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 항상 식사 시간에 예민하고, 식사 시간에 남의 집에 찾아가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가장 처음 묻는 말이나 인사가 '식사하셨나요?' 더라고요.
이해연 : 맞아요. '밥은 드셨어요' 자주 물어요.
박소연 : 지금 북한에서도 전화를 많이 쓰잖아요? 만일 아침에 전화해서 '밥 먹었어?' 라고 물어보면 '너는 배에 거러지 들어앉았니?' 그럴 걸요?
이해연 : 너는 맨날 먹는 얘기를 하냐고 그러겠죠. (웃음) 근데 북한에서는 일단 밥 얘기를 하면 밥을 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잘 안 물어봐요. 밥이 있을 때만 얘기하지 밥이 없을 때는 절대 얘기 안 해요.
북한 사람에게 인사로 “밥은 먹었니?” 묻는다면…
아마 돌아오는 답변은 십중팔구
“너는 배에 거러지가 들어앉았니?”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서 식사라는 건 살아가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먹어야 하는 끼니라고 생각하는데 남한에는 의미가 좀 다르죠? 저는 실제로 한 5년 전에 경험을 했는데, 아들이 집에 있으니까, 주말이면 친구들이 놀러 와요. 텔레비젼을 켜놓고 축구경기를 보는데 문제가 뭐냐… 집엘 안 가요. (웃음) 밥때가 돼서 나는 갔으면 좋겠는데 안 가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할 수 없이 닭고기를 기름에 튀긴 치킨과 밀가루를 펴서 그 위에 온갖 것을 얹어 구워 만든 피자를 세 판을 배달시켜요. 그걸 보고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옆집에서 뛰어나올 정도로 커요. 나하고 이해관계도 없는 얘들을 위해 분명 내 지갑에서 피 같은 돈이 나갔어요. 그런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이해연 :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렇죠.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이게 주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고 행복이구나. 저는 그때 아들을 키우면서 처음 그런 기분을 느꼈어요.
이해연 : 여기 남한 분들은 그래도 먹고 사는 건 괜찮잖아요. 그분들이 가끔은 북한에는 굶기도 하고, 끼니를 거른다는데 진짜 그렇게 굶고 정말 쌀이 없어서 정말 그러냐고 물어요. 그러면 제가 대부분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하죠. 근데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하는 걸 동정이라고 생각을 해서 안 좋게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꼭 그렇게만 생각이 들지는 않더라고요.
박소연 : 제가 그렇게 생각하죠. 동정이라 생각되서 싫었어요.
이해연 : 저는 그냥 받아들여요.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온 것은 사실이니까요.
“매일 오는 정착 도우미 분이 불편했어요. 전화를 피할 정도로.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왔더니 문고리에
아직도 식지 않은 따뜻한 반찬 그릇이 잔뜩 걸려있었어요”
박소연 : 제가 10년 전에 하나원에서 바로 나오니까, 정착 도우미라는 분이 우리 집에 왔어요. 한국 분인데, 저는 나이가 좀 있어서 왔잖아요. 40살이 다 돼서 온 데다가, 원래 성격도 조금 까탈스럽고... 이분이 집 청소하는 것부터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거예요. 속으로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로 아는가'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히 얘기해 주는 게 고맙지가 않았어요. 이 사람이 내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니까 완전히 머절싸하게 보고 이러는구나 하는 생각에 그분이 오는 것도 싫더라고요. 전화도 안 받았어요.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남한에 왔고, 더군다나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왔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분의 배려가 동정으로 느껴져 싫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동정을 받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서는 굶어 죽어도 나는 동정받기 싫다 마인드로 살아왔죠. 그러다가 풀리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이분이 반찬을 만들어서 삼단도시락에 식지 않게 싸서 바깥 문고리에다가 걸어놓고 간 거예요. 천으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는데 안을 열어보니까, 고사리 반찬, 콩나물 반찬들이 있는 거예요. 이분이 인터넷으로 검색한 거예요. 북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요…
이해연 : 대단하시다.
박소연 : 솔직히 반찬은 맛이 없었어요. (웃음) 남조선 반찬이 좀 달달하잖아요. 그런데 반찬을 딱 보는 순간, 고마운 마음에 응어리진 게 탁 풀리는 거예요. 나를 머절싸하게 생각해서 일일이 알려준 게 아니라,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서 친절을 베풀었다는 것이 음식을 앞에 두니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그분이랑 연락하고 지냅니다.
이해연 : 음식에 마음이 싹 녹았네요.
박소연 : 먹는 게 이렇게 중요해요. 식사를 통해서 느끼는 그 뭉클함이 있잖아요. 그때를 계기로 내가 좀 더 잘 살아야겠다. 내가 좀 더 성숙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깊이 했던 것 같아요. 그분의 진심 어린 고마움 앞에 뭉클했던 기억이 새롭게 나네요.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는데 모르는 분이 계산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냥 맛있게 먹고 가라, 오느랴 고생했다”
처음에는 공짜라 마냥 좋았지만 제가 돈을 벌어본 뒤 알았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이해연 : 저도 식당에 가게 되면 그런 경우를 가끔 겪는데요. 우리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오셔서 옆에 분이 계산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분이 사장님께 그런 얘기를 왜 하냐고 막 타박하시며 저희에게는 고생했어 오느라고 그냥 맛있게 먹고 가면 된다면서 가시는데… 우리는 무심코 먹고 있었지만 계속 우리를 지켜보셨던 거예요. 말투가 아무래도 북한에서 온 티가 나잖아요.
박소연 : 티 나죠. 고맙네요.
이해연 : 사실 처음에는 그런 걸 경험을 했을 때는 단순히 공짜라며 살짝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런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모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밥값을 내준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제가 현실에 부딪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정말 힘들게 버는 걸 알기 때문에,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을 처음 본 사람을 위해 선뜻… 그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더 고맙게 느껴지고 그렇더라고요.
박소연 : 그랬군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저는 서울 바닥에 돈이 굴러다니는 줄 알았어요. 남조선에 가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돈을 줍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현실에 와서 생활해보니 안 그렇잖아요. 그래도 북한보다는 일자리가 많고 열심히 살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북한과 다른 점인 거죠.
이해연 : 그리고 남한은 분명 돈이 중요한 나라이지만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고 하는 나눔을 통해서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살만한 곳이라는 것도 느낍니다.
북한은 아무리 못 살아도 우리 아이가 열이 나면
옆집에서 아스피린이라도 절반을 뚝 끊어줄 정이 있어요.
그러나 남한은 살인이 판을 치고, 아이들은 구두닦기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어요
박소연 : 그렇죠. 북한에서 배운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사회고,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가 심하다든지, 암에 걸려도 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등... 우리는 항상 남한에 대해서 부정적인 것만 배웠어요. 물론 북한은 아무리 못 살아도 우리 아이가 열이 나면 옆집에 가서 감기약이나 아스피린이라도 절반을 뚝 끊어줄 그런 정이 아직까지도 있어요. 그러나 남한은 인심이 각박한 세상이고, 살인이 판을 치고, 굶어 죽고, 아이들은 구두닦기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남한에 와서 직접 보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남한 사람들의 베푸는 즐거움은 한 끼 식사로 끝나지 않는데요. 일상 속에서 작은 것들을 주고받는 선물 문화는 또 다른 놀라움이었습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남북의 선물 문화! 다음 시간에는 이 얘기, 이어갈께요.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