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이순희: 오늘은 신변보호담당관에 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해요. 제가 처음 신변보호담당관을 들었을 때 북한의 보안원이 떠올랐어요. 북한 보안원은 일반 주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국가가 저에게 신변보호담당관을 배정해 주겠다고 했을 때 '아, 북한에서 온 탈북민들을 믿지 못하니까 감시하는구나'하고 언짢게 생각했어요.
기자: 남한의 경찰관들이 신변보호담당관의 임무를 맡아 활동하고 있는데요. 비교하자면 남한의 경찰은 북한의 보안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각각의 역할은 좀 다른데요.
이순희: 네, 맞아요. 남한과 똑같이 북한에서도 국가의 법 규정과 질서를 지키는 국가 공무원을 보안원이라고 칭해요. 북한의 보안 기관들에는 건물 벽마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구호를 대문짝만하게 써서 붙여놔요. 그러니까 국민을 위하여 일하겠다는 뜻이죠. 그런데 실상은 주민들을 감시하고 집안을 막 수색하고요. 보안원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부정부패도 많고 죄 없는 사람까지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북한 보안원은 주민들에게 일상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죠.
기자: 북한의 보안원과 같은 역할이라 생각했다면 신변보호담당관을 배정해 준다고 했을 때 더 기분이 나쁘셨겠네요.
이순희: 네, 그랬죠. 그런데 제가 단단히 오해했더라고요. 남한의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이 손색없을 정도로 선량한 시민의 보호를 위해 힘을 다해요. 그래서 남한 국민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경찰서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특히 신변보호담당관은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서 지역에 배치되는 그 순간부터 저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지켜주고 또 남한 법에 무지해서 생길 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
기자: 그럼 신변보호담당관은 어떻게 배정되는 건가요?
이순희: 탈북민이 자기가 원하는 지역으로 가면 그 지역의 경찰서에 보안과라는 과가 있어요. 그 부서에 있는 경찰들이 해당 지역으로 오는 탈북민들을 몇 명씩 맡는 거예요.
기자: 신변보호담당관이 어떻게 보호해 주시던가요?
이순희: 제가 배정받은 거주지로 이사 온 뒤에 저에게 거의 매일 먼저 연락을 해주시더라고요. 한 반년 동안은 꾸준히 연락해 주시면서 안부를 물어보셨어요. "아픈 데 없나?", "직장 생활에 어려운 점은 없나?", 또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지는 않나?"는 질문을 하셨어요. 반년이 지난 후에도 처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계속 연락해 주시면서 잘 지내냐고 물어요. 언제는 또 시간 내 밥도 사주시면서 힘든 일 있나 물어봐 주니 이제는 거의 가족처럼 지내게 됐죠. 심지어 해마다 설날과 추석이 되면 제가 고향 생각에 시무룩하고 힘들어할까 봐 걱정해 주시면서 갖가지 선물도 안겨주셔요.
기자: 이순희 씨를 담당했던 신변보호담당관님과는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계신 건가요?
이순희: 그렇죠. 제가 남한에 온 지도 한 15년 됐어요. 경찰관은 한자리에서 계속 같은 역할만 수행하지 않고 다른 데로 승급해 가거든요. 그렇게 되면 담당관이 "다른 데로 가니까 다른 사람이 (신변보호담당관 역할을) 맡게 됐다"고 저한테 설명해요. 그러면서 앞으로 저를 맡게 될 다른 경찰관을 소개하는 거예요. 원래는 신변보호 기간이 5년이에요. 그 5년이 지나니까 저한테 계속 신변안전보호를 받도록 연장하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신변보호담당관님은 저에게 꼭 든든한 보호자 같은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장하겠다고 해서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있어요.
기자: 신변보호담당관님께 실제 도움을 받은 적도 있나요?
이순희: 네, 있어요. 제가 이전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탈북민이라는 걸 알고 '남한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생각해서인지, 어떤 사람이 저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내가 건물주인데 큰 사업을 벌이는 것에 조금 투자하면 크게 불려주겠다"며 돈을 투자하라는 거예요. 한국 법을 잘 모르니까 "그래요"하고 그 말을 믿고 선뜻 돈을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까 완전히 나쁜 놈이었어요. 제가 속았다는 걸 알고 돈 달라고 해도 돈을 안 주죠. 그래서 제가 이를 어떻게 하나 하다가 신변보호담당관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때 그 담당관님께서 직접 저와 함께 다니시면서 법적 절차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고소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셔서 그 사기범이 합당한 처벌을 받고 사기 당했던 돈도 전부는 아니지만 한 달에 얼마씩 되돌려 받을 수 있었어요.
기자: 사기를 당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데, 담당관님이 사기범을 잡는 데 직접 발 벗고 나서주셔서 정말 고맙고 또 의지가 됐겠어요.
이순희: 정말 그랬죠. 또 우리 마을에 사는 한 탈북민의 담당보호관은 그 탈북민이 아프다니까 병원도 데리고 가주시고 사비를 내서 병원에서 필요한 물품들도 사주셨어요. 그런데 그 탈북민이 끝내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담당관님이 상주까지 서주면서 장례식 모든 절차를 주관했어요. 저도 장례식에 참여해서 잘 알아요. 그리고 그 탈북민의 납골당 옆에 담당관님 장모님의 묘지가 있다면서 담당관님이 장모님의 묘지를 올 때마다 탈북민의 유골함도 찾는다고 말하더라고요.
기자: 탈북민들에게 신변보호담당관의 존재가 단순히 보호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사람인듯하네요.
이순희: 삶의 경조사를 모두 공유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담당관은 탈북민이 이상한 회사에 취직할까 봐 검토해 주고, 면접도 함께 가주고, 취직했을 때는 축하한다고 밥도 사주고, 취업한 회사 사장님에게 잘 봐달라고 허리 굽혀 인사까지 해주었어요. 많은 탈북민이 신변보호담당관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기자: 그렇죠. 신변보호담당관 분들께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 그중 어떤 점이 가장 큰 의지가 되던가요?
이순희: 무엇보다도 사기나 범죄와 같은 일을 당했을 때 담당관님이 정확한 지식을 갖고 도와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의지가 됐어요. 남한에서는 보이스피싱이라는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거든요. 전화로 지인이나 경찰 혹은 검찰에서 전화를 건 척하면서 "지금 당장 몇백만 원을, 어디로 입금해야 당신의 신변이 안전하고 돈을 지킬 수 있다"면서 상대방을 속이는 거예요. 저런 사기에 왜 걸리나 싶겠지만, 막상 그 전화를 받으면 심리적 압박이 너무 심해서 본인도 모르게 그 돈을 송금하게 된다더라고요. 또 탈북민들 같은 경우에는 이런 수법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더 취약하죠. 그래서 보이스피싱 같은 전화 사기에 걸릴세라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안전 문자도 수시로 보내주시고 따로 모아서 강의도 해주었어요.
기자: 신변보호담당관 분들께 또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순희: 신변보호담당관님이 저희에게 한 번도 반말하지 않고 항상 존댓말과 존칭을 쓰세요. 북한 보안원은 부모뻘 되는 사람에게도 "야"라고 해요. 북한의 보안원과 달리 (남한의 신변보호담당관은) 우리를 똑같은 인격체로, 동등한 위치에서 대해주시는 것이 느껴져요. 나이가 어려도, 남한 사회에 어수룩해도 항상 존중을 담아 대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이북 고향 분들도 공포와 무서움의 대상인 보안원이 아닌 민중의 힘이 되는 경찰관분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신변보호담당관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