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까지(2)-“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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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전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혜산시에서 살던 탈북민 연화씨가 남조선 영상물과 노래를 들었다는 죄목으로 남편이 처형된 후 압록강을 넘어 탈북 했지만 인신매매단에 걸려들어 간신히 탈출한 이야기 전해 드렸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그녀가 어떻게 중국 땅에서 혼자서 살아남고 어떻게 마침내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었는지 전해드립니다.

연길 역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간신히 인신매매 깡패들로부터 도망친 그녀는 아는 사람의 친척의 도움을 받아 연변지역보다 덜 위험한 산동성 청도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연화 씨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연화 씨가 청도에 도착해서 일하게 된 곳은 노래방이었는데요. 그곳이 단순히 노래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디 갈 곳이 없어 할 수 없이 노래방에 며칠 있는 사이 그 곳의 노래방 경리가 연화 씨를 불러들여 방문을 잠그고 폭행을 합니다. 다행히 연화 씨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노래방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래방을 빠져나 온 연화 씨가 그 다음 일하게 된 곳은 식당이었는데 3개월을 꼬박 열심히 일했지만 식당주인은 연화 씨가 북한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단 한 푼도 일한 값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연화 씨는 자신을 북한사람으로 바로 알아보는 조선족들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족들을 만나 중국말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연화 씨는 미용실에서 머리 감겨주는 일부터 시작해 차츰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미용실에 오는 한국손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중국어 통역까지 도와주게 됩니다. 그런 인연으로 한국 무역회사에서 정식으로 일하게 되면서 연화 탈북한 이후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고 연화 씨는 북한사람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 당하게 됩니다.

[연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북한여자가 어떻게 통역까지 하는 가고 이상하다고 오해를 해가지고 경찰에 신고를 해가지고 …

경찰이 연화 씨를 잡으려고 찾는 상황에서 더는 청도에 있을 수 없게 돼 대련으로 피하면서 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가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제 중국에는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연화 씨는 결국 한국행을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탈북자는 한국에 가면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한국 국민이 된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다른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 가서 돈을 벌리라 하는 것이 연화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대련에서 한국으로 가는 밀선을 타게 된 연화 씨는 80여명의 다른 중국인들과 함께 공해에서 배를 3번이나 다시 갈아타면서 출발한지 16일만에 도착한 것이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의 어느 해안가였습니다.

하지만 연화 씨를 포함한 80여명의 중국인들은 한국 땅을 밟자마자 해안경비대에 붙잡히게 됩니다. 이들이 밀선으로 입항한다는 사실을 이미 한국의 해안경찰이 알고 있었던 겁니다.

모두 붙잡혀서 다시 중국으로 추방되게 된 상황에서 연화 씨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화] 난 여기서 자수하고 남산지하실에 가서 고문 받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나는 간첩이 아니니까…

연화 씨가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를 보러 가장 먼저 온 것은 국정원의 높은 간부가 아니라 KBS 텔레비전 방송 기자였습니다.

[연화] 내가 거기에서 뭐라고 했냐 하면 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왔습니다. 그랬어요.

연화씨는 이렇게 2000년 겨울, 인생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경험하며 한국에 정착하지만 10년후에는 다시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온 연화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