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참 행복을 만들어가는 네덜란드의 탈북민 영어선생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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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탈북민 최요셉 씨가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어떻게 그의 꿈을 이뤄갔는지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네덜란드를 인생의 정착지로 정한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한국 외국어대학을 다니고 인천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혼자 그렇게 열심히 사는 최요셉 씨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 멀리 남유럽의 네덜란드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온 서양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성과 사귀면서 방학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네덜란드를 가보게 된 요셉씨는 그가 바로 자신의 운명의 짝임을 느꼈습니다. 그 여성이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에도 전화로 그리고 전자메일을 통해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최요셉] 그렇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제가 2013년도에 직접 네덜란드로 가서 그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다행히도 그 여자가 받아줬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면 자연히 같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국의 생활을 정리를 하고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서로 다른 국적과 인종 그리고 배경을 가졌지만 둘의 사랑은 남한의 여느 보통 연인들이 나누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요셉] 자기가 어느 정도 북한에 대해 호기심도 많고 관심도 있는 상태여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가 이북에서 온 것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공통점 이런 것이 겹치다 보니까, 그게 바로 와이프 같은 경우는 기독교인인데요. 저도 한국에서 나름대로 교회를 다니면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에서 살게 된 그에게 처음 네덜란드는 신기하고 아름답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북한에서 네덜란드는 화란이라고 부르는 데요. 국토의 40%가 해수면보다 낮고 조선업이 발달된 나라라는 것을 북한주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조 말기에 이준 열사가 피를 뿌리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던 곳도 바로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화란의 수도 헤이그 입니다.

화란은 그렇게 100여년전에도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만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요셉씨는 새로운 땅에서 또다시 새 언어, 네덜란드 말을 배워야 했고 직업은 어떻게 정해야 할지 막막한 것은 한국에서 초기 정착할 때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맨몸으로 북한을 떠나 지금까지 살아온 요셉 씨에게 두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한국 외국어 대학에서 받은 영어교사 자격증이 있던 그는 네덜란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 원어민, 혹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교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번에는 네덜란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된 요셉 씨는 계속해서 네덜란드 국가에서 요구하는 네덜란드 언어 자격시험에도 통과되게 됩니다. 2017년부터는 한 직업전문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하게 되었는데요. 지금까지 그렇게 한 직장에서 꾸준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북한에서 와서 영어를 가르치는 이 동양인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최요셉] 학생들이 처음에 저를 만나면 중국인인줄 압니다. 그래서 내가 중국인이 아니고 북한에서 태어났고 자랐고 21살때 탈북해서 한국에 와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 이렇게 교사를 하고 있다 하고 그랬습니다. 네덜란드 학생들에게는 참 새로운 경험이죠.

이제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요셉씨는 천방지축 아이들을 돌보느라 직장생활을 하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미래를 향한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올해에는 영어학 대학원 과정에 지원하는 것이 계획인데요. 그래서 더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싶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최고의 학력은 그가 살아온 삶 자체였습니다.

이제 요셉 씨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록 생사를 넘어본 경험이 없는 그들이 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죽음의 기아를 이겨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마침내 원하는 것을 이뤄낸 그의 이야기는 네덜란드의 그 어떤 유명한 박사교수의 강의보다 천만금 더 비싼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