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우리 첫 노임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 합니다.

<우리는 10년 차이> 기쁜, 우리 첫 노임

박소연 :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죠. 그러자면 서류를 주고받아야 하구요.

이해연 : 맞아요. 고용 계약서라는 걸 쓰죠. 북한에서는 일을 시작하면 말로 하잖아요. 6개월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와서 일하라고 하면 '하루에 몇 시간 일해요?' 따지지 않아요. 그냥 아침부터 저녁까지야… 이런 식으로 하죠. 정해진 시간도 없고 서류 작성도 없고... 그런 경험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생소하더라고요. 계약서는 또 뭐야… (웃음)

박소연 : 그런데 한국은 몇 시간 아르바이트를 해도 계약서를 써야죠...

이해연 : 네, 계약서가 있으면 일하는 우리에게 좋죠. 나중에 고용주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 계약서가 법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해요. 계약서에는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며 한 달 동안 며칠을 일하는지, 휴일이나 휴식 시간, 시급 등이 정확히 기재되어 있고요. 또 일을 그만둘 때는 미리 통보를 해줘야 한다는 조항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죠. 그밖에 다른 서류들도 있어요... 사장님도 제가 북한에서 온 걸 알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배워주시더라고요. 계약서는 이렇게 쓰는 거예요, 다음에 다른 곳에 가서 일할 때도 이런 식으로 쓰라고요. 그리고 필요한 서류들이 있었어요.

박소연 : 뭐죠?

이해연 : 보건증이요.

박소연 : 아! 반찬 가게니까… 내가 건강하다는 걸 병원에서 확인해주는?

이해연 : 네, 북한 같으면 보건증이 뭐예요. 보건증, 저는 남한에 와서 난생처음 들어봤어요. 그래서 왜? 요구할까 의문을 가졌는데 병원에 가서 보건증을 만들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을 시키는 병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이었어요. 장티푸스, 결핵, 피부염 등을 검사했는데 다행히 이상이 없었어요...(한숨) 보건증이 발급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엄청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가 건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서 기뻤어요. 선배님 때도 그랬어요?

박소연 : 저는 그걸 확인할 생각을 못 했네요. 10년 전, 저는 직장에 채용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약서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하면서 그냥 사인을 했죠. 해연 씨는 어떻게 했어요?

이해연 : 저는 계약서를 쓸 때 신중하게 봅니다.

박소연 : 신중하게 본다고요?

이해연 : 네, 저는 하나하나… 서로 이야기한 내용과 계약서가 다르면 따지고 들거든요.

박소연 : 그러다 채용을 안 하면 어쩌려고요.

이해연 : 안 뽑으면 말죠. (웃음)

박소연 : 와… 저 배짱...(웃음)

이해연 : 그래도 첫 월급이 들어오니까 뿌듯하더라고요. 내가 번 돈이지만 그래도 깍듯이 사장님께 '월급 잘 들어왔어요, 잘 쓰겠습니다' 인사를 했고요. (웃음)

박소연 : 저는 10년 전에 해연 씨처럼 용기가 없었어요. 그 바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해연 씨는 20대잖아요? 저는 30대 후반에 왔으니까 나이 때문에 당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고깃집 알바를 3개월 하고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서 전화했더니, 그 담당자가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딱 이렇게 말해요. 전화를 하지 말라는 거죠. 그리고 찾았던 일자리가 커피점인데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이해연 : 커피점에서 일 하자면 혀가 잘 돌아가야 할 텐데요...(웃음)

박소연 : 맞아요. 그냥 커피면 되겠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캐러멜 마끼아또, 카페라떼... 지금은 입에 착착 붙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채용공고를 보니까 커피점 아르바이트생은 29세까지 해당이 되더라고요. 안, 38살은 커피를 못 나르나!!! 가슴이 붉은 피가 끓으면서… (웃음) 고민 끝에 북한말로 오그랑수(겉과 속이 다른 말이나 행동)를 썼죠. 화장을 이쁘게 하고 그 커피점 앞까지 가서 전화를 했어요. 담당자분이 또 이메일로 서류를 보내래요. 그래서 제가 마침 커피점 바로 앞이라고 했더니 그럼 들어보래요. 속으로 '아! 걸려들었구나' 하면서 들어갔죠. (웃음) 마침 대표님이 계셔서 면접을 봤는데 커피를 내주면서 두 마디쯤 했을까… 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주춤거리다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어요... 그 대표님이 한 10초 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잘 오셨습니다' 하시는 거예요. 순간 긴장감이 싹 풀렸어요. 몇 년 전에 탈북민 대학생이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했는데 일을 그렇게 성실하게 잘했대요. 그래서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으신 거예요. "내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는데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어요. 근데 그때 제가 어떻게 착각한 줄 아세요? 내 곱게 생겨서 그랬구나… (웃음) 그게 아니었는데!

이해연 : 북한사람들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높죠...(웃음)

박소연 : 그렇죠. 북한 사람들이 좀 그런 게 있잖아요? 한국 사람에게 '아유 곱습니다..' 이러면 아니라고 그러는데 북한 사람들은 '내 좀 그렇습니다' 그러죠. (웃음) 그때 느낀 게 모든 일이 책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구나, 가끔은 이렇게 도전적으로 부딪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죠. 이게 저의 마지막 아르바이트였답니다. 거기서 직장을 잡아서 갔는데 지금도 9년 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해요.

이해연 : 돈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야 하잖아요? 저도 지금까지 일하면서 지겨운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좋았고 남한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 서로 다른 점이 많다는 것도 많이 알게 됐죠.

박소연 : 해연 씨가 즐겁게 일하셨다고 하셨잖아요. 사실 노동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하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게 북한에서는 아무리 일해도 무보수잖아요? 내가 하루 종일 나가서 길을 닦아도 땡전 한 푼 주지 않잖아요. 아, 이게 언제 끝나니, 힘들어 못 살겠다… 항상 불만을 갖고 일했고 늘 힘들었어요. 그리고 집단주의 노동은 눈치를 보면서 요령을 피우면서 일해도 괜찮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가 일을 하려면 내 몫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이해연 : 그렇죠. 보수가 있으니까...

박소연 : 돈을 받는 만큼 책임이 따르고 나에게 맡겨진 일을 잘못하게 되면 표가 나죠. 처음 커피점에서 일할 때 낭만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면 얼음덩이 들어가는 것, 카페 라테는 달달한 것, 이렇게 적어놓고 익혔어요. 또 포스에서 처음 주문을 받을 때는 자신이 없어서 손님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주문이 밀리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울고 싶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어요.

이해연 : 저도 그 느낌 알아요!

박소연 : 그때는 정말 즐겁지가 않았는데 그 순간을 딱 넘기니까 내가 외국인들을 마주 보고도 '아이스아메리카노' 그러면 '예스!' 딱 이러면서 주문을 받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에는 정말… 너무 행복한 겁니다. (웃음)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보니까 결국 아르바이트라는 것은 인생의 다양한 면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해연 : 맞아요. 북한 같았으면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면서 용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이런 아르바이트 같은 게 없으니까요…

박소연 : 맞아요. 용돈 달라고 하면 북한 엄마들 하는 말 딱 하나죠. '니 나가 직접 벌어라'.

이해연 : 네네, (웃음) 그렇게 벌어오라고 하는데 벌 곳이 정말 없어요. 환경만 되면 저도 열심히 벌었을 것 같아요. 북한 학생들은 공부도 하지만 짬 시간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 시간에 용돈을 벌 곳이 있었으면 정말 열심히 일했을 것 같아요. 그런 세상에서 살지 못하다 보니까… 남한에서는 공부도 하고 짬을 내서 용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 일자리도 쉽게 구할 수 있어 좋고 비록 정규직은 아니지만 하루 몇 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좋습니다.

일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즐거움! 그것이 없는 사회에서 태어나 살아왔기에 이 감정이 우리에겐 더 크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이런 마음,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시겠죠?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와 해연 씨의 아르바이트 도전기는 다음 시간에도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