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넘어 캐나다 토론토까지 PART 1 - 남편의 공개처형, 그리고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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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전합니다.

탈북민 연화 씨는 현재 토론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북한이 고향인 연화 씨가 압록강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까지 오게 된 기구한 사연을 전합니다.

탈북민 연화씨가 북한을 떠난 것은 1997년 한 여성으로서 인생의 가장 꽃피는 나이인 25살때였습니다. 결혼한지 일년밖에 안 되었고 연화 씨에겐 한창 젖먹이인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북한 전역에서 아사와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무리로 죽어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연화씨가 북한을 떠나게 된 것은 그것이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연화씨는 지금도 왜 남편이 숱한 사람들 앞에서 총살되어야만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릅니다. 다만 아는 것은 남편이 남조선 노래를 항상 많이 가지고 있었고 친구들과 놀면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늘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주변친구들이 속속 잡혀갈 때에도 자신은 보위부에 잡혀갈 일이 없다며 태연하게 집에 있었습니다.

[연화] 그 사람이 28살이었어요. 정치범으로 딱 옭아매고 내놓지 않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연화씨가 그 못지 않게 상처받았던 것은 남편이 한 순간에 정치범으로 몰리자 순식간에 변한 주변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그녀의 시아버지는 동네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그녀를 꾸짖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다정하던 이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를 벌레 보듯이 쳐다봤습니다.

아직 세상풍파를 겪어보지 못한 그녀가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이것이 북한사회이고 사람들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화씨는 남편이 있는 감옥에 매일같이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연화] 내가 도저히 살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죽으려고 쥐약을 두 번이나 먹었어요. 쥐약을 얻어가지고 남의 집 화장실에 들어가서 먹었는데 안 죽더라구요. 쥐약이 먹기도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북한 쥐약은 써거덕 써거덕 하면서 냄새도... 지금도 생생해요. 안 죽더라구 조금 아프다가 깨어나서 드는 생각이 무슨 생각 들었지 알아요? 야, 내가 지금 죽으면 지나가던 개가 죽는 거나 똑 같겠구나. 그러니까 다 두고 그냥 떠나고 싶고 거기를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대낮에 압록강을 뛰어 넘었잖아요.

혼자서 압록강을 넘은 그는 눈길을 헤치며 장장 3일을 걸었습니다. 공안을 피해서 길도 없는 눈 덮인 강가를 헤치며 걷다 보니 온몸에는 얼음덩어리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지 않고 살려고 압록강을 넘었지만 탈북한 많은 북한여성들과 같이 그녀도 중국 동북에서 인신매매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연화] 어느 날 나한테 연락이 온 거에요. 북한에서 온 남자가 있는데 같은 고향사람인데 만나보지 않겠는가 하고요. 나도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막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만나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냉면집에서 만나게 하고 갔는데 냉면집에 북한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 다섯 명에 어떤 할머니가 와 앉아있는 거예요. 그때 내가 25살때인데 그 남자가 40대 중반으로 보이더라고요. 딱 보던 순간에 아, 뭔가 잘못되었구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지만 남자 다섯 명이 에워싸고 값을 흥정하는 상황에도 연화 씨는 무서워서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없이 팔려갔구나 하고 맥을 놓은 순간 매매를 끝내고 흡족한 할머니는 그녀와 함께 기차에 올랐습니다. 다섯 명의 깡패들은 그제야 그녀에게서 떨어졌는데 기차가 막 역을 떠나는 순간 연화 씨는 번쩍 정신이 들어 서서히 달리는 기차에서 주저 없이 몸을 날렸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벗어난 연화씨의 중국생활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