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아주메의 남한 이야기] 문화재, 북한서 구경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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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네, 안녕하세요.

기자: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얼마 전이 6·25전쟁 기념일이었어요.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2년 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한 날이었는데요. 그날을 기억하고 그 전쟁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전쟁 체험전시관에서 방문을 장려하기도 하고 각종 단체에서도 행사를 했어요. 이날이 되면 저도 전쟁으로 인해 무고하게 돌아가셨을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 같아요.

기자:남한에서 6월 25일을 전쟁일로 지정하고 기념하는 이유도 전쟁의 참혹함과 선조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죠. 그럼,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건가요?

이순희:오늘은 남한에서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 혹은 물건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해요. 제가 있는 대구에서 경주가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요. 경주는 제가 북한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첨성대와 여러 역사 유적지가 있다고 배웠을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요. 제가 최근에 경주에 다녀왔거든요. 그곳에 도착하니 제가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울 때 사진으로 봤던 딱 그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기자:북한에서는 첨성대에 대해서 어떻게 배우셨나요? 또 실제로 보니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끼셨나요?

이순희:북한에서는 이론적으로 배웠죠. 첨성대는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고 별자리를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르쳐줬어요. 제가 직접 첨성대에 가서 봤을 때는 꽃이 한창 피는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그야말로 꽃 바닷속에 우뚝 솟아있는 돌탑 그 자체였어요. 총 360여 개의 돌이 사용됐는데 이는 음력 1년의 일수와 일치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받침부터 시작해서 몸체까지 총 28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별자리 수 28수를 나타낸다고 하고요. 그리고 몸통 가운데에는 네모난 창이 있어 창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12단이어서 12달,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해요. 돌 개수 하나에도 계산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선조들의 정교함에 소름 돋지 않나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몸통 가운데의 네모난 창을 기준으로 햇빛의 길이를 알 수도 있었대요. 이로써 하늘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거죠. 무엇보다 첨성대가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신기했어요. 첨성대가 위치한 장소에도 2016년에 5.8의 강진이 있었어요. 제가 그 지진을 겪었거든요. 그 지진으로 대구도 흔들렸었고, 주변 도시 일부가 훼손됐고, 문화 유적지도 일부 훼손됐는데요. 그때 첨성대는 약 2cm 정도만 기울고 돌 틈이 약간 벌어지기도 했지만 강진이었던 규모에 비해 큰 피해가 아니라고 해요. 이는 내진설계가 잘돼 있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기자:북한 분들도 교과서를 통해 경주와 첨성대에 대해서 배웠다면 실제로는 어떤 곳일지 궁금증이 생길 것 같은데요. 그럼, 경주에서 첨성대 외에는 또 어떤 것을 보셨나요?

이순희:경주에는 첨성대 말고도 다양한 역사 유적이 많아요. 신라 통일시대에 경주가 수도였기 때문에 불국사와 석굴암도 경주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갔던 날에는 이곳들까지 다 가진 못했어요. 다만 특이하게 젊은 대학생들이 신라시대 의상을 입고 북과 징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첨성대 주변을 돌더라고요. 또 선덕여왕처럼 옷을 입은 사람을 가마, 마차에 태우고 다니는 것도 봤어요. 이외에도 이색적인 행사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첨성대를 보기 위해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관광 오는 것도 신기했고요. 첨성대에서 시간을 보낸 뒤 문무대왕릉에도 다녀왔고요.

기자:문무대왕릉은 어떠셨나요?

이순희:문무대왕릉은 통일신라 시기에 정권을 잡았던 문무왕의 왕릉인데요. 이분이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강했고, 일본에서 절대로 침입해 와서는 안 된다고 자기가 죽어서도 바다로 들어오는 왜적을 물리치겠다고 자기 묘를 동해에다가 묻어 두라고 해서 바닷속에 이 분의 무덤이 있어요. 이를 문무대왕릉이라고 해요. 그래서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위치를 표시해 둔 표식비가 있어요. 그리고 문무대왕의 역사적인 자료들을 전수해 주는 전시관이 따로 있더라고요.

기자:경주는 유적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여러 관광상품도 발달했죠. 어떤 관광상품들이 있던가요?

이순희: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하잖아요. 경주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특산품이 잘 발달해 있어요. 이를 이용한 관광상품들이 있었어요. 유명한 보리빵을 파는 곳도 있고, 다양한 면옥 집도 있었고요. 특히 관광 거리 주변에는 회와 고기를 파는 온갖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유적지로부터 멀리 가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에 시원한 커피까지 마시면서 편안하게 쉬다가 왔어요.

기자:그럼 현지 유적지 외에도 박물관에도 다녀오셨나요?

이순희:경주에 경주국립박물관이 있어요. 역사 유적지이니만큼 다양한 역사 유물들이 전시돼 있는데요. 남한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큰 곳이라고 해요. 박물관의 건물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여서 다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기자:경주국립박물관에서는 어떤 유물들을 보셨나요?

이순희:박물관에 화려한 세공 유물들이 많았어요. 금제 팔찌, 목걸이, 귀걸이, 유리잔, 허리띠, 금관 심지어 가위까지 있었어요. 역사책으로 보던 유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참 신기했죠.

기자:국보급 문화재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사진으로만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죠. 그래서 남한 정부는 유적지나 문화재 등을 보존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특히 외국에 약탈당했거나 유출됐던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남한 정부가 환수한 문화유산은 총 1,500점 이상이라고 해요. 이는 2022년 성과에 비해 10배가량 증가한 건데요.

이순희:맞아요. 최근에는 스님들이 계시는 한 절간에서 신도들이 성금을 모아서 불교 그림을 회수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만큼 남한 정부와 남한 사람들이 세계에 흩어졌던 선조들의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런 사례를 볼 때면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감사함과 대단함을 느끼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전 세계에 남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게 놀라워요. 그만큼 선조들이 값어치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뜻이잖아요.

기자:북한에서도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해당 기관을 설립하고 노력하고 있지만 해외 국가와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문화재 회수라든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겠죠.

이순희:북한 내에서 또 이동이 어렵고 생활도 어려우니 문화 유적을 보는 건 생각도 안 하죠. 첨성대 같은 문화 유적지와 이를 둘러싼 아름다운 절경을 북한 분들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도 드네요.

기자: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문화재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