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노우주: 북한에서는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는데 남한에서는 매일 먹는 음식이라 별로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 특별한 음식이 있어 소개를 하고 싶은데요. 뭐가 특별한 음식인가 하실텐데 바로 생일날 먹는 음식입니다. 음식도 평소보다는 더 푸짐하고 또 생일에는 선물도 받기 때문에 일년 중 가장 행복한 날 같습니다.
기자: 사실 뭘 먹고 싶니하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는데요. 노우주씨는 왜 생일상이 기억에 남을까요?
노우주: 네, 북한에선 힘들게 살다보니 생일을 챙겨먹을 그런 여유가 없었는데 남한에 와서 어느날 제가 아는 언니네 집에 초대되어 갔어요. 생일에 먹는 단빵인 케이크를 올려놓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 한상가득 차려져 있는 거예요.
기자: 사실 옛날에는 떡을 먹고 했는데 영화에서 빵에 나이에 맞춰 촛불을 켜놓고 소원을 빌면서 불 끄고 먹는 그 달콤한 서양식 빵이 유행이 됐어요.
노우주: 네, 저는 생일인 것도 모르고 갔었는데 생일날 케이크가 빠지면 섭섭하죠. 그런데 언니 친구들이 사와서 언니 나이만큼 초를 단빵에 꽂아놓고 전기등을 끄고 초에 불을 밝히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에 같이 따라 했죠. 생일인 언니가 촛불을 끄고 다 같이 식사하자며 수저를 손에 쥐어 주는 거예요. 차려진 생일상을 보니 가짓수가 엄청 많더라 구요.
기자: 단빵 말고는 어떤 음식들이 있던가요?
노우주: 흰쌀밥에 소고기를 넣어 끓인 미역국, 북한에는 없는 농마 가루로 뽑은 면을 삶아서 야채와 고기를 볶아 무쳐놓은 음식인 잡채, 소갈비 볶음, 돼지고기 볶음, 전복찜, 계란찜, 찰떡, 만두, 쉼떡, 녹두 나물, 오이김치, 황태구이, 더덕무침, 산나물 무침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더라고요.
기자: 아무리 생일상이라고 해도 너무 과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노우주: 오랜만에 친구들 불러서 생각나는데로 먹고 싶은 것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식사가 끝나니 후식으로 사과, 배, 귤까지 먹었어요. 친구언니들이 생일인 언니에게 필요한 것 있으면 사라고 친구 언니들이 현금 봉투를 주기도 하고 화장품을 선물로 주기도 하고 고급 찻잔을 선물로 주더라고요.
기자: 정말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노우주: 네, 그런데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가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당연히 빈손이었어요. 제가 미안해하자 우주씨 괜찮아 하면서 집도 가까운데 저녁 늦도록 놀다가 가라는 거예요. 친구 언니들이 돌아간 다음 언니가 선물 받은 화장품과 찻잔 세트를 저에게 쓰라면서 주는 거예요. 집에도 안 쓰는 도자기가 많다면서 저를 챙겨 줘서 지금도 언니 생각하며 잘 쓰고 있어요.
기자: 음식보다고 그때 언니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군요?
노우주: 내 생일도 아닌데 빈손으로 가서 선물까지 받았으니 잊을 수가 없죠. 사람들 마다 생일을 보내는 방식이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저녁에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음식을 나누며 담소도 나누고 노래방 가서 즐겁게 생일 축하도 해주고 연인들은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유명 그런 명소에 놀러 가기도 하거든요.
며칠 전에 저의 집안 큰 형님 생신이었는데요. 형님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당 가서 회를 시켜 맛있게 대접을 해드리고 생신 선물로는 돈 봉투를 드렸어요. 그리고 노래방 가서 생신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재롱도 떨었구요. 그런데 갑자기 북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솟구치는데 걷잡을 수 없었어요. 어머니 생신에 흰쌀밥 한 그릇 떠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 할 수가 없었어요. 눈치 빠른 신랑이 저를 다독거려 주니 마음이 진정 되더라구요.
기자: 이런 좋은 순간에도 고향에 있는 가족 생각에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 남한에 사는 탈북민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노우주: 그렇죠. 또 생각나는 것이 제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돌아 온 생일날 아침이었어요. 전날 저녁부터 신랑이 부엌을 드나들기에 왜 그러지 하고 생각 했는데 새벽부터 갈비찜을 해놓고 나물 무쳐놓고 제가 좋아하는 찰밥에 깔끔한 국을 좋아하는 제 입맛에 맞게 미역국을 끓여서 한상 가득 챙겨놓고 생일 축하한다고 이야기해 주더라구요. 가슴이 뭉클해지며 감동이 밀려오고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날 남편은 일하는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저를 데리고 가까운 유원지에도 가고 박물관 구경을 시켜주고 점심도 제가 좋아하는 한식집에서 먹고 했어요.
기자: 바쁜 하루였네요.
노우주: 그것뿐만 아니고 저녁엔 깜짝 선물도 해주었는데요. 북에 계시는 어머니께 드리라고 달마다 몇십만원씩 저축한 통장과 제가 원하는 물건을 사라고 현금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더라구요. 인생 최고의 생일을 보낸 것 같았어요. 북에서 생일날이 오면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셨어요. 미역국에 닭알을 넣어주시고 찰떡과 송편을 집에서 만들어 주시고 친구들과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친구들이 준비한 선물은 수첩과 볼펜, 사회에 나와서는 손수건이나 거울, 화장품, 남자 친구들 생일 때는 당원증 케이스를 직접 떠서 주고 했거든요.
기자: 누구든 생일날만큼은 정말 특별한 음식에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노우주: 남한은 풍요롭고 여러 면에서 생일이나 기념일 보내는 것도 북한과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느꼈어요. 신랑은 가을이 생일이어서 제가 음식을 장만 했어요. 회사에서 생일 단빵인 케이크와 과자를 보내주었어요. 모든 직원한테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북에는 없는 잡채라는 음식을 남한은 생일, 명절 음식에 빠지지 않더군요. 잡채를 만들고 국수를 좋아하는 신랑에게 국수를 삶아주고 여러가지 산나물 무침과 대게찜, 회와 돼지갈비찜을 준비해서 한상 차렸죠. 혼자 살 땐 생일을 아들과 식당에 나가서 먹었는데 제가 시집와서 푸짐한 생일상을 받으니 꿈같다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생일 선물도 했습니까?
노우주: 당연하죠. 신랑은 언제 선물까지 다 준비했냐며 놀라서 선물포장을 풀더라구요. 조금 비싼 혁띠와 출퇴근 할 때 들고 다니라고 가방을 선물했어요.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신랑이 꼭 필요했었는데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꼭 안아주더라고요.
기자: 듣기만 해도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이 가고 괜히 마음이 흐뭇해지네요.
노우주: 아들은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정성이 담긴 편지도 써서 드리고 하니 보기 좋구요. 가족들과 같이 보내는 생일이 더 의미가 있더라구요. 이처럼 북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생일문화를 풍요로운 남한에서 접하고 생일상을 받아보니 눈물이 나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계기가 되었죠.
기자: 노우주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네,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생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였습니다.
참여자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