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그 활동소식을 전하는 캐나다는 지금, 캐나다 토론토에서 장소연 기자가 전합니다.
지난시간에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인 원영화씨가 북한에서 최고의 새박사로 알려진 그의 할아버지가 38선 근처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을 택해 날려보낸 편지가 광주에 떨어졌고 그것이 바로 아들인 원병오씨의 제자들이 발견하고 원병오씨와 손녀인 원영화씨가 받아보게 된 사연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시간에도 계속해서 전해드립니다.
원홍구박사는 편지에서 “새들은 남북으로 막힘이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우리에겐 38선이 가로막혀있구나, 살아생전 우리가 다시 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하며 말미에 적었습니다.

사실 새들이 이렇게 막힌 분단선을 넘어 이들 부자의 소식을 전해준것은 단지 자연의 우연이라고 할수 없었습니다.
남한에 살고 있는 아들 원병오씨는 한국전쟁기간에 미국학자가 쓴 “한국의 조류”라는 책을 읽고 한국의 조류학계에 이바지한 아버지의 업적을 깊이 알게 되었으며 새를 연구하는 것이 아버지를 만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결정적으로 조류학계에 발을 딛게 됩니다.
1963년부터 철새들의 이동을 연구하던 원병오씨는 북한의 함경도나 평안도에 산다고 알고있었던 쇠찌르러기를 서울의 홍릉 임업시험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쇠찌르러기가 분명히 다시 북으로 날아갈것이라고 확신한 원병오씨는 서울에서 갓 태어난 어린 쇠찌르러기에 인식표가락지를 달아 날려보냈는데 바로 2년후 그의 아버지인 원홍구박사가 평양에서 이 새를 발견하게 된것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부자의 절박한 소원과 애끓는 노력이 마침내 필연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새를 통해 생사를 확인하게 된 이들 부자의 소식은 북한의 노동신문에 소개되었으며 당시 소련기관지 프라우다를 통해 미국과 일본의 신문에도 크게 실리게 됩니다. 북한의 중견작가 임종상씨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북방의 쇠찌르러기”라는 소설을 썻으며 이는 남한에서도 출판되었고 또한 북한과 일본은 합작해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새”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에서 열리는 조류학회에 초대받은 아버지와 아들이 결국 남한정부의 방해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이야기로 끝맺으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이 정치적 목적으로 선전되는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북한일반 주민들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았고 대신 북한은 “보금자리”라는 영화를 제작해 전 세계에 한반도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에 있는 클락새를 찾아내는 원홍구박사의 삶만 그려 주민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특별히 클락새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데요. 남한에서는 “크낙새”라고 알려져 있는 멸종위기의 클락새를 원홍구박사가 찾아내고 보호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클락새 담배, 클락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등 클락새 이름을 상표로 쓰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한때 북한의 가정에서 쉽게 볼수 있었던 알람 시계에도 클락새가 새겨져 있어 클락새 자명종라고 유명합니다.
그렇게 새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상봉은 끝내 이뤄지지 못하고 아버지는1970년 끝내 만나지 못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습니다. 원병오씨의 북한방문은 아버지가 돌아간지 32년이 지난 2002에야 이뤄졌습니다.
또한 평양에 살고 있는 원영화씨의 친오빠 원창인씨는 캐나다에 어머니와 동생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40년 후에야 접하고 그가 “카나다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며”라며 쓴 글이 일본의 한 잡지에 사진과 함께 실리게 됩니다. 직접 편지를 보내지 못하나 행여나 태평양너머 어머니가 글을 읽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습니다. 다행이 이 글은 동생인 원영화씨가 받아보았고 캐나다 시민권자인 원영화씨의 어머니는 1991년과 1992년 평양을 방문해 43년만에 헤어졌던 자식들과 상봉하게 됩니다.
원영화씨의 이산가족들의 이야기, 할아머지, 어머니, 삼촌 등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산 그들의 삶을 이어 원영화씨가 이제 할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원영화 : 이제 내가 이북으로 가면 새가 되어 날아갈거다, 하는 글을 써가지고 내가 영화 작품을 만드는데, 내가 만든 작품이 남한에서 북한에서 동시에 상영이 된다면 정말 영화로 태어나서 영화같은 삶을 살다가… 영화를 만들어서 남북에서 동시에 상영이 된다면, 캐나다에서 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지….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