돈 없는 사람, 또는 부자와 거지? 이렇게도 부르고 있죠.

박소연 : 이왕 부자와 거지라는 말이 나왔는데… 혹시 노숙자라고 들어보셨어요? 대한민국에도 집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해연 : 사실 저는 노숙자라고 하면 북한에서처럼 꽃제비를 치는 그런 사람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어요. 남한에서 노숙자는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많고 북한에서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꽃제비라고 부르죠.

불쌍한 아이들이지만 주민들의 기피 대상 꽃제비

남한에 와선 가장 놀라운 사람들이 ‘노숙자’

일하면 먹고살 수 있는 세상에 왜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해가는 것이 남한 사회를 공부하는 과정

박소연 : 분명히 서로 다른 점이 있어요. 남한의 노숙자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시장에서 음식을 훔쳐 먹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남한 사회에서도 노숙자라는 호칭이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남한에는 북한 꽃제비 출신들이 많이 왔어요. 그리고 이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원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직접 만나봤는데…

이해연 : 만나봤어요?

박소연 : 네, 제가 만난 친구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는데요, 북한에서는 그냥 맛있는 걸 먹는 사람을 보면 내가 저걸 빼앗아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만 했대요. 그 사람도 자기가 번 돈을 주고 샀는데 내가 저걸 빼앗아 먹어도 되나 하는 양심의 가책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한에 와서 살면서 왜 그 시절엔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싶더랍니다.

이해연 : 그렇죠. 사실 제도에 관한 문제이긴 한데, 북한의 제도에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고 남한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배려도 해주고 하니까요. 노숙자를 보면서 여기는 나만 노력하고 게으름을 안 피우면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나가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살 수 있는데 왜 저렇게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만의 사정이 있긴 하겠죠. 이제는 이 사회에 적응하면서 대부분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넘어가요.

박소연 : 그런데 해연 씨가 느끼는 그 감정은 탈북민들이 다 같이 느끼는 생각이고 고민거리입니다. 처음에는 '왜?'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다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사는 방식이려니…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럴 수 있겠다며 이해하고 넘어가집니다.

이해연 : 그리고 살면서 제가 진짜 깜짝 놀랐던 게, 여기에는 대통령이란 호칭을 부를 때 그냥 ㅇㅇㅇ 대통령 또는 이름만 부를 때도 있더라고요. 아예 줄임말로 생략하기도 하고요. 반동 아니에요?

박소연 : 반동이죠. 북한식으로 하면… (웃음)

남북이 가장 다른 건 국가 최고 지도자에 대한 호칭

어떻게 대통령 이름을 부르나?

화학기호도 아닌 그 영어 약칭은 무엇인가?

이해연: 북한에서는 대통령이란 말이 일단 없긴 하지만 '위원장님', '장군님'하고 불러야 제대로 부르는 것이지 이름만 불렀다가는 그냥 반동이나 역적이 되는 건 시간 문제죠. 그런데 남한에서는 너무도 쉽게 이름을 부르니 너무 놀랐습니다.

박소연 : 보도 시간에도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방송원이 거침없이 얘기하는 거예요. 만일 북한에서 김정은을 저런 식으로 호칭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죽었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전 대통령들을 영어 약자로 줄여서 부르더라고요.

이해연 : 어떻게 불러요?

박소연 : MB 라든지?

이해연 : MB가 뭐예요?

박소연 : 이명박 대통령이요. (웃음) 북한에서 너무 괴뢰도당이라고 불러가지고, 우리가 웬만한 남조선 대통령들 이름을 다 알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이름과 함께 대통령이라는 말도 안 하고 그냥 MB 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 처음에는 '저기 무슨 화학기호인가?' 생각했어요. 일반 사람들은 그럴 수 있지만 방송에서도 대통령을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깜짝 놀랄만하죠?

이해연 : 정말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이 이렇게 하면 안 돼, 당장 고쳐라' 이런 말도 하잖아요. 너무 충격적이에요…

박소연 : 북한 주민이 김정은 위원장한테 '당신, 이렇게 정치하면 안 돼!' 이렇게 말했다?... 정말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상상조차 못 하는 거죠. 남한에서는 그런 자유가 있는데도 저 같은 경우에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긴 좀 힘들어요.

이해연 : 저도 아직은 남한 사회를 그렇게 잘 알지 못하니까 누구를 비판하는 것까지는 아직 안 되고요. 그래도 가끔 이름만 부르기도 합니다. (웃음)

박소연 : 제가 남한에 와서 제일 가까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북한에서 정말 자기는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못했대요. 왜냐하면, 이 친구는 북송을 두 번씩이나 당했거든요. 보위부 구류장에 가서, '야, 이 갈라 저 *갈라'라는 이런 말만 듣다가 남한에 와서는 본인이 피부 미용실을 열었는데 고객들이 원장님이라고 부른데요. 이런 호칭만으로도 되게 설렌답니다.

이해연 : 북한에서 죄를 지으면 진짜 사람 취급을 안 하죠. 그러나 여기는 그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아마 우리 해연 씨도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또 알아요? 본인이 사업을 꾸려서 사장님이 될 수도 있고 원장님이 될 수도 있잖아요. 우리 오늘 호칭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요, 해연 씨는 앞으로 가장 듣고 싶은 호칭이 뭔가요?

이해연 : 예, 저는 사실 원장님보다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듣고 싶네요.(웃음) 사장이라면 일단 자기 사업을 꾸린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만의 가게를 꾸려서… 아직은 그 사업이 어떤 게 될지 잘 몰라서 얘기는 못 드리겠지만… (웃음) 어쨌든 일단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을 계속하고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듣고 싶은 호칭은?

이건 꿈과 관련된 문제… 열심히 살아서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

북한에서는 큰 돈주 정도 돼야 듣는 사장 소리,

작은 가게라고 내 것을 갖고 싶다는 꿈

박소연 : 사장이라고 하면, 북한 주민들이 듣기에는 거창하고 큰 회사를 차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한은 그렇지 않아요. 작은 회사나 동네 구멍가게를 운영해도 내가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되면 바로 사장이 되는 거예요. 그만큼 사장의 범위가 남북이 서로 다른 거 같아요. 해연 씨는 소박한 회사를 차려서라도 어쨌든 사장이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저는 센터장이 되고 싶어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거든요. 센터는 내가 혼자서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사업계획서를 내면 정부에서 조건에 맞으면 허가해주고, 승인되면 그에 따른 보조금도 지원을 해줘요. 나이가 들면 그런 센터를 운영하는 게 제 꿈이에요. 그래서 저는 센터장이라는 호칭을 가장 듣고 싶답니다.

이해연 : 몇 년 지나면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겠지만… 꿈은 자꾸 바뀌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럼요. 꿈은 꾸라고 있는 거잖아요. 얘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지금 우리가 북한에 있었더라면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있을까요?

이해연 : 저는 아마도 누구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까요?

박소연 : 저는 누구 할머니? (웃음) 앞으로 해연 씨가 원하는 호칭, 제가 바라는 호칭을 얻기 위해 한 발짝 한 발짝씩 걸어 나가기로 해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과도 계속 만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제일 좋은 일인 거 같아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해 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