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 한 주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지난 주말 영화관에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어요. 이 영화는 남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야기인데요. 남한의 초기 정부를 세우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가 영화에 잘 담겨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남한 영화관과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해요.
기자: 코로나 대유행 때 남한 영화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침체기를 겪었잖아요? 경기 불황도 찾아왔고 밀폐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게 되면 바이러스가 더 빠르게 전파하다 보니까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적어졌던 건데요. 그런데 이제 다시 남한 영화 산업이 활기를 띠는 것 같아요.
이순희: 코로나 때는 영화관에 가기도 힘들었고 버스 안에서도 재채기를 통해 코로나를 옮긴다고 해서 몇 명도 모이지 못하게 했어요. 그때는 극장에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 수도 적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기다렸다는 듯 영화가 더 많이 개봉하는 것 같은데요. 한 영화관당 보통 5~6개 혹은 그 이상으로 여러 개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고 있어요. 본인이 원하면 한 영화를 보고 다음 상영관으로 옮겨서 다른 영화를 보면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어요.
기자: 예전에는 영화는 거의 영화관에서만 상영했었는데 텔레비전과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도 많아졌죠?
이순희: 네, 맞아요. 남한은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 가정과 공공기관, 기업들에 다 다 설치돼있고 영화를 상영해 주는 채널이 따로 있기 때문에 손쉽게 영화를 접할 수 있는데요. 또 요즘에는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같은 온라인 영상 공유 플랫폼이 있거든요. 오히려 영화관에서 개봉은 안 하면서 이런 플랫폼에서만 개봉하는 영화도 많아요.
기자: 네, 그렇죠. 특히 최근에 공개된 탈북민의 삶을 그린 영화 <로기완>도 넷플릭스에서만 개봉됐잖아요. 혹시 이 영화도 보셨나요?
이순희: 아직 못 봤어요.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서 예고편을 보는 순간 저도 가슴이 콱 막히더라고요. 탈북민들이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 가슴 아픈 사연, 그리고 제3국에서 공민권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지 떳떳할 수 없고 숨어 살아야 하고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는 것이 우리 탈북민들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너무 감명 깊게 봤고요. 또 남한에서 인기 많은 영화배우가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니까 남한 분들한테도 감흥을 일으킬 것 같았어요.
기자: 송중기 배우가 '로기완' 역을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극 중에서 로기완이) 난민으로 인정받아서 다른 나라 시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탈북한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면서 난민 인정이 어려워진 내용이었죠. 자유를 찾아서 떠나왔는데 아무 데서도 인정을 안 해주고 받아주지 않으니 정말 갈 데가 없다는 현실이 참 비참했던 것 같아요.
이순희: 영화를 보면서 그 어디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탈북민들의 운명이 저희가 중국에서 겪었던 것과 생활이 너무나도 똑같으니까 감명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도 중국에서 자동차도 안 다니는 깊은 산골에 가서 숨어 살면서도 '잡히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하고, 밤에도 옷도 못 벗고 자고,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뒷창문으로 내빼던 광경이 이 영화하고 같이 겹쳐서 떠오르는 거예요.
기자: 또 미국에서도 <비욘드 유토피아>라는 북한과 탈북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상영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로기완>과 <비욘드 유토피아> 등 특히 최근에 탈북민의 삶을 그린 영화가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순희: <비욘드 유토피아> 영화는 다큐멘터리 즉, 사실주의에 기초한 영화거든요.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기록영화인데요. 영화에서 김성은 목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분이 탈북민들을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영화에 등장한) 이소연 씨의 아들이 탈북하러 오다가 잡혔잖아요. 대구에 사는 탈북민 중에도 남한에 오다가 잡혀 북송되어 피 터지는 고문을 받아서 아직도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아프고, 허리를 다쳐서 일을 못 하고, 집에서 우울한 세월을 보내는 탈북민들도 있거든요. 그분들이 본인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하고 텔레비전이나 강연에 나와서 강의하는 거 보면 저희 생활을 보는 것 같아서 막 함께 울고 울었어요.
기자: 그러면 가장 최근에 봤던 <건국전쟁>이란 영화는 어떠셨나요?
이순희: <건국전쟁>이라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에 토지개혁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북한에서도 해방된 이후에 1946년 3월 5일 토지개혁을 실시했거든요. 처음에는 개인들에게 땅을 나눠줬어요. 그러다가 "협동하라"는 구호 아래 그 땅을 다 빼앗아서 협동적 소유 즉, 국가 소유로 만들었어요. 농민들을 작업반 '분조'로 나눠가지고 "이 분조는 이만한 땅을 경작해라"고 명령하면 그날에 하루 나와 일하면 한 공수, 두 공수 이렇게 공수를 매겨서 그 공수에 따라서 수확한 곡식을 배급해 주는 식으로 바뀌었거든요. 그런데 하루 나오기만 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배급되는 식량은 비슷할뿐더러 더 열심히 일한다고 돌아오는 소득이 별로 없으니까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없었던 거죠. 영화를 보면서 1000년 넘게 한 국가 아래 살다가 고작 70년간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긴 것에 대해 새삼 놀라우면서도 씁쓸하더라고요.
기자: 이 영화는 남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인상 깊겠지만, 탈북민으로서 '당시 남한 사회는 이랬는데 북한 사회는 반대로 이랬구나'는 점을 느낄 수 있어서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이순희: 네 맞아요. 똑같은 토지 개혁도 북한과 남한이 달랐는데요. 남한에서는 개인들한테 (토지를) 나눠주고 오늘날까지 그대로 나눠준 걸 뺏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기 소유물이 되니까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과 작은 걸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 것인가?' 연구하다 보니 남한이 오늘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기자: 역사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의 장점은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진위여부를 잘 구분하면서 봐야 하죠.
이순희: 네, 그렇죠.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에서 역사와 현재 사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국민들이 볼 수 있는 영화나 텔레비전 채널이 몇 개 되지 않는 매체에만 국한되면 국민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처럼 영화관에 가서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보고 또 집에 와서는 넷플릭스 같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또 다른 영화들을 접하면서 제 생각의 폭도 넓히고 세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것이 참 좋은데요. 북한 고향 분들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본인의 생각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최근 남한에서 개봉된 남북한 영화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