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음력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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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 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안녕하세요

기자 : 오늘은 어떤 이야기 전해 주시겠습니까?

노우주: 어릴 때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던 생각이 나서 오늘은 정월 대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자 : 어릴 때 동화를 보면 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던 그림이 생각나는데 기억 나십니까?

노우주: 그럼요. 옛 이야기에도 있고 동요 노래에도 있듯이 둥근 보름달 안에 계수나무 아래서 옥토끼가 쿵덕쿵덕 방아를 찧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한데서 들으며 나도 커서 옥토끼가 살고 있는 달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엉뚱한 소원을 빌었어요. 어머니가 배워 주신 반달 동요를 동생들과 함께 많이도 불렀었죠.

기자 : 남과 북이 음력 대보름을 보내는 모습이 어떻게 다른가요?

노우주: 북한에서는 나라에서 장려를 크게 하지 않았지만 민간에서는 집집마다 전해오는 전통방식으로 보냈던 것 같아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가 큰 가마솥에 찹쌀, 팥, 조, 기장, 수수, 등으로 오곡밥을 지어먹고 그날 하루는 밥을 아홉번 먹고 땔나무를 아홉 짐을 산에 가서 형제들과 까치둥지 만큼씩 지고 내려오던 생각이 나요.

그리고 말려 두었던 고사리를 비롯해 산나물들, 호박 말랭이, 말린 가지, 무말랭이 나물 등으로 나물 반찬하고 대보름날만큼은 눈 밝아지라고 명태탕을 꼭 끓여 주셨어요. 형제가 많은 저의 집에서는 서로 명태눈을 먹겠다고 다투다가 야단도 맞았죠.

또 귀밝기 술이라고 해서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보름날만은 술을 한잔씩 하셨고 우리 자식들에게도 마셔보라고 주셔서 마셨다가 쓰다고 응석 부리던 동년의 기억들이 새롭네요.

그런데 남한에서는 대보름 날이 설 다음가는 명절이더라고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농촌에 사는 집에서는 오곡밥에 봄에 말려 두었던 나물들을 볶아서 먹고 동태탕에 귀밝기술도 마시며 가족들이 즐겁게 보내더라고요.

달집 태우기도 저녁에 하는데 정말 볼만하거든요. 마을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새해 소망을 천에 적어 달짚 둘레에 매달아 놓고 태우며 활활 타는 달집 주변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는데 난생 처음으로 남한에 와서 하는데 정말 신났고 재미있던 기억이있어요.

기자 : 대보름날 기억 나는 일이 있다면 뭘까요?

노우주: 네, 제일 재밌고 흥미로웠던 건 부럼 먹는 거였는데요. 고향에서는 부럼이라면 강냉이나 콩을 가마솥에 까서 볶아 먹었거든요. 처음 남한에 와서 첫 정월 대보름 날 아침에 옆집 언니가 일찍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언니가 그릇에 밤, 호두, 땅콩을 한가득 담아서 주시면서 밥 먹기 전에 내 나이만큼 부럼을 깨먹으라는 거예요. 왜요 했더니 보름날 아침에 먼저 부럼을 깨먹어야 한해 동안 몸에 부스럼도 안 나고 이빨도 튼튼해 진다는 거예요.

이 귀한 호두, 땅콩, 밤을 이렇게 많이 주시냐고 물으니 여기는 집집마다 호두나무를 심어서 너무 많다는 거예요. 고향에는 깊은 산에 가야 쪽가래 나무가 있고 호두나무는 본적도 없거든요. 잊고 살았었는데 언니 덕분에 보름날 함께 부럼도 깨먹고 오곡밥에 나물반찬에 정말 잘 대접을 받았던 일이 이젠 추억이 되었어요.

기자 : 보통 달을 보고 소원을 빌라고 하는데 어떤 소망을 적었나요?

노우주: 1년동안 무사 평안을 간절히 바라면서 떨어진 가족들과 함께 만나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빌었어요. 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너도나도 한해 소망들을 적는데요. 저도 제 순서가 되어 마음속에 꾹꾹 담아 놓았던 간절한 소원을 한자한자 적었어요.

올 한해 농사를 비롯해 모든 일들이 잘되길 바라며 또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북녘의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 자식들도 건강히 잘 있다가 꼭 만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게 해달라고 적어서 매달았어요.

기자 : 올해 대보름에는 코로나 이후 어느정도 정상생활을 찾은 후 처음 맞이하는 건데 어떠셨나요?

노우주: 올해 대보름날 저의 집도 동태탕에 말린 나물 반찬들, 오곡밥을 찰지게 지어먹고 호두, 땅콩, 밤 부럼도 깨물어 먹고 귀밝기 술도 한잔씩 하며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어요.

그리고 보름날에 빠지지 않는 물건이 있는데요. 복조리라고 쌀을 씻을 때 돌을 걸러내는 조리를 걸어 두면 1년 내내 복이 들어온다네요. 저의 집에도 파란 복주머니에 복조리 한쌍을 넣어 찬장에 걸어 두었어요.

기자 : 요즘 바쁘게들 사니까 민속명절이나 행사들이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은데 어떤가요?

노우주: 처음 남한에 와서 정월 대보름을 즐겁고 풍성하게 보낼 때와는 다르게 요즘은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사들이 중단되고 친지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답답하게 지냈는데 그래도 올해는 오랜만에 형제분들 만나고 행복하게 이웃들과 달 구경도 하고 소원도 비니 몇년 묶었던 속병이 다 떨어진 것 같이 즐겁고 행복해써요.

청취자 여러분들도 올 한해는 눈도 밝아지고 귀도 밝아지고 부스럼도 안나고 원하셨던 소원 모두 이르시고 건강하고 알찬 한해를 보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기자 : 노우주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께요.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음력 대보름에 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