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잦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네, 안녕하세요.
기자:이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노우주:오늘은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남한에 와서 생활해 보니 달마다 기념일이 참 많더라고요.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냈는데요. 복지관에 나가 어르신들께 봉사해 드리고 왔어요. 요즘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고 자녀들이 먼 곳에서 일하느라 자주 부모님들을 찾아 뵙지 못해서 외롭게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기자:한국에서는 부부와 자녀들만 함께 사는 핵가족 형태가 많아지면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아진 것 같아요.
노우주:네, 어버이날도 그 이유로 생겼어요. 1973년 3월 30일에 5월 8일은 법정기념일로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로 퇴색되어 가는 어른 봉양과 경로사상을 확산하고 복지사회 건설에 기여'하도록 국민적 기념일로 지정했더라고요.
기자:어버이날 봉사에 나가셔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노우주:어버이날 하루만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라고 멀리 있는 자식들을 대신해서 사회복지사분들과 자원봉사자분들이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드렸거든요. 저도 그 일을 도왔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기자:어버이날에, 한국에서는 부모님과 어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곤 하는데요. 저도 학생 때 어버이날마다 카네이션 만들기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어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건 어디서 유래된 걸까요?
노우주:저도 처음에는 카네이션을 왜 달아드리는지 몰랐어요. 복지관에서 처음 봉사하면서 맞이했던 어버이날에 있었던 일인데요. 어르신들에게 꽃을 다 달아주고 궁금해져서 사회복지사님께 가만히 물어봤어요. "우리나라 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카네이션을 어른들에게 달아 드리냐"고 말이죠. 그 사회복지사님이 유래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1868년 당시 미국에서 남북전쟁으로 자식을 먼저 잃게 된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했던 우정을 계기로 시작되어 어버이날을 기념한다고 해요. 앤 자비스라는 여성이 특히 수많은 어머니에게 큰 힘을 주었는데요. 앤 자비스의 딸 애나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 주위에 카네이션꽃을 심고 가꾸었다고 해요. 그리고 또 어머니 기일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흰 카네이션을 나눠주었고요. 애나는 나아가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버지니아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를 기리는 모임을 만들었고, 30년 넘게 꾸준히 모임을 이어오면서 그녀의 노력이 미국 전 지역에 알려졌는데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어머니날로 지정했는데, 한국에 이 뜻이 전해지면서 어머니와 아버지 둘을 뜻하는 어버이날로 변경이 됐다네요. 그리고 또 카네이션 꽃말에는 ‘존경’, ‘감사’ 등의 의미가 담겨있어 어버이날에 달아드리기 딱 좋은 꽃이기도 하죠.
기자:부모님의 사랑은 아무리 되돌려 드리려 해도 모자라죠.
노우주:자식을 낳아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으시고 그 힘든 세월의 모든 풍파를 다 막아주시고 자식들의 앞길은 늘 행복하기를 바라 마지않으셨던 어머니, 아버지들께 존경을 보내드려요. 고향에 있을 땐 부모님께 늘 투정만 부리고 가슴만 아프게 했던 못난 자식이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내 자식을 키우며 참회의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왜 그땐 철이 없었는지, 자식이 원할 때 못해 주는 부모님의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프네요. 남한의 노래 가사 말 중에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
기자:어렸을 땐 몰랐지만 점점 커가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도 참 많이 땡깡도 부리고 말도 안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슬하에 있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거였어요.
노우주:네, 맞아요. 그리고 부모님의 어렸을 적 가르침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기죽지 말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삶의 지혜를 주신 덕분에 오늘날의 제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원동력이 되었어요. 자식들에게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시고 오로지 희생으로 우리들을 훌륭히 키워주신 어머니의 바다 같은 은혜는 잊을 수가 없네요. 늘 이웃을 사랑하고 어르신들을 공경했던 부모님들의 삶을 보며 자라온 저는 어머님 생각날 때마다 복지관에 가서 급식 봉사를 하며 그리움을 달랬어요.
기자:부모님을 찾아 뵙기 힘든 상황에서 대신 어버이날 봉사에 나가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어르신들을 위해서도 있지만, 또 부모님을 뵙고 싶고 보살펴 드리고 싶은 마음을 달랠 수 있잖아요.
노우주:고향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면서 해마다 봉사를 이어 온 날들이 어느덧 13년 세월이 흘렀어요.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제 손으로 해드리는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어르신들을 바라만 봐도 흐뭇해지고 기쁨이 배가 되더라고요. 함께 살아가는 아파트 어르신들과 복지관 어르신들 덕분에 어머님의 그리움을 달래며 고향 어머님을 대하듯 하니 어르신들도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들이 꼭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마지막으로 어버이날을 맞아 청취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노우주: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기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효 사상 문화잖아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며 우리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부모님들에게 효도하고 따뜻한 식사를 해드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5월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북한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안녕을 바랍니다.
기자:노우주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어버이날의 의미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박수영,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