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여당, 야당 구별하는 법
박소연 : 해연 씨, 선거 전에도 남북의 모습이 참 다르죠? 북한하고 다른 모습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선거 모습, 있을까요?
이해연 : 선거 홍보 장면에서 후보자가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 모아놓고,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단체로 사람들에게 호소하면서 연설하는 게 특별했어요. 남한에서는 사람들을 모아서 연설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한두 사람씩 모아요.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부탁하는 말투로 하더라고요. 북한으로 따지면 이 후보자들 모두 간부잖아요? 간부가 이렇게 나와서 저를 뽑아달라며 절절하게 얘기는 걸 보고는 뭐지? 왜 높은 사람이 저렇게까지 얘기를 하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선거에 나오면 북한으로 치면 ‘간부’잖아요?
왜 간부가 사람들에게 저렇게까지 부탁을 하지?
처음에는 불쌍해 보였어요
박소연 : 어떻게 보면 후보가 국민한테 호소하는 거잖아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좀 심하게 얘기하면 구걸하는 거고. 신수가 멀쩡한 사람이 차 꼭대기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저를 좀 뽑아달라 이러는 거예요. 그런 모습이 저는 매우 불쌍해 보였습니다. (웃음)
이해연 : 사실 저도 좀 그렇게 생각했는데… (웃음)
박소연 :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한국에는 대형 상점들이 너무 많잖아요? 재래식 시장들도 많이 남아있어요.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꼭 재래시장을 찾아서 장사하는 분들하고 악수도 하고, 음식도 사서 먹고 하면서 자신을 알리거든요. 제가 몇 년 전에 뉴스에서 아주 재밌게 봤던 장면이 있는데요. 대한민국에 정당이 많잖아요? 선거철에 당의 유명한 분이 시장 가서 어르신 손을 잡으며 인사하니까 그 어르신이 '나 당신 너무 좋다. 너무 똑똑하고 괜찮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분이 '그러면 저를 찍어주실 거죠?' 물어보니까 '그거는 생각해 보겠다'고… (웃음)
이해연 : 정말 그렇게 대놓고 말씀들 하시더라고요.
박소연 : 그렇게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자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북한 같으면 어떻게 그래요? 나는 장군님이 좋은데 장군님을 수령으로 생각하는 건 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요. (웃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선거야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내가 탈북을 안 했으면 이걸 영영 모르고 살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해연 : 저도 매번 느끼지만, 남한이 북한과 너무 다른 게 개인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북한에서는 무조건 한 사람의 후보, 하나의 당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원돼서 강제로 찬성하는 거잖아요. 남한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와 당을 찍을 수 있는 자유가 있고요.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이런 걸 모르고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나 이런 자유에도 불편함은 있어, 바로 선택의 함정
이해연 : 그런 자유가 있는 반면에 불편한 점도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어떤 불편한 점이 있던가요?
이해연 : 선택 장애가 있습니다. 선택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웃음)
박소연 : 정말 그런 면이 있죠. 저는 그 이유가… 남한에 와서 선거하다 보면 후보가 100명이면 100명이 다 좋은 말로 정책을 설명해요. 다 잘한다고 하고 다 긍정적인 말을 하죠. 그러니까 선택 장애가 올 수 밖에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니까 이제 핵심을 보는 눈이 생기더라고요. 과연 그 공약들이 실천이 가능한 것들이냐, 말로만 하는 불가능한 것들인가 판단이 서는 거죠. 남한에는 지키지도 않을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거짓말쟁이들이라며 불신하는 경향도 있어요.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너는 정치인도 아니면서 왜 그런 거짓말을 하니?' 그런 말도 하죠.
이해연 : 이번에 선거하면서 정치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박소연 : 맞아요. 정치를 알아야 해요.
이해연 : 아직은 당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남한은 당들이 너무 많잖아요. 슬슬 공부를 좀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투표 얘기를 하고 있는데, 투표하고 정당은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해연 씨는 남한에 와서 당이 너무 많아 혼동하진 않았어요?
이해연 : 저는 조선노동당 하나만 알고 왔는데 남한은 당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다 당들끼리 또 서로 싸우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고 무서운 느낌이 있었어요. 일상에서 남한 사람들을 만났을 땐 대부분 교양이 있고 그런 분들이 많은데 뉴스를 보면 싸우기만 하는 것 같고, 저런 사람들이 정치하면 과연 잘 해나 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익숙해져서 그런 생각보다는 저렇게 서로 논쟁을 통해서 남한이 발전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공부하자는 결심,
그래서 발견한 여당과 야당을 구분하는 신박한 방법
‘야단치는 당’이라 야당?
박소연 : 지금은 당들을 구분할 수 있으세요? 구별하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해연 : 잘하지 못해요. (웃음) 색깔로 구분하고 있어요.
박소연 : 혹시 여당과 야당의 차이점은 알아요?
이해연 : 저는 처음엔 여당과 야당이라고 해서, 여당이면 여자 당인가? (웃음) 야당은 너무 사사건건 반대하니 약간 나쁜 이미지를 가졌었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대통령을 배출한 당, 그러니까 집권당이 여당이고, 집권당이 아닌 게 야당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하나씩 또 배워가네요.
박소연 : 여당을 여자 당인가 생각하다니… (웃음) 저도 10년 전에 처음 왔을 때 '여당', '야당', 여, 야 글자나 발음도 비슷해서 매우 헛갈리잖아요. 그래서 저는 앞에 글자만 외우자. 여당은 당선이 됐으니까 입을 닫은 당이고, 야당은 당선이 못 됐으니까 '야'단치는 당이구나… 그렇게 여, 야를 외웠습니다.
이해연 : 아! 그런 방법도 있네요. (웃음)
박소연 : 여당과 야당이 고정이 아닌 건 아시죠?
이해연 : 몰랐어요…
박소연 : 남한에서는 5년에 한 번씩 대통령 선거를 해요. 북한처럼 3대가 계속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당 소속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당선된 대통령이 소속돼 있던 당이 여당이 되고, 5년 임기가 끝나고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뺏기면 야당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야가 바뀐다는 거죠. 처음에는 헛갈렸는데 10년을 사니까 그게 뭐라고 구별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어요. 대통령이 당선되는 당이면 여당이 되니까 어제의 여당이 오늘은 야당이 될 수가 있는 거죠.
이해연 : 그렇구나. 오늘도 또 하나 배워갑니다.
대한민국 싸움꾼들은 정치권에 다 모였나?
정착 10년 만에 깨달음…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다
박소연 : 남한에서 정착한 지 1∼2년이면 잘 모를 수밖에 없어요. 처음부터 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이 방송, 처음 시작하면서 해연 씨가 그랬잖아요. 여당에서 무언가 정책들을 내놓으면 꼭 야당이 반박한다고요. 그래서 뉴스를 보면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싸우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저도 남한 정착 1년 차엔 그랬어요. 야 대한민국 찌개비들이(사사건건 시비걸고 싸우는 사람을 가리키는 북한 은어) 다 저기 모여 있구나. '야, 이렇게 찌깨비들이 많은 나라를 새 조국이라고 왔는가' 불안해했는데 이제 10년이 되니까, 저렇게 논쟁하니까 발전이 있는 거라고, 답을 정해놓고 무조건 따라가는 북한처럼 하면 발전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남한 정치권에서 제도나 정책을 결정하면서 싸우는 것을 볼 때마다 불편하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에요. 누가 싸우는 걸 보고 기분이 좋겠어요? 그러나 겉으로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것 같고, 눈에 보기 좋으면 북한처럼 발전이 없어요. 남한처럼 더 좋은 대안과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다툼이 있어야 발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연 : 해가 갈수록 정치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될 거잖아요. 이제 익숙해지면 정치에 관한 뉴스를 보더라도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를 때는 저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알고 나면 정말 재밌는 게 정치가 아닐까요…
남한 ‘정치’하면 북한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도 국회에서 편을 나눠 싸우는 모습이죠. 그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날 선 경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한 국민들도 정치 얘기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민주주의라는 게 이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소란하고 힘들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루고 힘들게 앞으로 가는 과정… 달라도 너무 다른 남북의 선거와 정치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갈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