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모두에게 잊혀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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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을이 훌쩍 들어서 간간히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지난 주에는 제가 사는 이곳 토론토 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토론토 대학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가끔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이 대학 도서관에는 특별히 북한 책들이 꽂혀 있는 동아시아 도서관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서적 중에서 제가 뽑은 것은 이태준의 소설입니다. 전 세계에서 26위안에 드는 토론토 대학의 동아시아연구소의 대학원생들이 특별히 이 소설책을 교재로 한국어 문학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토론토 대학에서 동아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크레이그 어크아스 씨는 남북간의 이념으로 묻혀져 가야 했던 이태준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운명으로 우리는 오늘의 우리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Craig: 역사는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식민지 문학을 배우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태준은 일제시기와 해방 후 남북한 모두를 거쳐간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조선의 모파상으로도 불렸던 작가였습니다.

경기도 철원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일제강점 시기 일찍이 부모를 여의면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회령, 청진, 만주 등으로 떠돌다가 고학으로 서울 휘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게 됩니다. 그 후 일본 휴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는데 1927년부터 시작해 소설, 시, 수필, 평론 등 문학의 전 장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총 3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당대 많은 유명 작가들이 카프, 즉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이태준은 이념에 구애되지 않는 순수예술을 추구했습니다.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그리는 서정성 높은 문장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문장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작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은 그가 지은 "문장강화"라는 단행본은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불릴 만큼 문장작법의 고전이 됐습니다.

1930년대에는 어느 신문이든 그의 연재소설이 실리지 않은 때가 없을 정도로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누립니다. 그러던 그가 해방 후 1946년 돌연 월북하게 되는데요. 1947년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내면서 소련과 중국을 다녀와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을 작품에 담고 김일성을 찬양하는 글을 연속 써내던 그는 1957년 박헌영과 함께 종파투쟁에 걸려 숙청됐습니다. 황해남도일보사의 인쇄공, 탄광 노동자, 고철수집 등으로 전전하다가 끝내 사망 일시도 기록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남한에서는 월북작가라는 이유로 지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이 금서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문단에서 잊혀졌습니다.

이태준의 작품을 이곳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자넷 풀 교수가 지난 2009년에 영문으로 번역해 출간했고 지금 토론토 대학 동아시아연구소 대학원생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습니다.

자넷 교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폭력이 한국에서 일제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대에 이뤄졌다면서 제국주의와 파시즘, 신여성, 대규모 도시이동, 산업화 등에서 근대문학과 예술이 탄생하면서 그 시대작가들이 어떻게 세계를 대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현 세대의 국가와 인종을 떠나서 보편적인 과제라며 이태준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자넷 교수는 이태준의 글은 "오늘날 독자들에게 해방의 꿈을 향한 추진력의 감각을 제공한다"며 1940년대 후반에 이태준처럼 많은 한반도의 쟁쟁한 문인들이 사회주의를 이상향으로 보고 북을 선택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장소연입니다.

진행 장소연,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