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자존심 버리고 자신감 높혀라

0:00 / 0:00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가 지금 서비스직에서 일하고 있죠? 사람들을 많이 대상해야 하는데...

이해연 : 저는 아직 힘든 부분이 있죠. 가끔씩 일하다 보면 줄임말 하는 사람도 있고...

박소연 : 옹근 말을 다 하는게 아니라 프레스에 압착하듯 말을 줄이죠.

이해연 : 그래서 주변에 물어보면 나도 모른다...그러죠 (웃음)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이해연 : 나이 드신 분들은 줄임말을 거의 모르시고 그래도 어린 친구들은 금방 알더라고요… 사는 게 참 힘듭니다.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남조선도 우리하고 똑같은 조선말을 쓴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남한에 와보니까 물론 말이 100% 다르진 않은데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거예요. 해연 씨가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맞아준 국정원 선생님들도 다 남조선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이해연 : 그랬죠. 그분들은 많은 탈북민들을 상대해봐서 북한말을 잘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북한말을 이렇게 잘하시냐고 물어보니까 여러분과 대화를 하기 위해 우리도 공부한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리고 국정원에 있는 동안에 가끔 밖으로 견학가잖아요?

박소연 : 국정원에 있는 동안 1박 2일 현장체험 같은 거 가죠.

이해연 : 그럴 때 선생님들이 음료수는 뭘로 드실 거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에스키모'로 사주시면 안 돼요?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에스키모를 못 알아 들으셔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다 에스키모라고 하죠.

이해연 : '까까오'도 있는데 그러면 더 모르시더라고요.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데 설명을 너무 많이 해드려야 되더라고요. 결국, 겨우 먹긴 했습니다.(웃음)

“같은 조선말인데도 번역기를 돌려야 한국분들이 알아듣고,

우리도 한국분들이 얘기하면 분명 조선말인데 중간에 갑자기 잉글리시가 탁 튀어나와요 "

요즘 가장 큰 장벽은 외래어보다 일상화된 줄임말

처음에 반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재미있어

박소연 : 10년 전에 우리가 남한에 처음에 오면 국정원에서 한 2~3개월 있고, 하나원이라는 교육기관에서 한 3개월 지내다가 사회에 나가잖아요. 있는 동안에 모르거나 궁금하면 선생님께 손을 들고 물어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메사한 거예요. 부끄럽다는 거죠.

이해연 : 아, 여기는 '메사하다'는 말을 안쓰더라고요.

박소연 : 안 써요. 10 년 전 국정원에 있을 때 저희도 선생님들이 하는 남한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혼란스러웠어요. 하나원에 있을 때 일인데요. 하나원 안에 '하나의원'이라고 있어요. 탈북민들을 진료하는 작은 병원인데 일하시는 분이 다 한국 선생님들이잖아요? 한 번은 저희 동기생 남자분이 진찰하러 갔어요. 남한 선생님이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야 내 신시 있다가 허리 아파 왔습니다' 했대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이 '아! 신발을 신으시다가 허리를 다치셨군요?'… 그렇게 이해하신 거예요. 북한말로는 신시있다가…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데 허리가 아파서 왔다는 말이잖아요. 이게 우리가 있을 때 우스운 일화가 됐어요. 이처럼 같은 조선말인데도 번역기를 돌려야 한국분들이 알아듣고, 우리도 한국분들이 얘기하면 분명 조선말인데, 잘 나가다가 중간에 갑자기 잉글리시가 탁 튀어나와요. 그러면 깜깜해지는 거죠.

이해연 : 일반적인 대화에 금방 선배님이 이야기하시던 것처럼 가끔씩 튀어나오는 이상한 말이 있어요. 예를 들면 티비를 보는데 갑자기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 튀어 나와요. 출연자들이 말하다가도 갑자기 '말못잇'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말을 못 잇는다는 뜻이래요. 이런 말들이 저도 이제는 조금씩 적응이 돼서 약간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북한식 억양은 탈북민들이 취업하는데 걸림돌일까 ?

탈북민들이 흔히 하는 말 "남한에 와서는 자존심은 버리고 자신감을 살려라"

“자신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박소연 : 탈북민들이 사회에 나오게 되면 직장을 구해서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이 말의 억양 때문에, 면접 볼 때 매우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이해연 : 그것은 자신감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박소연 : 20대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해연 : 그런가요?

박소연 : 제 나이 되보세요.(웃음)

이해연 : 그래도 저는 자신감 문제라고 생각을 해요. 억양이 다르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자신이 있으면 북한에서 왔다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어필하면 될 것 같아요. 남한 분들이 체험을 못 한 것을 나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장점이 있잖아요.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면 꾸준하게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면,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박소연 : 가끔 탈북민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남한에 와서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감을 살려라' 북한에선 그러잖아요. '야, 내가 자존심 빼면 시체다' 그런데 그런 정신으로 남한에 오면 적응을 못 해요. 10년 전만 해도 탈북민들이 자존심이 셌어요. 우리가 북한에서 힘들게 왔다는 자신감을 가졌는데, 현실을 맞닥뜨려 보니 기술도 없지, 억양도 다르니까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은 거예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돼요? 스스로 변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해연 : 저는 억양보다도 중요한 게 기술같은 실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는 게 많으면 사투리를 쓰더라도 설득력 있게 나의 전공을 살려 사람들한테 보여 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박소연 : 제가 온 지 10년 됐잖아요. 저는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 두려워요. 남한 분들은 그냥 툭 던지는 평범한 말인데도 북한에서 온 분들은 머릿속에서 한 세네 번은 돌다가 나가요. 그만큼 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거죠. 어떻게든 실수를 안 하려고 남들이 안 하는 고민을 하나 더하게 되더라고요.

이해연 : 저도 통화를 할 때 네이버를 열어놓고 해요. 그래서 중요한 대화를 하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검색하려고요.

박소연 : 와!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해연 : 이렇게 우리가 하나하나 성장해가는 것이겠죠?

박소연 : 아무리 성장해도 가끔 불쑥불쑥 또 튀어나가죠. (웃음)

이해연 : 다 알 수는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많이 배워가게 되겠죠.

가장 충격적인 남한 표현은 '죄송합니다'

북한에서는 욕을 할 때 본질보다는 외모를 비하해

“쥐었다 놨다 한 메줏덩이처럼 생겨가지고 꼭 생긴 것처럼 논다니까”

남한에서는 어떤 외모든 '개성있다'고 표현

박소연 : 남한에 와서 북한하고 같은 말인데 서로 다르게 쓰이는 말을 보면서 남한을 따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이유가,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는 외모를 갖고 사람을 평가하거나 흉을 보잖아요. 쥐었다 놨다 한 메줏덩이처럼 생겨가지고 꼭 생긴 것처럼 논다니까… 이런 식으로.

이해연 : 맞아요. (웃음)

박소연 : 북한에서는 욕을 할 때, 뭘 잘못했는지 본질을 갖고 욕하는 게 아니라, 외모를 갖고 욕했어요. 10년 전에 제가 남한에 왔을 때, 북한 기준으로 봐도 못생긴 사람이 있어요. 그럼 '저 사람 못생겼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10년이 지나니까 못생긴 게 아니고 개성 있게 생겼더라고요. 북한에서는 곱게 생겼든지 못생겼든지 두 부류로 나눠요. 중간이란 없어요. 그런데 남한에는 이국적으로 생겼다, 예쁘다, 개성 있다, 분위기 있다 등 다양한 표현이 많은 거예요. 남한에 와서 저에게 가장 문화충격이었던 것은 골목길이나 지하철 탈 때 좁으니까 스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상대가 갑자기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연 : 맞아요. 내가 먼저 쳤는데도 상대방이 죄송한다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박소연 : 그때마다 저는 '저 사람이 나한테 뭔 죄를 지었지?'라고 생각했고, 또 길을 물어볼 때도 '혜화동 57반이 어디요?'라고 그냥 물어보면 되는데, 꼭 '죄송한데 광화문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죠?'. 이런 식으로 앞에 꼭 '죄송한데'라는 말을 먼저 붙이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적응이 안 됐어요.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말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남북의 사는 모습과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자그마한 도움에도 감사함을 전하면서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이 일상 대화가 저와 해연씨에게는 무척이나 낮설었다면 북한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죠. 남북의 서로 다른 말과 의미들… 다음 시간에 이어갈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