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남북의 서로 다른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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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3∙1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남한에서 3∙1절은 1919년 3월 1일에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족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죠. 북한에서는 3∙1 인민 봉기라고 부르는데요. 3∙1절 혹은 3∙1 인민 봉기를 기념하는 방식도 남북한이 참 다른 것 같아요.

북한서 3∙1절, 김씨 일가 우상화 도구로 쓰여

기자: 3∙1절은 남한에서는 국경일이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3월 1일이 토요일이었죠?

이순희: 네, 그래서 그다음 주 월요일인 3월 3일이 대체공휴일이에요. 기념일로 정하는 이유는 시민들에게 이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교육하기 위함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3∙1절 당일도 공휴일은커녕 기념일로도 정하지 않아서 3∙1절이었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도 공휴일은 아니더라도 이날을 기념해서 각종 행사가 진행되긴 해요.

기자: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나요?

이순희: 제가 살던 곳 주변 공장과 기업에서는 강연회를 진행했어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민들의 투쟁 정신을 본받아서 그들처럼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연설했는데요. 특히 이날에는 반일 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연설이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반일 감정이 최고에 달하는 것 같아요.

김일성의 혁명 활동을 보여주는 책에도 3∙1운동 얘기가 나오는데요.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평양에서 3∙1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다고 가르쳤어요. (김형직이) 민족 대표 48인에 속하기도 했다고 배운 기억이 있네요. 심지어 연대별 도록 판에 1919년도 김일성 주석이 8살일 때 어른들에 앞장서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묘사한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어요. 3∙1운동을 김일성 주석을 우상화하는 데 도구로 쓴 거죠. 심지어 아버지 김형직은 기독교인에 반공산주의파였는데, 그런 내용은 북한에서 전혀 공개하지 않아요.

김일성 부친이 3∙1운동의 주역?

기자: 남한에 와서 3∙1운동과 관련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또 있나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3∙1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유관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잘 몰랐어요. 남한에서는 초중고 교육과정에 필수로 등장하는 인물이 유관순 열사더라고요. 유관순 열사는 17, 18살의 어린 여성의 몸으로 자기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을 모집하고 단결하여 투쟁에 앞장섰고, 결국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되어 순국하셨죠.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까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대문형무소에서 돌아가셨을 생각하니 한민족으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가슴이 아프고 뭉클합니다.

또 3∙1운동의 시작이 3월 1일이지만 몇 달을 두고 진행됐잖아요. 윤형숙 열사도 3∙1운동이 일어난 지 일주일 만에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일제 기마헌병에게 태극기를 들고 있는 왼팔이 잘리고 오른쪽 눈은 실명까지 됐다고 배웠어요. 그나마 유관순 열사는 북한에서도 들어보긴 했지만, 다른 열사들에 대해서는 일반 주민들이 알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기자: 이같이 3∙1절과 3∙1운동에 대해 남북한이 다르게 가르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순희: 북한의 역사 왜곡은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역사는 자료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조금씩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북한처럼 한 사람을 신격화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이름을 전혀 외우지 않고 모른다는 건 단단히 잘못됐죠.

기자: 남북한이 3∙1절을 기념할 때 비슷한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순희: 이날만큼은 반일 감정이 드는 건 남북한이 똑같은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에 고문과 착취를 당하셨을 선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죠. 3∙1절이 되면 남북한 곳곳에서 일제의 야수적인 만행을 폭로하는 성토장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3∙1운동은 일제의 침략에 의해 강요된 식민지 통치에 모든 국민들이 분노하고 반대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나선 역사적 봉기잖아요. 현재 남한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거나 국가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평화시위가 벌어지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주민들도 왜곡되지 않은 제대로 된 역사 교육받아야

기자: 남한에서 3∙1절을 기념할 때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낭독이라든지 독립운동 기념탑 앞에서 기념식 등이 진행되는데요. 이순희 씨는 남한에서 3∙1절을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시죠.

이순희: 북한에는 3∙1절 기념관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3∙1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3∙1운동 기념하기 위해 독립기념관을 찾아가는데요. 이 기념관에 가면 3∙1절과 관련된 온갖 역사적 문건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건 3∙1운동 선언문이더라고요. 그 선언문을 읽어보니 우리 민족의 강한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고 세계 평화와 연결돼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어요. 특히 3∙1운동이 이후에 중국의 5∙4운동, 인도, 이집트,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각성시키고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더더욱 3∙1운동이 자랑스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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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자체적으로 3∙1절을 기념하는 곳도 많습니다. 북한 청취자분들께 3∙1절에 대해 더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순희: 3∙1운동은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소리높여 낭독하면서 시작됐지만 이 만세운동은 현재 남북한 지역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갔잖아요. 북한에서도 평양시, 의주군, 선천군 등 대규모의 반일 시위가 벌어졌어요. 이날은 남한뿐 아니라 북한, 남북한 모두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의 존속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날을 뜻깊게 기념하고 순국열사를 기리고 있죠. 다만 잘못된, 왜곡된 역사를 배워서 잘못된 방향으로 기념하는 건 안 될 일이에요. 북한에서도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목적으로 꾸며낸 역사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를 기념하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나아가 언젠가는 남북한이 함께 이날을 기념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까.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북한의 3∙1절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