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저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정착 10년 차 박소연이고요,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 씨와 함께합니다.
INS : <우리는 10년 차이> 세밑, 고향생각
박소연 : 현재북한 연말 분위기는 어때요?
이해연 : 제가 있을 때 북한에는 누구나 조직이 있잖아요. 인민반이면 인민반, 학교면 학교, 일을 안 해도 조직은 다 있잖아요. 엄마들은 여맹에 소속돼있고요, 그런 조직들이 모여서 송년회를 해요. 여기도 하죠? 북한은 송년회를 무조건해야 하고 빠지면 안 돼요. 남한은 송년회를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챙겨주는 돈으로 회식을 하잖아요.
박소연 : 대부분 그렇죠.
이해연 : 북한의 송년회는 돈을 모아요. 인원이 20명이면 한 명씩 해서 얼마씩 나눠 내요. 그래서 그 돈을 합해서 송년회 비용으로 쓰는 거죠.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련하죠. 남한에서는 송년회 하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술을 마시고 하는데 북한은 직접 음식을 만들잖아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저는 고향에 있을 때가 더 재미있던 것 같아요.
박소연 : 북한은 지금도 송년회 비용을 본인이 다 부담을 한다고 했잖아요.
이해연 : 그렇죠. 본인이 각자 부담하죠.
박소연 : 그 문화는 20~30년 전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10년 전 저희 때도 여맹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그때는 갑자기 환자가 되죠. '위원장 동지, 내 아랫배가 아파서 송년회에 못 가겠습니다'. 열이 난다고도 하죠. (웃음)
이해연 : 그때마다 너도, 나도 아프죠. (웃음)
박소연 : 그렇게 핑계를 대서라도 조직적인 송년회에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연말이면 같은 동네 통하는 가족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6호 집, 5호 집해서 동네에서 마음이 맞는 가족들이 모여서 그때는 전화가 없으니까 직접 가서 문을 두드리고 함께 돈을 모으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술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우리 집 남편이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옆집 광호 아버지가 술을 마셔요. 손해 볼 순 없죠. 그래서 '술값은 자립이다' 규정을 만들어요. (웃음) 술값이 비싸니까. 그리고 전기가 안 들어오니까 10년 전에는 초를 켰어요.
이해연 : 밧떼리(배터리)도 있잖아요.
박소연 : 거기에다 윷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주패(카드)도 치고...
이해연 : 여기서는 카드놀이라고 하죠.
박소연 : 10년 전에 우리는 그렇게 놀았는데, 그래서 연말이 더 기다려졌어요.
이해연 : 북한은 지금도 같아요. 카드놀이하고 윷놀이 문화는 지금도 이어지는 것 같아요.
박소연 : 해연 씨는 남한에 와서 이제 햇수로 2년 됐잖아요. 남한에서 보내는 연말 분위기와 북한에 살 때 연말 분위기를 비교한다면 어때요?
이해연 : 분위기가 서로 달라요. 일단은 말은 송년회이지만 그래도 정이 넘치는 송년회는 북한에 있을 때인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는 탈북민들끼리 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연말에는 식당에 가지 않고 꼭 누구 집으로 가요. 집에 가서 송편이랑 빚는데 분위기가 반은 북한이에요.
이해연 : 말도 편안하게 하고
박소연 : 같은 탈북민끼리 앉게 되면 일단 남조선(남한)말을 안 해요. 고향 말이 나오죠.
이해연 : 그렇죠. 사투리가 막 나가죠. 톤이 올라가고
박소연 : "야 콩 삶았냐, 사탕 가루 적당히 여라"…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너무 편해요. 말하면서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북한말을 하면 누가 '저 사람은 왜 북한말을 해'라고 표현을 하지 않아도 괜히 우리 자체가 남한말보다 악센트가 약간 다르니까 주저주저하게 되잖아요. 탈북민들끼리 연말에 모이면 안 그러잖아요.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이해연 : 지금도 저희 기수 사람 중에 나이가 있는 분들은 모여서 집에서 농마국수 만들어 먹는다든지 떡을 빚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도 하고 있고 나이 차도 있고 하다 보니까 그분들처럼 안 되더라고요.
박소연 : 맞아요. 저도 정착을 해서 1년 2년 3년까지는 탈북민 집에 안 갔어요. '남조선 왔으면 남조선 사람처럼 연말을 보내야지 촌스럽게스리'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3년 4년이 지나니까...
이해연 : 그런 게 그립죠.
박소연 : 그러니까 역시 자기 굴을 따라 가더라고요. 이곳에서 남한 문화를 따라 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고향 정서가 그리운 거예요.
이해연 : 저는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그런 모임에 별로 안 갔어요. 고향 사람들끼리만 만나게 되면 그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내가 빨리 잘 적응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자리를 안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어차피 우리가 남한 사회에 왔기 때문에 남한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 과정이 배움의 과정이더라고요. 같이 얘기를 하면서도 외래어가 섞인 말도 많고, 문화적으로 다른 게 있잖아요. 그런데 탈북민들끼리 만나면 잘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하면서.
이해연 : 서로가 모르니까
박소연 :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니… (웃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남한 분들한테는 '그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으면 대주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학교입니다.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학교요.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남한 분들하고 만나는 게 도움이 되요. 그러나 고향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거하고 젊은 친구들은 또 달라요. 같은 북한 출신이지만.
이해연 : 서로 배워야 될 분야의 정보를 공유하고 취업을 한다면 취업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들은 친구 망이 따로 있어요. 주로 안부도 묻지만 그런 정보를 공유하죠.
박소연 : 이게 세대차이고 나이 차이인 것 같아요. 우리는 왔을 때 벌써 40대로 모였잖아요. 앉으면 그냥 북한얘기예요. 그런데 20대나 10대에 오신 분들을 보면 같은 탈북자들인데도 대화 내용이나 주제가 다르더라고요.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박소연 : 그리고 해연 씨, 제가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어요.
이해연 : 어떤 거죠?
박소연 : 한 해를 보내면서 이게 참 아쉬웠다 하는 점은? 그리고 올 한 해 이런 것은 잘했다고 생각한 게 있다면?
이해연 : 솔직히 모든 사람이 한 해를 보내고 나서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쉬움도 있고 만족감도 있고 내년에는 또 취업이 남아 있으니까 취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야죠. 뭔가 해야 하는 것이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아쉬움은 없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연말이니까 저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방송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 알게 됐잖아요. 학원 다니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그 가운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만들어서 저금하고… 내가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올 한 해 우리 해연 씨가 참 많은 일을 했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본인이 떳떳해지고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이해연 : 바쁘게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내가 뭔가를 하고 있지 않다면 슬플 것 같아요. 선배님과 같이 몇 달을 지내면서 여기 와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마음을 터놓고 가는 시간들을 보냈고요, 꼭 내년에도 좋은 날들을 보내기를 기대합니다.
박소연 : 그렇죠. 해연 씨 말을 들으니까 며칠 안 있으면 설날이잖아요. 내년에는 우리 방송을 통해서 우리 해연 씨가 또 얼마나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경험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실까 하는 기대감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또 어떤 생각이 드냐면요.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북한동포 여러분들은 연말에 모여서 분명히 이런 얘기들을 하실 겁니다. 아, 올해도 살아남았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마음 한구석은 시리고 아픈 감정이 드는 연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말을 드리고 싶어요. 청취자 여러분! 올 한해 너무 고생하셨고 충분히 잘 살아오셨으니까 내년에도 힘내서 살아봅시다. 여기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해연 :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잘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박소연 :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고요. 함께 해주신 해연 씨 감사합니다.
이해연 :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나누는 남한 정착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박소연, 에디터:이현주, 웹팀: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