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 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 안녕하세요.
기자 : 달력을 보니 올해는 22일이 음력설입니다. 많은 탈북자분들이 가족 생각에 마음이 안좋다는 말을 하는데 어떻습니까?
노우주 : 네, 저도 그렇습니다. 설날이나 명절이 되면 혼자 왔기에 가족이나 부모님, 자식 생각에 눈물도 흘리고 그러는데 그래서 오늘은 남한에서 보내는 음력설날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기자 : 아무래도 보통 때와는 다른 느낌이죠?
노우주 : 이번에 한달에 양력설과 음력설을 다 보네게 되는데요. 처음 한국에 와서 설날을 보낼 때 생각이 불현듯 납니다. 모두들 설 명절을 보낸다고 가족들과 함께 잔치 분위기인데 그때 제가 아파서 병원에 있었거든요. 환자들이 다 퇴원을 하는데 저는 보호자도 없고 혼자서 거동을 할 수가 없으니 병실에서 음력설을 보내야 했었어요.
정착을 돕는 아는 지인분들이 제 병실에 오셔서 따뜻한 영양죽을 손수 끓여서 입에 떠넣어 주시면서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며 손을 꼭 잡아주신 것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저는 올해로 16번째의 음력설을 맞이하게 되니 정말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기자 : 처음부터 주위 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16년 남한 생활을 하셨는데 설날 모습이 북한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노우주 : 지금도 그렇겠지만 제가 북에 있을 때는 김씨 일가 동상에 참배하고 눈을 쓸고 신년 설맞이 공연 마치고 집에서 없는 살림에도 음식 장만한다고 북적이고 했죠. 예전에 북한에서는 음력설은 중국 역법에 따른 봉건 잔재라며 쇠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989년에 김정일이 우수한 민속 명절이라며 음력설을 공식 설명절로 삼고 2003년 음력설 부터 사흘간 공휴일로 쉬게 됐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제가 다니는 봉사단체에 가서 어른들께 떡국을 끓여서 드시라고 한 그릇씩 퍼주는데 그냥 마음이 흐믓하고 좋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시집에 가서 설명절을 보냈어요. 새벽에 출발했는데도 도로에 차가 밀려 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무려 네 시간 만에 도착했어요.
기자 : 설만 되면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했다는 보도를 많이 보는데요. 시집에 음식도 좀 해가셨습니까?
노우주 : 물론이죠. 북에서 해서 먹었던 귀한 음식인 언 감자 가루로 채소와 고기, 김치, 버섯을 넣고 만든 만두를 빚어서 큰통으로 한통 들고 갔어요. 가마에 쪄서 접시에 담아 아주버님, 형님들에게 드렸는데 모두 맛있게들 드시니 뿌듯하더라구요. 또 상다리 부러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세배 드리고 조카들에게 세배 인사를 받고 세뱃돈 봉투도 두둑이 준비해서 나눠주고 오랜만에 형제분들이 다 모여 윷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너무 좋았어요.
기자 : 모두 직장 가까이 살기 때문에 가족이라도 떨어져 사는데 이렇게 명절이 돼야만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으니 소중한 시간이지 않습니까?
노우주 : 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보내다가 돌아오는 중에 차안에서 남편과 지난 한 해 별탈 없이 잘 보냈고 수고 했다며 서로 덕담을 하면서 집에 도착했어요. 저는 남한에서 재혼을 해서 저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는 든든한 가족이란 울타리가 있어 올해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표현 했습니다.
기자 : 이렇게 가족이 오랜 만에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는데 보통 이야기 주제가 뭐였습니까?
노우주 : 북한에선 주로 집에 찾아오는 지인들이나 사람들에게 새해에는 원하는 대로 잘 되라는 축하의 의미로 신년에는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에게는 새해에는 떡돌 같은 아들을 득남해서 소원성취 하길 바라네, 새해를 축하합니다, 등 상대방의 근황을 묻고 덕담을 주고 받고 했거든요.
남한에서는 새해인사가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는 사랑하는 친구야 새해 복 많이 받고 계묘년 새해에는 더욱 승승장구하길 바란다. 또는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길거야,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자, 새해에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토끼의 해에 토끼의 기운을 받아 부자 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서로를 응원하고 잘 되라는 덕담을 나누기도 해요.
그리고 직장 취직했는지, 자녀들에게 결혼 좀 해라, 살 좀 빼라, 연봉은 얼마나 받니? 이런 이야기도 오가서 설날 분위기를 흐리기도 해요. 그래서 이런 얘기 듣기 싫어서 설날 집에 가지 않고 여행을 가거나 혼자 보내는 젊은 층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기자 : 이제 마칠 시간이 됐는데 정리를 해 주시죠.
노우주 : 남북이 갈라져 산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설은 설빔을 입고 설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어른들께 세배 드리는 공통적인 풍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두 곳에서 다 살아본 제 경험으로는 그래도 같은 민족이다 라는 말을 쓰는 구나 하는 것을 실제 경험하게 된 거죠. 요즘 고향에서도 멀리 있는 부모님과 친인척들에게 손전화로 인사를 전하고 문자를 보낸다고 하던데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을 나눈다니 다행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음력설을 보내면서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분들 그리고 친구들과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 노우주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께요.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음력설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