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지금] 캐나다에서의 기적

0:00 / 0:00

(현장음)

최철호 : 내가 그렇게 닥치고 보니까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탈북민 최철호씨가 오십평생 가장 절망스러웠던 시기는 중국과 동남아 제3국에서 떠돌며 살 때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곳 캐나다에서였습니다.

지난 2019년, 최씨는 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때 최씨는 캐나다 이민 신청이 기각돼 추방 위기에까지 놓이게 되었습니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최철호씨는 그전에는 감기한번 앓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노동일로 몸이 단단히 다져졌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평안도와 황해도를 넘나들며 장사를 해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도와줄 정도로 선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탈북해서도 중국에 있는 친척들 덕분에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의 그림자는 그가 살아왔던 인생의 모든 것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장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최철호 :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한국으로 나왔으니까 가족들한테 돌이킬래야 돌이킬수도 없고, 인제 나의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어요. 딱 그런 죽음의 문턱에 들어가니깐, 모든 게 다 미안하고 사람한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최씨는 같은 상황이라도 북한에서 암에 걸렸다면 인생의 막바지라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을 거라고 말합니다.

최철호 : 북한에서라면 내가 자식이 있고 가정이 있는데 내가 죽기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데 거기에 집중을 하게 되지요. 목표가 있잖아요. 가족이 옆에 있는 것하고 달라요.

혼자 탈북해서 중국과 남한을 거쳐 이곳 캐나다까지 힘든 여정이었는데 언제나 그에게 가족은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족을 북한에서 데려오려고 했지만 오히려 북한에서 성분이 좋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탈북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만 달아주는 처지가 됐습니다.

최씨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남은 재산을 친구들에게 남겼습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요. 고칠수 없다고 생각했던 암이 서서히 치유가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캐나다는 세계 최고의 암 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특히 최씨가 살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암환자의 생존율이 높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최씨는 방사선 치료 3년만에 건강이 거의 정상인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지도 못했던 기쁜 소식을 받았는데요. 그동안 진행되던 인도주의 이민이 승인이 돼 최씨는 캐나다 영주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암진단을 받았던 초기 최씨는 캐나다에서 나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추방 명령까지 받고 실의에 빠졌었는데 모든 일이 한꺼번에 해결된 겁니다.

최씨의 경우 캐나다 난민 이민법에 명시된 인도주의 이민 요인 중, Medical hardship 즉 의료적인 어려움과 북한 외 그 어느 곳도 가족의 연계가 없는 것이 고려됐다고 합니다.

최씨가 캐나다에서 산 기간은 10년이 넘는데요. 그중에서 최근 3년은 그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큰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환생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가족이 없다고 비관하던 그에게 이제 물리적 생명을 주고 사회적 생명을 준 캐나다라는 큰 가족이 생겼습니다. 그 큰 가족을 위해 최씨가 보답할 길을 생각한 것은 바로 장기기증이었습니다.

병치료를 하면서 아픈 환자를 많이 접하게 됐고 자신의 생이 끝나는 날 자신의 몸을 통해 다른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진행 장소연, 에디터 이진서, 웹 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