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남한 사람들도 싸우죠. 그런데 저는 북한에서 왔다는 게 저를 잡아 앉혔어요. 남한 사람들끼리 싸워서 목청을 높이면 '그래, 서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목청을 높이며 싸운다면 '쟤는 북한에서 와서 저러지 않을까?' 생각할까 항상 걱정했어요.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인식하기에 못살고 폐쇄된 국가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분명 머리가 막혔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어요.
이해연 : 그런 사람들도 있죠.
박소연 : 저도 가끔은 싸우고 싶을 때도 있죠. 솔직히 북한 말로 자부디(머리끄댕이)를 잡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북한에서는 싸우기만 하면 여자들끼리 머리끄댕이를 잡잖아요. (웃음)
이해연 : 어우, 그럼 이기죠. (웃음)
박소연 : 당연 이기죠. 60킬로 마대를 멧던 여자잖아요. (웃음) 그런데 남한에 와서 배운 게 그냥 무시해버리라는 거예요. 북한에서 무시하면 피를 물고 싸웠지만 남한에는 '책장을 넘기듯 넘겨버려라'라는 말이 있어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박소연 : 저는 처음에 남한 사람들은 다 웃으면서 지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더라고요. 남한에도 말 때문에도 싸우고, 여성들도 북한처럼 머리끄댕이를 잡더라고요. 북한처럼 대중화되지는 않았지만요... (웃음)
이해연 : 남한도 그러는 줄 저는 미처 몰랐네요.
박소연 : 남한에서 싸우면 특징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말 때문에 다투다가 주먹이 나가게 되면 경찰에 신고가 되고, 그 다음은 먼저 때린 사람이 합의금을 물어줘야 하는데 합의가 안 되면 징역을 가야 해요. 이처럼 싸우게 되면 무언가 제재를 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들이 잘 돼있어요. 북한은 안 그러잖아요.
이해연 : 그런 게 없죠. 목소리 크면 이기죠.
박소연 : 그냥 목소리 센 사람이 법 앞에 가서도 이기잖아요. 남한은 제재할 수 있다는 게 다르지만, 그래도 여전히 목청 높이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이해연 : 저는 그동안 남한에서 너무 아름다운 것만 본 것 같습니다 (웃음)
박소연 : 우리가 남한에서만큼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한 거 아닐까요. 북한에서 너무 싸우고 살아서 이제는 지친 거죠.
목폴라, 후드티, 코디해서 입자, 피팅해보세요
한마디 걸러 튀어나오는 외래어… 영어 유감
이해연 : 이제 조금 아름다운 주제로 갑시다.
박소연 : 그러죠.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 와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건 좋은데, 그러다가도 또 아름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죠. 남한에 오니까 로어(러시아어)를 듣기가 힘들어요. 전부 영어만 쓰는데,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만 하면 되잖아요. 벌써 화가 또 나려고 하네요. (웃음) 남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중에 영어가 중간중간 들어가서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해연 : 저도 너무 힘들어요. 여기 남한에 와서 제가 못 알아듣는 말이 너무 많더라고요.
박소연 : 어떤 말들이 가장 알아듣기 힘들던가요?
이해연 : 대형 상점에 쇼핑하러 가면 죄다 영어를 쓰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박소연 : 쇼핑 자체가 벌써 외래어잖아요. 쇼핑이 무슨 뜻이죠?
이해연 : 갑자기 물어보니 생각이 안나요!! (웃음) 상점에서 옷이랑 물건들을 둘러보고 사는 행위를 의미하는 거죠?
박소연 : 북한 말로 돈 쓰러 가는 거죠.
이해연 : 맞아요. 쇼핑, 너무 좋죠. 그런데 쇼핑하러 가면 목이 달린 옷은 목폴라라고 하고, 모자 달린 옷은 후드티, 자켓, 코디를 해 입으라는 등 죄다 영어입니다. 옷을 사기 위해 '이거 입어볼 수 있나요?' 물으면 '네, 피팅 가능합니다'…. 피팅이 뭐죠? (웃음) 피팅이란 말이 뭔지 몰라도 그 자리에서는 물어보지 못하고 조용히 핸드폰을 열어서 네이버에 '피팅'이라고 찾아봐요.
박소연 : 핸드폰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해연 : 진짜 못살 것 같아요. 한 걸음도 못 움직이죠. (웃음) 검색하고 나서야 '아, 옷 입어보라는 거구나, 입어볼 수 있다는 거구나' 이해하고 그제서야 옷을 가지고 가서 입어보는 거죠.
박소연 : 그런데 이 얘기를 한번 꼭 하고 싶었는데 저는 방송 2년 차 때 영어를 안 썼어요. 지금 보면 해연 씨는 말끝마다 스트레스니 컴플렉스니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데, 저는 10년 전에 아예 몰라서 쓸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해연 : 그냥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남한 사회에 대한 불만이 하나둘 늘어나는 정착 2년 차… 해연 씨는?
불만보다는 공부해야한다, 배워야겠다는 생각 커
박소연 : 남한에 온 지 2년 차잖아요? 영어가 이렇게 많이 쓰이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나요? 저는 그 때는 정말 불만이 폭발 지경었어요.
이해연 : 불만은 없고… 저는 그냥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내가 뒤떨어지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은 했지만 불만은 없어요.
박소연 : 조선말이 이렇게 많은데 하필이면 미국말을 이렇게 쓸까? 저는 당시엔 그런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북한은 혼자서만 조선 혁명을 다 하지만 남한은 다른 나라와 서로 교류를 하면서 사니까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하시는 남한 사람들 꽤 많고요. 또 대학을 졸업할 정도 되면 어지간한 미국말을 다 알아듣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조선말을 지켜야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적어도 '남한 사회에서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일상생활에서 쓰는 영어 정도는 알고 사용할 줄 알아야 뒤처지지 않겠구나'로 바뀌었습니다.
이해연 : 맞아요. 사실 그동안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리걸음을 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나왔으니까 나부터라도 좀 바뀌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불만 같은 건 없고 빨리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땅을 뛰쳐나왔으면 관습과 인식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버리고 와야”
박소연 : 너무 좋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북한식 생각에 갇혀 있으면 남한에 와서도 나는 여기서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북한에선 이렇게 살았는데… 이런 생각으로 과거에 살면 여기 와서 제대로 정착 못 합니다. 내가 그 땅을 뛰쳐나왔으면 그 땅에서 생활했던 관습들과 인식들은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버리고 와야 맞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그렇죠. 사실 남북이 말이나 모든 면에서 다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살지 않을까요? 같다면 남한도 그냥 예전의 세상에서 살고 있겠죠. 저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박소연 : 달라져야 한다는 걸 저는 또 어떻게 분석했냐면 정착 후 1∼2년 지나서 하나원 동기생들이 모였어요. 모여서 '야~ 진짜 남한은 북한과 너무 달라서 따라가기 힘들다. 그냥 우리가 살아왔던 대로, 혁명 정신으로 돈만 많이 벌고 살면 되지, 그깟 영어를 모르면 어떻냐, 왜 이 나라는 이렇게 영어가 많냐'며 불만이 80%였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에서 살았던 생활력을 무기로 삼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생활력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모르고 북한식 대로만 살려고 한다면 힘들어요. 옛날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머리가 우둔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그걸 우리는 답습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해연 씨 세대는 다행히 그런 것들을 답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사회라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연 : 잘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북한에서는 다름을 인정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어떤 제안을 하면 무조건 그걸로 가야 해요. 누군가 바꾸고 싶다고 하면 왜 네가 바꾸려고 하냐며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에 와서 살아보니 이렇게 다른 걸 인정하며 살기 때문에, 이 나라가 잘 사는구나. 그리고 제가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다면 남한으로 오지도 못했겠죠. 여기 와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바뀌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소연 : 정답을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남북의 말도 비교하고, 남한에서 많이 쓰는 영어 등을 비교하다 보니 뭔가 뚜렷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 받아들이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마지막 인사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함께해 주신 우리 해연 씨 사랑합니다.'
이해연 : 어우 뭐에요!! (웃음)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