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지난 6일 목요일부터 한 주간 눈이 쏟아졌어요. 이제는 날이 좀 따뜻해져서 눈이 더 안 오는가 싶더니 다시 폭설이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사는 대구에까지 눈이 와서 깜짝 놀랐거든요. 2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눈이 많이 내리니 여러 방송사에서 일기예보로 출퇴근길 조심하라고 알려주더라고요. 특히 이번에 눈이 내릴 때는 녹았다 얼기를 반복하면서 빙판길이 만들어지기 쉬우니까 되도록 출근길에 자동차로 출근하지 말고,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줬어요. 괜히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미끄러지면 사고가 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자동차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버스 타고 며칠 출근했어요.
남북한의 다른 폭설
기자: 추운 겨울에 눈이 많이 올 때면 남한 분 중에 '북한에는 얼마나 눈이 올까?'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또 반대로 북한 분 중에서도 남한에 눈이 얼마나 오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이순희 씨께서는 양쪽을 모두 경험해 보셨으니, 남북한의 겨울 폭설을 비교해 보자면 어떤가요?
이순희: 남한은 북한보다 남쪽 지역이니까 확실히 눈이 덜 와요. 심지어 제가 북한에서도 가장 북쪽인 함경북도 청진시에 살았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초겨울부터 늦겨울까지 눈이 쉴 새 없이 펑펑 내렸어요. 눈이 너무 많이 내린 날에는 허리 높이 넘게도 쌓여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울 정도였어요.
남한에서는 따뜻한 도시 대구에 살고 있는데요. 대구는 남한 중에서도 남쪽에 위치해 눈이 적게 오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겨울 내내 진눈깨비 눈 정도만 구경할 수 있었는데 웬일로 이번에는 대구에도 눈이 꽤 많이 와서 다들 깜짝 놀랐어요. 7일에는 1cm나 눈이 와서 출근길에 자동차들이 다들 느릿느릿 다니더라고요. 사실 1cm 쌓인 거는 북한에 살 때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눈이 안 오던 지역이라 그런지 다들 당황한 기색이었어요.
기자: 그나마 대구에는 눈이 덜 오긴 했지만 6일에 내린 폭설로 항공기가 결항하거나 지연될 정도였는데요. 남한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 강원도에는 9cm까지 쌓이고, 울릉도는 한파로 뱃길이 끊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순희: 북한 청취자분들은 울릉도에 눈이 많이 온다는 소식에 아마 놀랄 거예요. 울릉도는 동해를 건너온 구름이 울릉도 산간 지역에 부딪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데요. 울릉도도 지난 한 주간 재난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눈이 많이 왔어요. 심지어 대구보다 더 아래쪽 지역인 부산에도 눈이 올 정도였으니까 말 다했죠. 그런데 지금 남한에서는 초·중·고등학생들의 졸업식이 한창 이뤄질 시기이거든요. 그래서 몇몇 부산의 학교에서는 졸업식 진행 중에 눈이 와서 눈을 자주 못 본 학생들이 엄청나게 신나 했어요. 어른들은 갑자기 내린 눈에 당황했지만, 아이들은 신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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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특히 이번 겨울에는 습설이 많이 내려 더 주의가 요구됐다고요?
이순희: 네, 맞아요. 올해 눈은 습설이어서 더 무겁고,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눈을 치운다 해도 바닥에 남아있는 젖은 눈이 다시 얼기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지거든요. 차라리 북한처럼 아예 추우면 눈이 머금는 물의 양이 적어서 건조한 눈이 많이 내리는데, 남한에는 영하 0도에서 10도 사이에 눈이 내리는 경우가 많으니 물을 많이 머금은 습설이 내려서 더 주의가 요구돼요. 그래도 다행히 남한에는 겨울철 폭설 대처가 아주 잘 돼 있어서 일반인들은 사실 크게 걱정 없어요. 밤새 눈이 내리면 새벽부터 제설차가 도시와 지방 곳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치우기 때문에 새벽같이 자동차를 타고 나가도 차로에는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요. 또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인도도 국가에서 인력을 동원해 직접 치워주기 때문에 주민들이 나와서 치우지 않아도 돼서 너무 편해요. 특히 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관리사무소에서 담당해서 한꺼번에 치우기 때문에 북한에서처럼 눈이 온다고 제설 삽을 들고나올 필요가 없죠.
“눈 치우러 나오시오”…하루 종일 눈 치우던 북한 겨울
기자: 남북한의 폭설 대처법 무엇이 다른가요?
이순희: 우선, 제가 살던 청진은 백두산 쪽이었기 때문에 눈이 정말 많이 왔어요. 1m 이상씩 오기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 눈을 다 주민들이 치워야 했어요. 인민 반별로 주변에 사는 아파트나 주택 주민들에게 도로 구간별로 할당해 줘요. 눈이 온 날 새벽 5시 날이 밝기도 전에 인민반장들이 아파트 현관마다 매단 종을 막 두들기면서 "눈 치우러 나오시오"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한 세대에서 한 명씩 눈을 치울 수 있는 넉가래나 삽을 들고 도로에 나와서 할당 구간의 눈을 다 치워야 해요. 눈이 얼마 안 오면 까짓것 빗자루나 삽으로 금방 치울 수 있지만, 눈이 50cm 이상 쌓이기 시작하면 사정이 다르죠. 삽과 눈가대로 겨우 몇 센티미터씩 힘겹게 하루 종일 사투를 벌이는 거예요. 잘 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 새벽에 눈을 치우라고 하니 곤욕이 따로 없죠. 저도 저희 집에서 눈 치우러 자주 나갔는데 눈을 치우고 직장에 출근하면 일할 기운이 안 남아 있어요. 또 직장에 가서도 눈을 치워야 하거든요.
그런데 남한에 와보니 개인이 길가에 나와서 눈을 치우는 광경은 거의 보기 힘들더라고요. 국가 세금으로 국민들을 위해 출근하기도 전에 눈을 치워주고요. 직접 인부가 나와서 치우기보단 기계로 치워요. 제설기가 도로를 돌아다니고 또 눈이 많이 올 것 같은 날 하루 전에 염화칼슘을 싹 뿌려놔서 눈도 금방 녹아요. 그러니 빙판길도 잘 안 만들어지고요. 만약 눈이 쌓인다고 해도 하루 종일 제설기가 돌아다니면서 금방 치워버리니까 눈이 온다고 고립되는 일은 잘 없어요.
기자: 새하얀 눈이 오면 출퇴근길과 등하굣길이 힘들어지긴 해도 눈싸움을 하거나 눈썰매를 타는 등 겨울을 즐기는 건 남북한이 똑같을 것 같은데요. 눈을 즐기는 문화는 비교하자면 어떤가요?
이순희: 남한에서는 겨울이면 눈꽃 축제를 많이 열어요. 강원도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눈이 많이 오는데요. 제가 강원도 태백으로 눈꽃 축제를 하러 갔었는데 하필 그때 눈이 안 왔어요. 주최 측은 연마다 진행한 눈꽃 축제를 보장해야 하니까 눈이 안 왔는데도 인공눈을 대신 만들어서 얼음조각도 만들고 얼음 미끄럼틀도 만들어서 축제 분위기를 만들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따로 눈이 온다고 특별한 행사가 있진 않아요. 대신 눈이 덜 치워져서 만들어진 빙판길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썰매를 타거나 팽이를 치면서 놀죠. 눈을 보고 즐거워하는 건 남한 아이들이나 북한 아이들이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기자: 눈이 오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스포츠나 놀이도 많아서 사계절이 없는 지역에서는 눈이 오는 걸 부러워하기도 하죠.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북한 폭설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