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쓸쓸하지 않은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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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잦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네, 안녕하세요.

기자:요즘엔 어떻게 지내세요?

노우주:최근에 알고 지냈던 탈북민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장례식에 다녀왔어요. 그분은 남한에 온 지는 8년 정도 됐다는데 80세가 넘었고 지병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기자:지병을 앓고 계시다 돌아가셨다면 병원에서 오래 치료받으셨을 것 같은데, 남한은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과는 다르죠?

노우주:네, 북한에서는 보통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르거든요. 남한에서도 예전 70년대쯤에는 가정집에서 장례를 치렀잖아요? 어르신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모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계셨습니다. 장례식에 가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니 그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하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한국의 큰 병원 옆에는 장례식장이 많이 붙어있습니다. 다른 나라 중에 한국처럼 병원과 장례식장이 붙어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해요. 한국에만 있는 문화라니 신기하죠.

기자:아무래도 탈북민들은 남한에 가족이 많이 없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보다 장례식을 치르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떠셨나요? 노우주 씨도 장례식에 가본 건 처음이라고요?

노우주:네, 저도 장례식장은 처음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검정 한복을 입고 조문 온 고객들을 맞이해주더라고요.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둘러보는데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 화면에 배정된 방마다 고인의 이름이 적혀있고 이름 밑에 상주 즉, 자녀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거예요.

어르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상조회사에서 나온 분들이 오는 조문객들을 맞아주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남한의 장례식을 겪어보니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장례지도사가 어르신 영정사진 앞, 흰 국화 송이가 쌓여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거예요. 고인의 영정사진 앞에 한 사람씩 국화를 놓고 절을 하라고 알려줘서 절을 드리고 모두 나와 식사하며 고인을 추억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자:한국에서는 장례식에 온 문상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장례식장 음식문화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상객 10명 중 7명 정도가 장례식에서 식사하고 나온다고 해요. 장례식장이 처음이었으면 조문 후에 식사하는 것도 낯서셨을 텐데요?

노우주:네, 검정 한복을 입은 장례지도사분들이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라고 우리를 식탁으로 이끄는 거예요. 식탁이 놓여 있는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조문객들이 음식을 먹으며 상주를 위로하더라고요. 식탁에는 떡과 고기, 과일, 술과 음료수까지 상차림이 다 되어 있었어요. 제가 장례지도사님께 조용히 "음식을 어떻게 마련해서 조문객들에게 대접하냐"고 물으니. 고인이 생전 상조회사에 보험을 들어 놓았기에 상조회사에서 음식과 장례까지 다 지원해 준다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기자: 한국에서는 장례식 준비부터 화장까지 모든 과정을 사설 기관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죠. 무연고 어르신이었지만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노우주:조문객들도 우리뿐이 아니고 동사무소, 복지관, 신변보호관님들도 와서 고인의 영정을 지켜주니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북에서 온 무연고 탈북민들이 고인이 돼도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장례지도사나 지인, 친구가 장례를 주관하는 대리 상주 역할을 하게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또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 예의를 갖추어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남한의 장례문화가 인간의 마지막 복지인 장례를 담당해 주는 역할을 하니 이런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혼자서 외롭게 고인이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무연고 사망자가 마지막으로 입고 갈 수의도 국가지원금으로 마련해준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죽음은 항상 우리 삶 속에 있잖아요. 누군가는 생을 위해 일하듯, 누군가는 죽음을 위해 3일 간 장례를 도와주고 고인과 유가족을 모시는 장례지도사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해봤어요.

기자:상조회사에서 많은 부분을 준비해주기는 하지만, 상주를 서게 될 경우 직접 준비해야 하는 물건도 많은데요. 어떤 것들이 필요하던가요?

노우주:장례식이 3일간 계속되기 때문에 갈아입을 속옷이랑 세면도구, 담요 등을 준비해야 하더라고요. 또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각종 상비약도 챙겨오기도 합니다. 또 장례식에는 검정 옷을 입어야 하므로 검정 양말과 검정 내의도 챙겨오더라고요. 특히 상주들은 장시간 서 있어야 하므로 파스를 챙기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장례식장에서 검정 양복을 대여해주기도 하고 베개나 이불, 침구와 수건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미처 챙겨오지 못한 물건이 많아도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기자:어르신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셨어요?

노우주:고인의 유언에 따라 발인할 때 생전 어르신이 타던 봉황이 그려진 검은 벤츠 차량에 고인의 유해를 싣고 가서 화장한 후 나무 아래 묻어 수목장 형식으로 보내드렸어요. 장례식에 왔던 고향 지인들이 "어르신은 한국에 와서 인간답게 살다가 고인이 되어서도 벤츠 타고 하늘나라 간다"고 하는 거예요. 남한의 장례 지원 덕분에 흰 국화꽃송이에 쌓여 웃는 고인의 영정사진이 온갖 시름을 놓은 것처럼 평온해 보여서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기자:최근에 반려동물의 장례식도 치러주는 걸 본 적이 있으시다고요?

노우주:제 윗집에 사는 지인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는데 강아지도 장례식을 치러 주는 걸 보면서도 깜짝 놀랐었는데요. 강아지 사체를 보에 싸서 평소 강아지가 좋아했던 먹이도 사서 함께 묻어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참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짐승들도 복 받은 땅에서 살아가는 거죠. 북한 주민들은 남한 강아지보다 못한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국화는 고사하고, 변변한 수의도 못 입고 음식과 조문객들도 없이 마을 사람들이 손수레에 시체를 싣고 끌고 가 산에 묻어주고 왔던 추웠던 겨울날의 어느 장례식이 뇌리를 스치면서 한 하늘을 이고 사는 한 민족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한탄스러웠어요.

기자:한국에서 장례문화는 처음 겪어보셨는데, 어떠셨는지요?

노우주:북한에서 겪었던 장례식 생각이 나면서 울컥해지는 거예요. 고향에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고인이 된 사람들을 제가 장례를 치러드렸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또 남한의 장례문화가 이색적이면서도 특별한 차별문화가 없는 장례식 문화에 놀랐어요. 국회의원이든, 일반 시민이든 똑같이 고인을 추모하고 추억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과는 참 다르다고 느꼈죠.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고인이 되면 관을 살 돈이 없어, 그냥 땅에 묻히거든요. 잘 사는 간부들은 장례식을 보면 예외죠.

반대로 남한에서는 무연고 탈북민도 쓸쓸하지 않게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보니 지금 죽는다고 해도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고향의 주민들에게도 인간의 존엄과 평등한 대접을 받으며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하는 자유로운 장례문화가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기자:노우주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직업 선택의 자유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박수영,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