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 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청진에서 초급 여맹위원장을 하다가 남한에 간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실수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산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한 번 만나봅니다.
기자 :노우주 씨 안녕하세요.
노우주 :네, 안녕하세요.
기자 :이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노우주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떨어지는 낙엽도 바람에 날리고 날씨도 쌀쌀한 것이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두었던 추억 한자락 끄집어내어 실타래 풀어내듯 어머니 품속 같은 고향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자 :우주 씨의 고향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노우주 :봄이면 사과배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동산에는 노오란 민들레 꽃이 만발한 언덕위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뒹굴며 어린 동년의 시기를 보냈던 고향은 꿈에도 잊을 수가 없는 진한 향수를 안겨줍니다. 산허리마다 진달래꽃 물결이 감싸고 다문다문 산 복숭아 꽃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여 있던 잊지 못 할 추억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기자 :가장 좋았던 기억이 우선 머리속에 그려지는군요.
노우주 :네, 맞습니다. 복사꽃과 진달래 꽃으로 화전을 구워주시던 등 굽은 어머니의 모습도 아련히 떠오르고 친구들과 진달래꽃을 따 먹으며 시금하면서 입맛이 향기가 맴 돌던 그때가 그립네요. 또 오빠와 토닥거리며 밤 바구니를 집까지 날랐던 생각도 나고 봉우리가 다섯 개라 하여 오봉산이라 붙여진 이름에 키 돋음 하며 온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어릴 적 나에게는 감히 범접하지 못 할 큰 산이었어요.
기자 :가을에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요즘 고향이 많이 그리우신가봐요.
노우주 :나이를 먹으니 더 그런가 봅니다. 아버지와 오빠는 이미 고인이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저의 자식들, 동생들 잘 살라고 응원해주는 것 같아요. 며칠 전 비온 뒤에 고운 칠색 무지개가 산마루와 하늘과 맞닿아 섰는데 그 무지개 속에서 백학 떼가 날아서 창공을 가르는데 하도 신기해서 넋을 놓고 봤어요. 저 새들은 철따라 계절따라 마음대로 다니는데 왜서 우리는 부모, 형제, 자식들 소식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이 미워집니다. 가을 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미련 없이 떨어질 때면 늘 그리운 고향이 생각나 따뜻한 차 한잔에 고향생각을 담아내며 조용히 읊조립니다.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요.
기자 :어릴 때 친구들 이름도 다 기억하세요?
노우주 :그럼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 해주었던 나의 소꿉시절 친구들 윤옥, 선화, 복실, 정옥, 옥순, 남철, 춘남, 철룡, 명철, 명환, 재원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12명의 친구들이 탁아소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함께 했던 친구들이었어요. 23살 잡히면서 하나, 둘 시집가고 군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와 장가가는 모습, 함께 했던 죽마고우 친구들이 제가 27살이 넘도록 시집 안 간다고 빨리 떡 먹이라며 장난기가 어린 얼굴로 놀려대던 우리 친구들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기자 :지금 북한하면 떠오르는 것이 식량이 부족해 힘들다, 전기 부족으로 밤이 어둡다 이런 것인데 북한에서 태어나 성장한 우주씨에겐 북한이 현재 모습과는 다르군요.
노우주 :아무래도 나쁜 것 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먼저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되어버리면서 세월이 가는지 느끼지 못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결혼생활하면서 10년 되도록 친정에도 가보지 못하면서 친구들과의 소식도 끊겼어요. 전기부족으로 열차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모든 공급이 다 끊기고 90년대 중 후반부터 더욱 극심한 식량난과 생활고로 북한 땅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죠.
두 석 달에 한 번씩 간간이 보내오는 편지 속에 고향 사진도 보내와 보니 숲이 우거졌던 오봉산은 땔감으로 벌거벗김을 당하고 기름졌던 들녘이 앙상하게 변해 있는 모습에서 이 땅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하루하루 나날이 지쳐갔고 공장 부속들을 몰래 뜯어다가 장마당에서 빵 한조각과 바꾸어 먹고 수입해 들여온 쇳물 녹이는데 때는 고열탄을 훔쳐다가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막다른 지경에 까지 갔죠. 저의 경우는 중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몰래 두만강을 넘어갔다 오다가 붙들려 죄인 취급 받으며 산전수전 인간으로 겪지 말아야 할 짐승처럼 치욕스런 일들은 지금까지도 꿈속에서 나를 쫒아 다녀요.
기자 :어제 보다는 오늘이 좀 나아졌고 또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이 세상에도 건강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까?
노우주 :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거죠. 요즘 운전을 하면서 길을 가다보면 하얀 비같은 억새가 가을 운치를 더 해주고 빨갛게 물든 단풍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니 고향 어릴적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기자 :방송을 통해 간단히 인사 전해주시죠.
노우주 :보고 싶은 그리운 친구들아 어디서 어느 곳에서 무얼 하고 있고 너희들 자녀들도 다 자라서 지금은 결혼식도 해서 손주손녀도 보았겠지? 어떻게 얼굴들이 변했을지 궁금하거든… 내 고향의 아름다운 산과 들도 보고 싶고 어렸을 때처럼 친구들과 함께 모여 추억을 쏟아내며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마음껏 날아예는 저 철새들처럼 나도 고향으로 날아가고 싶단다. 고향을 떠나 온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너희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단다. 지금은 남한에서 살고 있어 만날 수 없지만 자유의 바람에 물고가 트여 서로가 오고가면 꼭 다시 만나자.
기자 :노우주씨의 바람이 꼭 빨리 이뤄지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노우주 :여러분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께요..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고향생각에 관한 이야기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진서입니다.
참여 노우주, 진행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