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이해연 : 네, 안녕하세요.
박소연 : 우리 지난주 녹음할 때는 반팔 입고 시원한 커피를 마셨잖아요?
이해연 : 오늘은 긴소매에다 커피도 따뜻한 걸로 사 왔어요. 올해는 유독 가을이 금방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박소연 : 어때요? 해연 씨가 남한에서 두 번째로 맞는 가을이잖아요?
이해연 : 그러네요! 한국에 와서 가을이란 느낌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남한에서 가을은 단풍? 길옆에 빨간 단풍들이 있어서 이젠 가을인가 보다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이지, 사실 북한과는 너무 다르죠. 북한의 가을은 길거리에 소달구지가 바삐 다니고 그걸 보면서 이제 바쁜 시절이 왔다고 느끼죠. 북한 방송에서도 '전투적으로 가을걷이에 떨쳐 나섭시다' 구호가 막 나오잖아요?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계절이 가을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에 남한에서의 가을은 별로 가을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박소연 : 간만에 해연 씨랑 저랑 10년 차이가 줄어든 것 같네요! 저랑 생각하는 게 거의 비슷해요. 한국에는 '가을' 하면 대표적으로 4가지를 말하더라고요. 하늘이 높아지고, 모닥불도 아닌데 '가을을 탄다'고 하고요.(웃음) 그리고 단풍 구경을 가고,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이 중에서 저는 한 가지만 공감합니다. 단풍!
이해연 : 하늘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저는 처음 듣는데요?
박소연 : 저도 태어나서 처음 들었어요. 하늘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북한에 있을 때는 그런 것 자체에 아예 관심도 없었죠.
이해연 : 하늘이 높다, 낮다는 말은 안 쓰고 그냥 맑다, 검다는 이런 표현을 했잖아요.
박소연 : 그랬죠. 요즘 들어 주변에서 사람들이 자꾸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서 '나 가을 타나 봐. 외롭고 슬프다'는 둥 얘기를 해요. 저도 지금이니까 그런 말을 하면, '그래, 나도 가을이 되니까 외로워' 이런 식으로 대답하지, 10년 전에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콧방귀를 꼈어요.
이해연 : 저도 가을이 뭐가 문제인가 싶네요.
박소연 : 가을인데 뭐가 슬퍼? 진짜 배부르니까 별 얘기를 다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10년을 살다 보니까 남한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게 되네요. 저도 가을 타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가을이 되면 또 남한 사람들은 바깥에서 자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해요?
이해연 : 맞아요! 캠핑하러 많이 가더라고요.
박소연 : 캠핑이 뭔지 우리 청취자분들한테 해연 씨가 설명을 좀 해주세요.
이해연 : 캠핑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산이나 계곡, 강가 등으로 이동해서 북한식으로 말하면 천막이 있잖아요. 여기서는 텐트라고 하던데 그것을 사서 가죠. 대부분 조립식입니다. 그것으로 간단히 집을 만들고, 그 옆에서 고기도 굽고, 장작으로 모닥불도 때면서 야영을 하는 거죠. 이런 걸 캠핑 간다고 하던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캠핑을 가지 않나 싶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남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제가 정착하는 초기에도 캠핑족이라고 있었어요. 텐트는 비가 와도 스며들지 않는 방수천으로 만들어져 있고요. 북한에서는 국방색 천막이라고 하는 것과 비교하면 비슷할 것 같은데요, 큰 배낭에다 돌돌 말아 싸서 자동차에 싣고 산이나 바다, 호수 같은 데 가서 자고 오는 거예요. 그것이 자기한테 주는 가을 선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왜 고생을 사서 하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말도 저는 이해를 못 했어요. 북한에서 살 때 우리는 가을이 되면 한지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빨리 집에 기어들어 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있고 싶었잖아요.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가을이면 일상에서 탈피해서 자연 안에 들어가는 걸 즐긴다는 거예요! 정말 이해를 못 하다가, 이제 10년이 되니까 남한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한 번쯤은 가을에 캠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하게 됐어요.
이해연 : 제가 8월에 캠핑 비슷하게 친구들이랑 갔었는데요, 저는 그렇게 재밌다는 걸 못 느꼈어요. 북한에 있을 때 가을이면 꼭 동원이 있잖아요? 동원을 나가게 되면 천막 속에서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고, 벌레가 들어오는 데서 힘들게 지낸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는 고된 일이라고만 생각되지 여행 같진 않거든요.
박소연 : 맞아요. 그래도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가을을 맞아 캠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근데 해연 씨도 말했지만 북한에서 가을에 '모두가 가을걷이 전투'라는 구호만 봐도 오싹했죠.
이해연 : 제가 도시에서 살았는데도 가을이 되면 농촌 사람처럼 매일 일해야 하니까. 그것도 한 곳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라, 여맹은 여맹대로, 인민반은 인민반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지원을 나가야 하는데요. 근데 남한은 학생들이 동원을 안 나가는 것 같던데요?
박소연 : 동원 자체가 없어요.
이해연 : 농촌 지원 같은 게 없어요?
박소연 : 북한의 농촌 동원은 강제 동원이잖아요. 만일 남한에서 아이들을 강제 동원 시키면 학교가 폭파될걸요? (웃음)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죠. 그리고 공부시키는 게 중요하지 학생들을 농촌에 보내서 감자를 캐게 한다든지 옥수수를 가을걷이시키는 일은 전혀 없어요.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는 아동 학대라고 하죠.
이해연 : 저도 그런 생각은 여기 와서 하게 됐어요. 만일 학생들을 노동에 강제 동원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아동 학대잖아요?
박소연 : 맞죠. 그런데 저나 해연 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게 당의 방침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라고 하면 군말 없이 한 거죠. 그런데 여기 와서 알게 된 것은 세계가 북한을 인권침해 국가라고 낙인을 찍었잖아요. 하지만 북한에 사는 주민들은 몰라요. 왜냐하면, 세상을 알 수 있는 매체를 막아 놓았기 때문에 세계에서 북한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모르는 거죠. 어린아이들을 철길 동원부터 시작해서 가을걷이 동원, 강 하천 작업에 내몰잖아요. 아이들을 강제로 노동에 동원하는 것은 분명 아동 인권이 침해라고 합니다.
이해연 : 그렇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잖아요. 뉴스라고 해도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 그것도 다 정부에서 거른 것만을 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서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살죠.
박소연 : 북한 사람들도 사실 내 일이 아닌 국가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대가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동원에 나가는 이유는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그에 대한 제재가 따라오기 때문이죠. 그런 것이 남북이 다른 거예요… 가을이란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서로 다른 남북의 상황을 보네요.
이해연 : 가을걷이할 때, 북한은 논밭에 거의 절반이 사람이잖아요. 따닥따닥 붙어서 가을걷이하는데, 남한에 와서 깜짝 놀랐던 것은 밭에 사람들이 없고 너무 조용하더라고요. 어쩌다 기계가 한 대씩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난 밭의 수확물은 누가 지키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북한은 밭이 있으면 중간에 높게 친 천막이 하나 있잖아요. 거기서 밭을 지키는 거예요. 안 지키면 그동안 힘들게 지은 농사를 남한테 다 주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안 보면 다 도둑질해 가잖아요. 근데 선배님도 처음에 왔을 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박소연 : 저는 첫해에 가을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계절이 바뀐다는 걸 인지를 못 하겠더라고요. 북한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뀔 때 하는 일들을 보면 딱 표가 나요. 가을이면 부지깽이도 뛰어다니고. (웃음) 반면 남한에 와서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변하는 것을 보고야 알게 되지, 도로에 달구지들이 줄지어 가는 것도 없지 가을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어요.
북한에는 가을철 하루 쉬면, 다음 해 한 달은 굶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도 수확한 낱알을 달구지로 실어 나르며 바쁘게 일하고 있을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0년 전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올해 가을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이삭줍기는 좀 했는지, 식량 사정은 어떤지… 궁금하고, 걱정도 됩니다. 남북의 가을 이야기,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