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하지 않을 자유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 좀 지나긴 했지만, 6월 1일에 남한에서는 큰 선거가 있었잖아요?
이해연 : 있었죠. 북한에서 6월 1일은 아동절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선거일이었어요. 대한민국에 와서 처음으로 참가하는 선거였습니다.
박소연 : 대통령 선거는요?
이해연 : 이번에는 내가 사는 지역의 시장이랑 도지사, 시의원 등을 뽑는 지방 선거였는데요, 사실 저는 대통령 선거 때는 참가 안 했어요.(웃음)
박소연 : 북한 같으면 당장 생활 총화입니다! (웃음)
이해연 : 바로 처벌하죠.
박소연 : 대통령 선거는 올해 3월 9일에 있었죠?
이해연 : 그때는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됐고,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몰라서 그냥 참가 안 했어요.
10년 전, 정착 1개월 만에 투표소 갔던 소연 씨와
모르는 건 안 하는 해연 씨
“모르는 것에 당당한 태도는 세대차인가, 10년 차일까?”
박소연 : 해연 씨와 저는 나이 차이도 있지만 10년 차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10년 전에 하나원에서 나온 지 한 달도 못 돼서 대통령 선거를 하는 거예요. 당시엔 북한의 혁명 정신이 살아있었어요. 국가에서 하라는 건 죽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선거 당일 바지 주름을 쫙 세워서 갔죠. 동네 복지관에서 하더라고요. 그런데 남한 인민들은 편하게 슬리퍼를 신고 왔더라고요. (웃음) 대통령 선거를 하러 갔는데 저도 해연 씨랑 똑같은 게 내가 이 사람이 과거에 뭘 했는지,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아예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때는 좋았어요. 자유민주주의 나라에 와서 내 손으로 직접 도장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자들이 여러 명 있는데, 팔짱을 딱 끼고 봤어요. 누구를 찍을 것인가? 개폼을 잡긴 했지만 결국은 개념이 없이 찍었던 경험이 있는데, 해연 씨가 지금은 모르니까 참가를 안 했다는 소신은 또 그대로 좋은 거 같아요.
정착 2년 차, 남한에서의 첫 투표는 어땠을까?
“투표 과정 자체는 간단했지만
누굴 찍어야할 지 고르는 것이 가장 힘들어”
이해연 :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도착하면 먼저 신분 확인을 하더라고요. 신분 확인이 끝나고 투표지를 4장 정도를 주는데 신기했어요. 북한은 선거하면 후보가 한 사람 정해져 있고, 인민들은 그저 찬성한다고 표시만 해서 그거를 투표함에 그냥 넣기만 하면 돼요. 투표하는 곳은 천으로 가려져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서 비밀스럽게 찍을 수 있게 돼 있고요. 투표장은 정말 너무나 조용했어요. 잘 못 온 줄 알았습니다… (웃음) 문제는 누구를 찍을지였는데요. 투표하러 오기 이미 오래전에 공약집 자료가 집으로 오잖아요? 그걸 다 읽어봤는데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쨌든 내 마음 가는 대로 찍고 나왔더니 이번엔 2차까지 있다고 투표용지를 또 줘요… 나는 한 번 하면 끝나는 줄 알았어요. 투표 자체는 간단하긴 했는데 누구에게 표를 줄 지 그 선택이 힘들었어요. 제가 투표했던 기준은 예를 들면, 내가 사는 마을에 지하철이 없어요. 근데 지하철을 여기에 들여오겠다는 공약을 했다든지, 제가 청년이다 보니 청년들이 취업하는 게 큰 문제로 느껴지거든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한 분들을 위주로 투표했죠.
박소연 : 6월 1일은 남한에서 전국 동시 지방 선거의 날이고, 지방 선거는 도지사, 시장, 구청장을 비롯해서 교육감, 그리고 시, 군, 구마다 의회가 있어요. 그 의회 의원들과 광역시 의회 비례대표, 기초의원 비례대표 등을 뽑는 선거랍니다.
이해연 : 투표용지도 많고 당도 너무 많아서 머리가 복잡했어요.
박소연 : 북한은 장군님 한사람이면 끝이잖아요. (웃음) 남한은 너무 많아 복잡해요. 아까 해연 씨가 투표장에 갔는데 너무 조용했다고 했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은 선거일이 정해지면 그날 하루에 다 해야 해요. 사전 투표가 물론 있기는 있어요. 그러나 그게 극소수에 불과해요. 장애인이거나 거동을 못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민반장과 위생반장이 투표함을 가지고 가서 직접 받아와요. 그리고 장기 출장 간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당일에 해요. 남한과 달라요. 남한은 사전 투표 날짜를 미리 열어놓았기 때문에, 꼭 투표날이 아니더라도 사전에 가서 미리 하니까 당일은 좀 한가한 것 같습니다.
이해연 : 사전 투표는 굳이 내가 등록한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더라도, 일 때문에 다른 곳에 가 있더라도 가까운 투표소에 가서 투표 당일이 아닌 공고한 사전 날짜에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네요. 그리고 6월 1일 투표 당일에는 자기가 사는 고장의 지정된 투표소에 가서 투표해야 하고요.
북한의 선거는 단일 후보의 찬성 반대를 묻는 투표
99% 참여의 99% 찬성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투표장으로
투표소는 온종일 사회주의 찬양 노래가 울리고
초등학교 학생들 꽃부채 들고 도로 행진
박소연 : 남한에는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는 날도 정해졌어요. 선거 유세는 선거 전날 자정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선거일은 조용한 겁니다. 북한은 선거 분위기를 띄운다고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꽃부채를 들고 도로를 행진하죠.
이해연 : 맞아요. 북한은 무조건 그날에 가서 참가해야 하니까 당일은 사람들이 많이 밀려 있잖아요.
박소연 : 북한은 선거장에 아침부터 가서 기다렸다가 간식표 같은 용지를 나눠주는데, 거기에 표시하고 그냥 하얀 통 안에다 넣고 나오는 게 선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해연 : 그냥 가서 무조건으로 찬성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형식적으로 할 걸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오라 가라 하지, 그런 생각도 했었어요. 어차피 이제는 남한에 왔으니까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요. (웃음) 사실 그렇게 할 거면 그냥 알아서 해야지, 왜 그렇게 할까? 이런 생각이 항상 있었거든요.
북한은 인민이 수령에게 공약
남한은 인민들에게 공약
박소연 : 그리고 해연 씨가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을 잘 몰라서 미리 배포된 공약집을 공부해서 갔다고 했잖아요?
이해연 : 읽어도 잘 모르긴 했지만 그래도 읽어보는 것이 안 읽어보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서요.
박소연 : 보통 공약을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해요. 내가 만약에 시장이 되면 이런 약속을 실천으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겠다. 이거잖아요? 북한으로 말하면 붉은 맹세죠.
이해연 : 북한은 그런 맹세는 잘하는데 실천이 안 되는 것이고…(웃음)
박소연 : 북한은 '우리는 장군님과 당에 충실한 인민이 되겠습니다'라며 인민이 공약하는 거지 장군님이 공약하지는 않잖아요.
이해연 : 그러니까요. 남한에서는 선거 운동 기간에 밖에 나가면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스피커를 크게 켜놓고 '나는 누구, 후보 몇 번이다. 기호 몇 번이다' 소리치잖아요.
박소연 : 후보자들이 스피커를 크게 튼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아파트 골목까지 들어와요. 트럭에서 북한에서도 유명한 남한 트로트 노래가 나와요. 예를 들어서 장윤정의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이런 노래가 있으면 노랫말을 바꿔 불러요. '무조건 지킬 거예요'라는 둥... 처음에는 '시끄럽게 왜 저래'이랬는데 어느 순간에 그 노래를 따라 불러요. (웃음)
이해연 : 들어보면 재미있잖아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노래를 왜곡했다간 큰일 나잖아요.
이해연 : 큰일 나죠. 남한은 선거기간에 노랫말을 마음대로 바꿔서 부를 수 있지만 북한 선거는 되게 엄숙하잖아요'
박소연 : '장군님 따라 천만리' 등 이런 사상 노래만 부르죠. 이제 10년 차가 되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열린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지역이 경기도라 경기도 지사를 뽑아야 하잖아요. 북한으로 말하면 경기도당 책임 비서인 거예요. 책임 비서 자리는 한 명인데 거기에 후보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집집마다 각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적은 자료들이 와요. 제일 마음이 가는 문구는 '서민의 삶에 공감하는 경기도 지사가 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서민이면 북한 말로 인민이잖아요? 아, 이 사람 좋다. 이렇게 공약에 적힌 한 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안 찍을 수가 없죠. 결국,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을 찍게 되더라고요.
남한에는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또 그 역동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선거인데요. 실제로 선거 날 개표 방송은 밤을 패고 볼 정도로 긴박감이 있습니다. 남은 선거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