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코로나 후 다시 찾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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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번 만나봅니다.

기자: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네 안녕하세요

기자: 뉴스를 보니 이제 남한에서는 마스크를 안쓰고 다녀도 된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입니까?

노우주: 네.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 비루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해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이 말할 때도 일정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했었죠. 밤에 잠잘 때와 밥 먹을 때 빼고는 마스크를 썼다고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3년 전의 일상으로 돌아와 편하게 숨을 쉬게 됐어요. 하지만 오랬동안 마스크를 쓰는 게 습관이 됐는지 아직도 마스크를 그냥 쓰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요 솔직히 요즘 봄철에는 꽃가루나 미세먼지가 심해서 그냥 마스크 쓰고 다니는데 개인 자유에 달려있지 강요는 안해요.

기자: 공공장소인 버스, 관광서 출입 때는 어떤가요?

노우주: 3월 20일부터 전면적으로 마스크는 벗어도 된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이 마스크를 안해도 됩니다.

기자: 정말 이전에는 상상활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그걸 또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는데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까?

노우주: 코로나 비루스 번지고 나서 명절에도 고향에 부모님들께도 찾아뵙지 못하고 전화로 대신하고 추석 명절에도 성묘를 못하고 상차림을 차리지 못해 종이에 음식 그림을 그려놓고 고인을 추모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수 없이 많았어요.

또 가족이 코로나 걸렸을 때는 밖에 나가질 못하니까 채소를 비롯한 식재료가 떨어져도 집 냉장고가 텅텅 비었었죠. 그래도 직접 가게에 못가니까 전화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했어요.

기자: 대면 접촉을 못하는 상황에서 배달 음식은 어떻게 받았나요?

노우주: 음식이 오면 문 앞에 놓고 배달기사가 문자로 확인사진을 찍어 전송해 주고 전화를 해줘요. 사람이 마주치지 않고 비대면으로 문 앞에 놓인 음식을 들고 들어와 식사를 했어요.

얼마다 답답하고 번거로운지 모르겠더라구요.

기자: 식재료나 다른 소포 배달도 그런 식으로 받았던 거죠?

노우주: 그렇죠. 격리되어서 집에서 저마저도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채소와 식재료들을 전화로 상점에 시키면 문 앞에 가져다 놓고 전화로 배달 완료라고 문자를 주면 제나 나가서 들여다 식사 준비를 하고 반찬을 만들어 먹고 했어요.

예방 주사도 맞고 어느 정도 코로나 비루스가 잠잠해졌을 때는 부분적으로 사회적 격리가 풀려서 직장도 나가고 학생들도 학교에서 수업을 나눠서 들었어요.

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투명 비행기 유리로 칸칸이 막아 놓고 따로따로 일하고 밥을 먹어야 했고 사무실들도 칸막이로 막고 일을 했어요.

기자: 사실 한공간에 같이 있으면서 투명한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칸막이를 하고 얘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 조치일까 싶으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죠.

노우주: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이나 감방 면회실 같은 곳은 텔레비전에서 보면 외부 사람과 접촉을 못하게 하려고 막아 놓은 것은 봤지만 코로나 때는 일상 생활 자체가 그런 모습이었어요.

간혹 마스크 안하고 가게에 가거나 지하철을 타면 난리가 나는 거죠. 무슨 비루스 덩어리 인 것처럼 사람들이 떨어져 서고 버스나 지하철, 기차 등은 마스크를 안 쓰면 태우지를 않았어요.

기자: 사람을 안 만나니까 외식비용은 많이 줄었겠어요.

노우주: 웬걸요, 밖을 못 나가고 활동을 못하니 집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음식값도 만만치 않게 들더라구요. 여기는 헤어지면서 언제 한번 식사나 하죠. 이런 말을 많이 하거든요.

또 사실 일 끝나면 직장동료들이 저녁에 법을 먹으면서 간단히 술 한잔 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모이는 건 고사하고 혼자서 밥 먹는 혼밥, 혼자서 술 마시는 혼술 문화가 코로나 비루스가 퍼지면서 우리사회에 유행이 됐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수고했다고 우리 언제 만나자, 밥 먹자, 이런 인사를 주고 받으니 사람사는 세상같이 느껴지더라구요.

기자: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집안 행사도 비정상적이어서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정상화 됐죠?

노우주: 맞아요. 시댁 조카네도 백년가약을 약속한 처녀 총각들이 결혼식도 못 올리고 잡은 결혼식 날자를 세번 정도 미루고 코로나 비루스가 종식 되여 양가 일가친척들,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봄에 올렸어요.

학생들도 학교로 정상적으로 등교하고 꽁꽁 닫겨 있던 식당 문들도 열고 영업을 시작하고 재래시장 가게들도 정상으로 돌아와 활기를 되찾으니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기자: 코로나 비루스에서 정상을 찾은 남한의 모습 정리를 해주시죠

노우주: 네, 코로나 비루스로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던 시간들이 마치 먼 옛일이었던 것처럼

잊혀진 것 같아요. 올해 들어와서는 모든 일상이 정상화되면서 사람들이 활기를 되찾고 바쁜 생활을 해나가고 있고 친한 친구들과 친인척들 함께 오붓이 앉아 식사도 하고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바쁜 일손도 도와주니 모두 모두 좋아들 해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도 지나간 힘들었던 일들은 잊고 현재의 시간들을 즐기면서 날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내시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네, 감사합니다.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코로나 비루스에서 벗어나 정상을 찾은 남한사회 모습에 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참여자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