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남한은 8월인데도 덥죠?
이해연 : 엄청 나네요.
박소연 : 덥지만 우리가 지금 이 스튜디오 안에는 시원한 커피가 있지 않습니까?
이해연 : 이렇게 시원한 커피까지… 감사합니다.
박소연 : 제가 샀다는 걸 생색내고 싶네요.(웃음) 우리는 항상 녹음하기 위해 모이게 되면 피디님이랑 해연 씨랑 저랑 채팅방에서 싸움하잖아요?
이해연 : 커피 서로 먼저 사 온다고 싸우죠. 근데 사실 오늘 제가 커피를 사 오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다음 번엔 제가… 사실 북한에 있을 때는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게 더 익숙했던 것 같아요. 여기 와서 주는 기쁨을 느꼈어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주는 것도 기쁘더라고요. 이렇게 커피 한 잔이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좋고…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박소연 : 남한은 외식, 북한으로 말하면 매식이 보편적이죠? 북한 사람들이 들으시면서 아마 '생활력이 없는 남조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한에는 식당에서 사 먹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해연 : 요즘은 다 일하니까 시간도 없고 해서 그렇지 않나요?
박소연 : 남한에 와서 자주 듣는 말이 '내가 오늘 한 턱 쏠께 밥 먹으로 가자'는 말인데요. 해연 씨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알았어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뭘 사주고 싶으면 한턱을 낸다고 하는데 '쏜다'고 해서 조금 좀 당황했어요. 뭘 쏜다는 거지?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밥을 사준다는 얘기더라고요. 지금은 저도 자연스럽게 쏩니다!
왜 남한 사람들은 밥을 쏜다고 하나? 미사일도 아닌데…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문화는 더치페이
박소연 : 제가 10년 전에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하나원 선배님들이 저희한테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셨어요. 식당에 가면 눈치를 잘 봐야 한다, 여러 명이 식사하러 갔을 때 먼저 서둘러서 나오면 네 카드를 긁어서 밥을 계산하게 된다, 그러니 밥을 다 먹고 돈을 계산할 즈음에서는 물까지 다 마시고, 신발 끈까지 다시 매는 흉내를 내라는 거예요. 그러면 먼저 나간 사람이 밥값을 낸다는 거죠. 물론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얘기해준 거지만요. 그래서 처음에 사회에 나왔을 때는 누구랑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이 부담이었어요. 왜냐하면, 공짜로 얻어먹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해서 돈도 얼마 없는데 밥값을 낼 수도 있고…
이해연 : 저는 일단 이번에 사주는 거 먹고 다음에는 내가 사야지 했어요. 그런데 요즘 식당 가면, 학생들이 여러 명 함께 오잖아요? 그런데 계산할 때 보면 한 명씩 따로 계산하더라고요. 그걸 '더치페이'라고 한다고…
박소연 : 각자 먹은 건 각자 계산하는 거죠?
이해연 : 너무 냉정하지 않아요? 북한에서는 그런 말 많이 해요. 먹는 걸 가지고 뭘 그러냐… 같이 갔으면 한 명이 내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내면 되지 생각했는데요. 조금 지나고 보니 어쩌면 그게 깔끔하고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게 하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럼 혜연 씨, 혹시 남한 정착 2년 동안에 누구랑 같이 밥을 먹고 더치페이한 적이 있어요?
이해연 : 아직은 없어요. 고향 친구들끼리 만나고 하니까 '사사오칠'(에누리 없이 정확히 나누지 않음) 하죠. 남한분들이라면 좀 그런 걸 따질 수도 있겠지만요.
박소연 : 저는 아직 옛날사람이라서 아직 더치페이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요. 해연 씨는 이해할 수 있으세요?
이해연 : 네, 이해되죠. 공적으로 만났을 때나 회사 생활을 한다고 하면 매번 하는 식사를 계속 누군가 낼 순 없잖아요? 그럴 때는 더치페이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10년 차이가 생각의 차이도 만드네요…
남한 정착 초기에는 여기저기 식사 대접
처음에는 고맙고 미안했지만
나중엔 “왜 나에게 밥을 사주나” “나를 거지로 아는가?”
박소연 : 탈북민들이 남한에 오게 되면 식사 초대를 많이 받아요. 남한에 금방 왔으니까 복지관이나 경찰서에서 불러서 식사를 시켜요. 초대를 했기 때문에 대부분 본인들이 다 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정착 연도가 늘어나니까 미안함을 느끼더라고요.
이해연 : 부담가죠…
박소연 : 저분이 나한테 이득을 보려고 접근한 사람도 아니고, 단순히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식사를 대접하는 거예요. 그런 점에 미안한 생각도 있고 한편으론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나를 거지로 아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분은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자격지심에 좁게 생각할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정착 3년에서 5년 정도가 지나니까 이제 제가 먼저 지인에게 전화해서 초대하게 되더라고요. 남한의 문화는 먼저 전화를 해서 초대한 사람이 밥을 쏘더라고요. 그분이 한국 분이었는데 내가 카드를 내니까, 북한에서 왔는데 무슨 돈이 있다고 내려고 하냐며 말리더라고요. 그 순간 약간 울컥했어요. 나도 이제는 밥을 쏴도 된다. 사람이 먹는 것에서 감정이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이해연 :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실 남한에 와서 우리가 배려를 많이 받잖아요. 다 주시잖아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공짜잖아요. (웃음) 사회에 나와서 신변 보호관분이라든가 다른 분들이 밥을 사준다고 할 때 처음에는 그냥 나가서 먹고 이랬었는데, 점점 부담스러워지더라고요. 이래도 되나? 다음에는 내가 사야 할 것 같은데, 저분들은 이 돈을 어디서 나서 쓰시는 거지?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다음부터는 그분이 말리시는 데도 커피는 제가 샀어요. 그래도 부담이 가더라고요.
북한에서 가장 눈치 없는 사람
= 식사 시간에 남의 집에 오는 사람
밥 예민했기에 누군가 밥을 사주는 행위에 부담, 거부반응
박소연 : 저랑 해연 씨랑 둘 다 북한 출신이잖아요. 저는 남한에 와서야 먹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북한에서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밥을 먹었고, 또 밥을 먹어야 내 자식들을 위해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을 별로 못 했어요.
이해연 : 즐거움이란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어떤 분들은 맛있는 걸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릴까 생각했죠. '아니 왜 밥을 먹으면서 행복하다고 하지?' 사실 북한에 살 때는 먹을 때 행복하다는 말을 잘 안 쓰거든요. 배부르면 그냥 배부르다고 하지 즐거움이나 행복으로 느끼진 않거든요. 그런데 남한분들은 그런 사소한 것까지도 행복으로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때 시간'(식사시간)이라고 하죠. 먹는 것에 관해 굉장히 예민해요. 사람들이 뭐가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식량이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에 내가 해연 씨네 집에 무슨 일 때문에 가고 싶어도 줄 것이 없어 부담 줄까 봐 식사시간을 피해가잖아요. 그 집 식구들이 밥을 먹을 때 내가 들어가면 내가 밥상머리에 끼워 앉아야 하고, 없는 살림 축내게 되니까 미안하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식사시간에 남의 집에 가는 사람을 제일 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죠. 그만큼 먹는 것에 우리가 예민해져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남한에 와서는, 이런 이유로 누가 나에게 밥을 사주거나, 누구랑 같이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약간 거부 반응이 있는 거 같아요.
이해연 : 그런 면이 있죠. 그래서 밥을 사준다는 사람에게 처음에는 왜 나에게 밥을 사줄까? 의아하게 생각을 하면서 이해가 잘 안 됐는데요, 적응을 좀 하고 나서 보니까 배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네요.
북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냐는 인사는 해도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진 않습니다.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식사했냐, 언제 한번 함께 밥을 먹자고 인사를 건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건가요? 밥 한 그릇에 담긴 남북의 서로 다른 뜻과 의미!
다음 시간에 이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