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시댁 가족도 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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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 네 안녕하세요.

기자 : 오늘은 어떤 이야기 준비하셨나요?

노우주 : 남한에서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는데요. 시댁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기자 : 서로 좋아서 결혼했지만 남편 가족과도 잘 어울려야 하는데 어땠나요.

노우주 : 여성이 시집을 가면 시댁 식구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북에서 살아왔던 환경이 다르기에 시댁 식구들과 정드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남한분을 만나 결혼한지 3년 차가 되는데요. 제가 지금도 많이 덤벙대고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엉뚱한 구석이 있거든요.

기자 : 노우주 씨도 힘들었겠지만 남편 식구들도 북한 사람을 처음 만나서 조심스러웠을 것 같아요.

노우주 : 네, 처음 시댁에 가서 시집 식구를 만나는데 많이 서먹서먹 했었고 탈북민이라고 신랑이 소개를 하니 형님들이 저를 낯설게 외국인 보듯 하더라고요. 혼자서 살 땐 느끼지 못했던 묘한 기분의 감정들이 저를 주눅 들게 했어요. 그리고 이야기 나누던 중 국적을 취득했냐고 큰 시누이들이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형님들, 저도 대한민국에서 공민증 다 받았고요. 당당한 이 나라 국민이에요 하고 말씀드렸어요.

기자 : 남한에서는 주민등록증이라고 하지 공민증이란 말은 안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겠는데요?

노우주 : 그렇죠. 시누이가 세분이나 계셨는데 서로 마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냐는 식으로 눈들이 휘둥그래지는 거예요. 저도 왜 그러는지 몰라 모두 서로 할말을 잃고 얼굴만 쳐다보다가 둘째 시누이가 공민증이 뭐냐고 하는 거예요. 그때 아차, 내가 북한 단어를 얘기했구나 생각하고 공민증은 우리 주민등록증이에요 라고 설명한적이있어요.

기자 : 시댁에선 북한 사람이 이제 우리 식구가 됐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셨을 것 같네요.

노우주 : 네, 쓰는 말이나 표현이 달라서 그런 일이 자주 있었는데요. 시댁이 경북 영주거든요. 시골집 창고로 쥐들이 구멍을 뚫어놓고 들락거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요놈의 쥐새끼들을 모조리 족쳐버려야지 했더니 시누들이 새댁 말투가 세고 무섭다는 거예요. 북에서 쓰던 표현을 우리 형님들이 처음 들으시니 불편하고 거부감을 느끼시더라고요. 남한에서는 여성이 시댁이 싫어서 '시'자가 들어간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 남편과 있을 때는 모르다가 시댁 식구들 만나면 자연스럽게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노우주 : 네, 아무래도 명절날 모두 모여 전 부치고 음식하는 다복한 모습은 북한과 다를 바 없는데요. 기름진 음식을 드시고 큰 시누이가 새댁 디저트 좀 내와요 하는데 디저트가 뭔지 도통 몰라서 당황하는 기색으로 신랑한테 시선을 돌렸죠. 눈치 백단인 신랑이 일어나서 제 손목을 잡고 부엌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과일이나 음료, 커피를 후식으로 먹는 문화가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기자 : 이런 것이 결혼하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언어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문제가 좀 있었습니까?

노우주 : 조금이 아니고 많았습니다. 같은 말을 쓰면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하지만 서로 표현이 틀리고 쓰는 단어가 틀리니 소통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을 겪으며 시댁 식구들과 서서히 다가가면서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합니다. 북에서는 먹는 문제가 심각해 후식 즉 식사 후에 뭘 또 먹는 다는 것은 생각 조차 못하고 살았어요. 그리고 외래어 때문에 겪는 일들이 많았는데요. 시댁 식구들이 대화를 나누다 불쑥불쑥 외래어가 나오면 저는 놀란 자라 마냥 가슴만 졸이고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외국인 취급하는 사건들이 참 많았죠.

기자 : 남편분하고 있을 때는 못 느끼다가 여러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눌 때는 끼질 못하고 소외감을 느낄 때가 많았나 봐요?

노우주 : 네, 시댁 식구들은 오랜만에 모여 회포를 나눈다고 웃고 떠드는데 저는 혼자 대화에 끼우지도 못하고 꿔온 보릿자루 마냥 구석에서 시간 보낼 때도 많았어요. 일상 대화인데도 남한 문화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살아온 성장 배경이 다르니 특별한 얘기가 아닌데도 같이 웃고 떠들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럴 때면 내가 가족 없이 혼자여서 북한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혼자 열등감에 우울하고 서글플 때가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막연한 피해의식에 빠져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북에서는 가부장적인 풍습이 되물림 돼서 시부모님 공경하고 남편 공대 잘하고 시집가면 그 집 귀신 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남한의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며느리의 의견과 입장도 중요시 되어 시부모님과의 마찰도 종종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 남한에서 쓰는 말이 달라서 말이 안 통했다고 하면 북한 청취자들은 무슨 얘긴가 하실 텐데. 남편분하고는 그런 문제에 대해 늘 얘기를 하겠네요.

노우주 : 네, 저의 신랑이 저를 많이 이해를 해주려고 노력을 했고 제가 북한 사투리를 쓸 때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물었어요. 예를 들어서 여기서는 당근을 북한에서는 닌지라고 하거든요. 그랬더니 여기서는 당근이라고 하니까 빨리 남한 말과 외래어도 습득하면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지지해 주고 용기를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기자 : 실제 부딪치면서 이런 문제는 극복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적응을 하고 계십니까?

노우주 : 제가 많이 바뀌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북한에선 일본어 러시아어가 많이 섞였는데 남한에는 영어를 많이 쓰잖아요. 여기 사람들이 쓰는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랑도 가르쳐 주고 자식들도 어머니 이런 때는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하고 알려주니까 남한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기자 : 이제 마칠 시간이 됐는데 정리를 해주시죠.

노우주 : 네, 남도 아니고 가족이 생겨서 좋은데 힘든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사회의 작은 세포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도 이제는 시댁의 생활 흐름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거든요. 신랑이 시댁 식구들과 저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처해 주고 있고 저도 이제는 시누이분들, 시댁 식구들의 사랑과 예쁨을 독차지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기자 : 노우주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 네, 감사합니다..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남한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참여자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