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상징 그래피티와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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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곳 토론토는 신록이 우거지고 선선한 기운이 도는 캐나다 최고의 여름 날씨를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도시 중심 거리의 골목길을 걷노라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건물의 낮은 벽에 혹은 한창 건설중인 공터의 울타리에나 대형버스 옆면 혹은 십층도 넘는 고층건물 벽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제멋대로 그려졌나 싶은 글자들과 동물, 도형들이 선명한 색깔로 칠해져 있는 그림들입니다.

처음에 토론토에 왔을 때 본 이런 벽화들은 빈민가나 어두운 골목길에서나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 그림들이 있는 곳이 도시의 명소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문명화된 도시에는 낙서나 멋대로 그려진 벽그림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는 나의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 사실인데요. 혹시 여러분들께서도 서구 영화에 나오는 이런 그림을 보면서 저처럼 생각하진 않으셨는지요?

이런 그림들이나 낙서를 이곳에서는 그래피티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낙서가 이곳에서는 거리 예술로 회색빛의 거리를 여러 가지 색깔로 한층 싱그럽게 만들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허가 받지 않은 곳에 제멋대로 그림을 그린다면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도시의 특별함을 알려준다던가 문화적으로 또는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그래피티는 시에서 자금을 지원해서 그리게도 합니다.

그래피티는 자연환경, 토끼나 새나 동물들, 동화그림 알 수 없는 문자들, 이름 모를 사람의 초상화 등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그래피티를 자유분방함의 거리예술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곳 서구사회에도 처음부터 이렇게 그래피티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 인정을 받지 못한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어두운 뒷골목에서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한 낙서나 그림들이 그 시초가 되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바다가 백사장에 가면 본능적으로 나뭇가지를 들고 동그라미나 사각형, 떠오르는 사람얼굴 등을 그리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내면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그것을 낙서라는 한 형태로 표출하게 됩니다.

처음에 젊은 이들은 거리의 벽, 경기장, 학교담벼락, 지하철, 전동차 등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한때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은 때로 유명한 화가나 작곡가들이 몇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보다도 더 호소력이 있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는 것을 작가들이 점차 알게 되면서 그래피티를 인정받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즉흥적이고 충동적 그리고 장난스럽고 상상력이 넘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키는 대로, 사회가 정해놓은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피트 작가들은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인권 이런 주제들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큰 벽화로 그려 넣음으로써 사람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적 문제를 일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북한에서 이런 그래피티는 아직도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겠지만 분명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표현의 분출이 있습니다.

고등중학교 때 책상을 까맣게 덮었던 낙서들, 교과서 곳곳에 그려져 있던 연필 그림들, 화장실 벽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름이 일자로 죽 쓰여져 있기도 하고 정제되지 않는 욕설, 누군가의 시 등이 북한의 일반주민들이 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피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북한에는 정말 화려한 벽화들이 많습니다. 북한 전국 곳곳에 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현지 교시판과 벽화들,선전화들, 평양지하철의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들의 주인공은 무조건 김부자 가계 칭송뿐 입니다.

천하절경 금강산에도 인민들의 마음을 표현한 글은 하나도 없고 전부 김일성의 교시, 김일성 그림이 벽뿐 아니라 바위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김부자 정권에게 북한 주민들은 그래피티 도구이고 북한 전체는 그래피티 그림판인 것 입니다.

언제면 북한주민들이 주인이 되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맘껏 펼칠 그날이 올지, 오늘 이곳 그래피티 명소를 돌아보며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