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박소연 : 여기는 100% 김치냉장고를 사용하죠. 해연 씨는 남한에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한 김치를 맛보았을 때 하고 북한에 있을 때 김치움에서 꺼낸 김치를 맛보았을 때 어느 쪽이 더 맛있었어요?

이해연 : 맛은 완전히 달랐죠.

박소연 : 어떻게요?

이해연 : 여기 남한에서 맛본 김치는 많이 달아요.(웃음)

박소연 : 아… 달달하죠. 그리고?

이해연 : 쩡한 맛이 없어요.

박소연 : 맞아요. 북한에는 독에 김치를 넣고 제일 마지막에 돌을 눌러 놓잖아요.

이해연 : 그렇죠!

박소연 : 저희 때는 김장철에 압록강에서 매끈한 돌을 찾는 아이들이 가득했어요. 반들반들한 돌을 찾으면 치마폭에 폭 싸서 집에 가져가 엄마에게 자랑하고 그랬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런 정서가 없는 거예요. 김장이 너무 간편해요.

이해연 : 편리함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편리한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좋은데요. (웃음)

박소연 : 이게 10년 산 저와 해연 씨 차이인 것 같아요. 저도 남한에 금방 왔을 때는 너무 편리하니까 내가 공주 같았고… 김장을 해도 우리가 북한에서는 장사해서 오늘 번 돈으로는 마늘 1kg를 사고, 내일 번 돈으로는 소금 10kg를 사고... 이렇게 구석에 모아놓으면 김장 준비를 하며 행복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해연 : 사실 오늘 북한에서 김장하던 선배님의 얘기를 너무 재미나게 들었는데요…. 그럼 여기서 김장하시면 되잖아요? (웃음)

박소연 : 안 하죠.

이해연 : 왜요?

박소연 : 사람이 솔직해야죠? 남한에 오니까 약간의 보상심리가 생긴 거예요. 내가 북한에서 수십 년을 달달 떨면서 고생하며 김장을 했는데 여기 와서까지 하겠냐… 그러면서 요 주둥이만 나불나불하는 거예요. (웃음) 또 중요한 것은 뭔지 아세요?

이해연 : 뭔데요?

박소연 : 아까도 해연 씨가 하나센터 얘기를 했잖아요. 우리 거주지에 있는 하나센터는 탈북민의 초기 정착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기관이잖아요. 거기서 해마다 보내 달라는 얘기도 안 했는데 집 앞에 김치를 척 보내줘요. 5년까지는 여기저기서 김치가 들어왔어요. 그러다가 5년이 지나니까 이제 좀 늦춰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새로 전입해오는 탈북민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느라... 제가 지금 남한에 정착한 지 10년이 됐잖아요. 지금도 하나센터에서 전화는 와요. "김치 필요하세요?" 이렇게요. 그럴 때는 "김치가 들어온 게 많아요. 다른 분 드리세요"라고 합니다. 의무는 아닌데 꼭 물어보고 주세요. 5년까지는 의무적으로 주시더라고요. 근데 해연 씨! 북한의 김장에서 마지막 끝이 있어요. 뭔지 아세요? 10년 전에는 김치를 다 담그고 배추나 무가 좀 남을 경우가 있어요. 남한은 마트에서 채소를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한 걸 파는데 북한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배추나 무 같은 경우, 배추는 뿌리가 땅에 닿을 수 있게 김치움 구석에다 세워놓고 무는 앞뒤를 자르고 거기에 시멘트 물을 풀어서 양쪽 자른 부분에 발라요.

이해연 : 진흙 물을 사용하기도 하죠.

박소연 : 맞아요. 우리는 시멘트 물… 근데 시멘트는 고강도를 써야 해요. 그걸 양쪽 끝에 발라야 무에 바람이 안 들어가서 무 속이 상하지 않거든요. 이것까지 다 끝나면 손목을 터는 거예요. 아… 그래, 이제는 모든 게 끝났다.

이해연 : 반년 식량은 이제 다 끝났다는 의미로 말이죠.

박소연 : 저는 지금도 10년 전 제가 장화를 신고 김치움에서 나오면서 허리를 두드리며 "아유 이제 새끼들(자녀들)하고 반년은 고생 안 하고 먹을 수 있겠다" 이러면서 집안에 들어와 쓰러져 잤던 생각이 나요.

이해연 : 북한에서는 김장하는 데 2-3일 걸리는 것 같아요. 절이는 것부터 해서 버무리는 것까지… 버무리는 것은 추우니까 대부분 집안에서 하죠. 절인 배추를 집안에서 버무리고, 양념도 많잖아요. 김치를 다 버무리면 동복을 입고 또 장갑을 끼고, 김치움까지 날라야 되죠. 혼자는 안 되는 게 김치를 김치움안에서 받는 사람이 또 필요하고요.

박소연 : 맞아요. 맞아요!

이해연 : 인력이 많이 들어요. 김치를 받아서 김칫독에 한 포기 한 포기씩 넣고 또 받고 이런 식으로... (한숨)

박소연 : 해연 씨는 북한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해연 : 아무래도 힘들었죠. (웃음)

박소연 : 아! 이게 차이가 나네요. 나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해연 : '라떼' 얘기 나옵니다. (웃음) 저는 힘들었는데?

박소연 : 근데… 진짜 추억의 미화가 됐을 수 있어요. 그때는 저도 힘들었을 거예요.

이해연 : 생각만 해도 힘들었죠. 제가 비록 재료까지 다 신경쓰지 않고 엄마를 도와준 것지만, 육체적으론 힘들었죠.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냐면요. 거기서는 많이 힘들었는데 여기 와서는 생활이 바뀌었잖아요? 살기 좋은 세상에 왔긴 했는데 그때 생각을 하며 얘기할 때 진짜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어요. 힘든 순간이었지만 그때 참 우리는 그랬었구나… 그리고 그런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 와서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도 그 말에 공감을 해요. 그때는 제가 가장이어서 분명히 힘들었고, 해연 씨는 엄마 아빠가 시켜서 할 수 없이 해야 해서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분명히 우리 둘은 비록 10년 차이지만 각자 다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그런 것들이 남한에 와서 살아가면서 정말 쉽지 않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쉬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또 다른 면에서 힘들어요. 그때마다 우리가 과거에 힘들었던 것을 어떻게 보면 수첩처럼 펼쳐 보는 것 같아요. 그래, 그때도 우리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했던 고생이 사실은 값어치가 없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해연 :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그렇게 그냥 의미 없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었던 나쁜 일이었든... 아무튼 지난 시간은 그냥 흘러간 시간은 없고 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 저희가 오늘 남북한 김장을 비교도 하고, 남한 정착 1년 차인 해연 씨가 김장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10년 차인 저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 밖에도 남한은 김치를 너무 단순하게 하니까 얘깃거리가 많지 않았네요. (웃음) 오히려 북한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10년 전 북한의 모습과 현재의 북한 모습이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해연 : 네, 변하지 않았죠.

박소연 : 그리고 우리는 10년 전에 둘 다 분명히 고생했던 과거가 우리 삶에서 그렇게 필요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우리라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북한 주민들, 특히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그 고생의 끝이 안 보이잖아요.

이해연 :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박소연 : 우리는 끝이 났기 때문에 이렇게 여유 있게 말하고 있는 거죠.

이해연 : 맞아요..

박소연 : 그래서 저는 항상 이런 바람으로 방송을 끝마치는데, 북한 여성들도 김장 때도 소금이나 배추 살 비용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또 드네요.

이해연 : 저도 그런 것들이 많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서는 특히 여성들이 너무나 큰 짐을 지고 있잖아요. 아이도 낳고 키워야 되고, 먹는 거부터 집안 살림을 다 돌봐야 하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가 빨리 풀리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청취자 여러분, 반년 식량인 김장 다 끝내시고 따뜻한 아랫목에 다리를 쭉 펴시고 휴식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 해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