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불결해보인 한국 고기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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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남한에서 씻지 않아도 되는 고기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시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씻지 않고 사 온 채로 요리해 먹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북한 고향 분들은 "어떻게 고기를 안 씻어 먹냐?"라면서 "남한 사람들은 위생이 불결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고기가 시장에서 팔 때부터 깨끗하므로 씻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기자: 북한에서 고기를 사 먹을 때 씻어서 드셨는데 남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건데요. 어떤 고기를 물에 씻어 먹었나요?

이순희: 전부 다요. 북한 시장에 가면 여러 가지 고기를 매장에 내놓고 팔았는데요. 주로 돼지고기를 많이 팔고 염소, 양, 개고기 등을 놓고 팔았거든요. 그런데 그 고기들은 전부 집에 와서 씻어 먹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었어요. 북한에서는 고기면 다 그렇게 씻어 먹는 줄 알았는데, 남한에 와서 아니란 걸 알았죠.

기자: 고기를 씻어 먹는 주된 이유는 어떤 거였나요?

이순희: 북한에는 냉장 시설이 없다 보니까 고기가 신선하지 않아요. 냉장고가 있다고 해도 전기 사용이 제한돼 있으니 무용지물이죠. 밤에는 전기 공급이 끊기면 그동안 고기는 어떻겠어요. 전부 상하죠. 그래서 시장에서 파는 각종 육류의 보관 방법이 녹록지 않았어요. 물론 돼지를 잡아서 한두 시간 내에 팔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그래서 무더운 여름철에는 돼지고기에 파리가 윙윙 날아다녀요. 남한에서는 요즘 그런 위생 상태에 장사하면 손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생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어요.

기자: 남북한의 고기 맛도 달랐나요?

이순희: 고기 맛이 전혀 달라요. 북한에서 아무리 고기를 씻어 먹어도 한번 상한 고기는 되돌릴 수 없잖아요. 남한 시장에서 사서 구워 먹는 고기 맛과 비교하면 맛이 완전히 다르죠. 북한에서 고기는 어쩌다 한번 맛보는 고기라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는데요. 그렇게 배를 곯다가 먹은 고기니까 남한에서 매일 먹는 고기보다 맛있어야지 않겠어요? 그런데 실상은 북한에서 씻어 먹던 돼지고기는 고기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은 없고 퍽퍽하기만 했어요. 상해도 상한 줄 모르고 시커먼 고기도 고기니까 맛있게 먹던 기억은 있어요. 그런데 남한에서 유통하는 고기는 생고기 냄새를 맡아도 돼지 냄새가 전혀 안 나고 프라이팬에 구우면 맛있고 고소한 냄새만 올라와요. 상한 고기는 아예 마트에서 팔지도 않고요.

기자: 그만큼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고기들은 어떻게 보관되나요?

이순희: 남한에는 전문 육류 도축장들이 많은데 그 설비와 차림새가 국가에서 요구하는 깨끗한 환경과 도축시설을 완비하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우선 도축장이 무균상태로 깨끗해야 하고 도축한 즉시 용기에 담아 랩을 씌워서 냉장 보관을 해요. 그러니까 외부에서 고기로 침입하는 균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신선하기는 말할 것도 없죠. 또 냉장차로 고기들을 운반해서 마트에서 파는데, 마트에서도 냉장 시설에 고기를 넣고 판매하고요. 대부분의 가정집에서도 냉장고에서 고기를 보관하니까 고기가 상할 틈이 없어요.

기자: 북한에서도 이처럼 신선한 고기를 먹은 날이 있다고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먹을 쌀도 매일 부족한데 고기는 더 먹기 힘들었는데요.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 설날이나 생일에 먹을 수 있었어요. 그나마 김일성, 김정일 생일 때 돼지고기를 한 300그램 정도 배급처럼 직장에서 나눠줬는데요. 직장에서 돼지 기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돼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서 무게를 달아 바로바로 직원들에게 나눠줬거든요. 그날 저녁 중으로 그 고기를 먹으니까, 남한에서 냉장 시설에 유통한 고기만큼 신선한, 바로 도축한 고기를 그때에야 먹을 수 있었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배급해 주는 고기도 여러 사람이 일회용 비닐장갑도 없어서 맨손으로 만지다 보니까 요리하려면 집에 와서 여러 번 깨끗하게 씻어야 했어요.

기자: 남한에서도 도축장에서 직접 고기를 판매하거나 식당을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요. 이 같은 곳도 가보셨나요?

이순희: 그럼요. 도축장에 가면 그 자리에서 잡은 고기들을 팔기 때문에 더더욱 씻을 필요가 없어요. 소나 돼지를 키우는 농가들이 있는데요. 그곳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들이 있거든요. 중간 도매 상인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신선하고 또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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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도축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죠?

이순희: 제 친구가 경상북도 의성에 있는데, 거기에 도축장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고기가 소고기 육회거든요. 그래서 소고기나 소고기 육회를 먹고 싶으면 의성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6시에 일 끝나면 바로 의성 갈 거니까 도축장 식당에 가서 예약해 놔라."라고 말해요.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의성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1시간이면 가요. 그곳에 가면 금방 잡은 신선한 고기들을 부위별로 파는데 육회 감을 달라고 말하면 돼요. 그걸 사서 직원에게 "육회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5분도 안 돼서 달콤하고 고소하게 양념을 한 육회와 채를 썬 배를 함께 제공해 줘요. 배는 달고 시원하잖아요. 그 맛은 정말 황홀하죠.

기자: 육회란 소고기의 홍두깨살이나 우둔살 부위를 굽거나 삶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회로 썰어 먹는 것을 뜻하죠.

이순희: 맞아요. 대부분의 북한 분은 먹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을 들으면 생고기를 먹는다면서 놀랄 것 같아요. 그런데 제대로 된 육회를 맛본 분들은 그 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요. 고소하고 신선한 육회 맛은 정말 황홀하죠. 저는 그 육회 맛에 푹 빠져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한 시간을 달려 그 육회를 먹으러 가요. 200~300g이면 혼자 실컷 먹는데 그게 기껏해야 12,000원밖에 안 해요. 그래서 저는 즐겨 먹으러 가요.

기자: 북한에서는 소를 도살하는 것을 금기시하다 보니 더욱 먹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이순희: 네, 맞아요. 북한에서 소고기는 정말 보기 힘들었어요. 소는 농촌에서 인력을 대신하는 용도니까 소를 도살하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어요. 저는 북한에서 소고기를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

기자: 육회를 먹으려면 고기의 신선도뿐 아니라 기생충도 없어야 해서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합니다. 남한에 먹는 육회는 기생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이순희: 꼭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도축업체, 가공업체, 식당에서 기생충 여부를 확인하니까 사실 90%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그마저도 불안해서 남한 분 중에 이처럼 생선회나 육회처럼 날로 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충약을 1년에 1~2번씩 챙겨 먹어요. 그러면 혹시라도 몸속에 침투했을 기생충을 박멸해 주거든요. 구충약 가격은 2개에 1,000원밖에 안 해요. 저는 2천 원어치를 사서 두 번에 걸쳐 나눠 먹으면 구충 생길 걱정이 안 들어요. 오히려 북한에서는 가축을 사료가 아닌 집마다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와 풀을 먹여서 기르기 때문에 기생충이 많죠. 그래서 이전에 남한으로 귀순한 병사 몸에서 기생충 50여 마리가 나왔다고 뉴스가 나온 적도 있어요. 북한에 구충약이라도 잘 보급돼서 남한 국민들처럼 기생충 걱정 없이 신선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신선한 고기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